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현자는 없다.
사랑하는 베네딕토,
삶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선택이 쉽지 않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단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 판단의 역량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 오지.
이때 교수님이나 부모님에게 어떤 선택이 이로울지? 판단을 위해 무엇을 근거로 가져다 써야 하는지? 물어볼 수 있지.
단언컨대 어른들의 말은 참고만 하거라.
정보, 지식, 경험의 양은 어른들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정보통신의 발달과 교육시스템의 선진화로 젊은이들보다 뒤떨어지는 경우도 있단다.
아빠가 30년 전에 일하던 PC통신사에서 운영하던 DB서버의 용량은 30GB였단다.
지금은 32GB짜리 USB메모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흔한 시대이니 뭐 그리 작았나 싶겠지만 그만큼 정보의 유통량이 어마무시하게 증가했다고 보면 되겠지
또한 판단의 알고리즘도 어른들의 그것은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낡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단다.
98년 IMF 당시, 대전의 중견기업을 퇴사하고 서울의 벤처기업 창업멤버로 이직을 고민할 때, 존경하는 아빠의 대학은사님과 할아버지께서는 대전을 떠나지 말고 현 직장에 남아 있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셨지. 아빠는 고민 중에 이직을 결정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른들의 조언대로 대전에 남았다며, 지금의 내 역량(기술, 인맥, 경험 등)은 아마 절반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인공지능, 로봇, 유전자 기술, 우주항공, CBDC, 다문화사회, 젠더 평등, 지방의 몰락,......
예상 가능한 변화의 주제들이지만 아빠는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통찰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단다. 더 정확히는 어떻게 내 한 몸 추스르겠지만, 너에게도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구나.
너에게 어른들의 지혜에 업혀서 갈 수 있는 길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스스로의 판단이 옳았음을 깨닫는 복기의 순간이 누적될수록 자신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고 자신의 세계가 구축되기 시작한다.
너의 그 세계가 단단하고 영롱하기를 기도하마.
사랑하는 아빠가.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