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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오 Apr 16. 2023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김치일까?

현재진행형인 김치의 변천사

김치 레시피들의 디테일은 각자 달라도 그 속엔 교집합이 있다. 소금에 채소를 절이고 고춧가루, 마늘, 액젓이 들어간 양념을 버무리는 것. 모든 레시피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야말로 김치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치는 오랜 시간 변화해 왔다. 김치 하면 떠오르는 빨간 김치 역시 근대적 업그레이드에 가깝다. 김치는 냉장기술이 없던 옛날 식재료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염장 식품의 한 갈래다. 소금에 절인 채소는 겨울철에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염장 식품인 고대 중국의 저(菹)나 일본의 쓰케모노(漬物)와 김치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유산균을 통한 발효에 있다. 기원전 293년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편찬한 백과사전인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문왕이 저를 좋아한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공자가 콧등을 찌푸려 가며 저를 먹었는데, 3년이 지난 연후에 그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내용이다*. 공자가 얼굴을 찌푸렸다는 언급으로 보아 발효과정에서 생성된 산미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절임 채소는 알코올을 분해해 식초를 만드는 초산균을 사용해 강한 산미를 끌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당분을 분해해 젖산을 만드는 유산균을 사용해 은은하고 달콤하며 덜 자극적인 산미를 이끌어냈다**. 쓰케모노에선 발효가 필수가 아니며, 발효로 생성된 산미를 억제하는 처리를 하는 점이 김치와 다르다.  
 

김치가 정확히 언제 어떤 형태로 탄생했는지에 관한 명확한 기록은 없다. 현대의 김치연구가들은 중국의 <시경>이나 <삼국지> 등의 기록에서 김치의 흔적을 더듬었고, 조선시대에 기록이 등장하는 국물이 넉넉한 절인 야채 침채(沈菜)를 김치의 어원으로 여긴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가 한반도에 전해진 건 17세기 경으로 추정되니 그 이전의 김치는 빨갛지 않았다. 새로운 식재료가 더해지며 김치가 진화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도 시사한다.  






201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미식신에는 김치와 고추장을 비롯한 한국 음식의 요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거 조선호텔 셰프들을 대동한 이명박의 부인 김윤옥이 런던의 VIP들을 상대로 안간힘을 썼지만 까딱도 않던 입맛이었다. 변화의 배경엔 발효 붐이 있다. 미식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코펜하겐의 입지전적인 레스토랑 노마 Noma와 그곳을 이끄는 셰프 르네 레드제피 René Redzepi가 선구자 역할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 발효 음식의 장점이 빠르게 번져나가며 독일의 양배추 발효 음식인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나 한국의 발효 음식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뜨뜻미지근하게 소비되던 한국의 식문화가 런던 푸드신의 주류에 편입된 계기는 BTS가 촉발한 케이팝 광풍이었다. 전혀 무관한 영역에서 기폭제가 날아왔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제 한국 음식은 무서운 속도로 일본 음식, 중국 음식, 태국 음식, 인도 음식이 선점한 영역을 잠식하고 있다. 중심가를 비롯 런던 각지에 몇 년 사이 엄청난 숫자의 한국 레스토랑이 생겼다. 예전엔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돌솥비빔밥이 한국 음식을 대표했다. 지금은 KFC(Korean Fried Chicken)라고 불리는 양념치킨이나 분식 스타일의 캐주얼한 음식이 대세다. 케이팝을 크게 트는 한국식 선술집을 경험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선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튜버 망치 Maangchi의 콘텐츠를 보고 한식을 만드는 친구들도 많아졌다. 김치를 직접 담그는 외국 사람들도 늘고 있다. 한국의 레시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더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상징적인 음식이다. 자긍심이 높은 만큼 '무엇이 김치다'라는 암묵적인 경계선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다. 불과 80년대만 해도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처럼. 김치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외국 브랜드가 우후죽순 늘어나며 김치의 스펙트럼은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그 상당수는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김치가 아닌 걸까?


 


*김상순, "한국 전통 식품의 과학적 고찰", 숙명여자대학교 출판부, 1985, 114쪽.

**이기환, "공자가 먹은 중국김치, 뇌물로 쓴 한국김치", 경향신문, 2017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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