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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 청천 Dec 26. 2021

여자친구 집에 허락받기 : 조립

20N年10月








나는 결혼을 추진하기 위해, 그이와 엄마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것이 결혼을 준비하는 첫 공식 일정이었다.


우리 셋은 각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정해서 엄마 동네 일식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이는 전혀 떨리지 않는다는 말과 달리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린 후에야 약속 장소로 출발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준비성 철저한 성격이라 제 시간보다 일찍 나올 것이 뻔했다. 나는 엄마의 행동패턴을 예상하고 기다리시지 않게 미리 당도했다. 그이가 시간 내에 사지 못할 꽃다발도 대신 사서 식당 카운터에 맡겨 두었다. 역시 다음으로 도착한 사람은 엄마였다. 약속한 시각이 지났다. 그이는 늦었고, 우리는 가끔 시계를 봤다. 종업원들은 음식을 내어올지 물어보기 위해 몇 번 들락거렸다.


왔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빼던 엄마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이는 ‘장모님’하고 허허 웃으며 한우 세트에 장미 꽃다발을 안겨드렸다. 한숨 돌렸다.


나는 이 날의 대화를 통해 엄마의 시점으로 해석하는 딸의 30년 인생을 듣게 되었다. 나에게도 굉장히 신선한 이야기였으며, 엄마가 바라보는 딸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크게 두 가지 이야기였다. 하나는 아빠 없는 딸에 대한 이야기. 청소년기에 내가 아빠가 보고 싶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나에게는 없는 기억이다. 엄마는 내가 애달팠나 보다. 또 하나는 현명한 딸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 내 딸이 데려온 사람은 무조건 오케이(OK)라고 했다. 판단력이 좋은 딸의 결정에 200% 신뢰한다며, 엄마는 그이가 결혼의 ‘ㄱ’자도 꺼내지 않았는데 결혼에 찬성한다고 했다.


엄마가 사주시는 초밥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가서 후식까지 얻어먹었다. 다음 주가 추석이라며 엄마는 복숭아와 포도를 한 박스씩 구매했고 그이 편으로 예비사돈 집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과 함께 일정을 마쳤다. 엄마는 진심으로 즐거워했고 그이도 뿌듯해했다. 나 역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어 뜨겁게 감사한 하루였다.





그러나, 뜨겁게 감사한 하루였으나! 사실 그이가 도착하기 전까지 내 마음의 날씨는 매우 나쁨이었다. ‘어떻게 늦을 수 있지?’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심장으로 번개처럼 번쩍였다. 그리고 심장에서 천둥이 콰르릉 짖었다. ‘어떻게 늦을 수 있지? 어떻게??! 일찍 도착해서 모시러 가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늦을 수 있어? 누구에게 주는 꽃다발인데 이게 내가 준비할 일이야?’ 나는 분노의 질문을 폭주하듯이 내게 던졌다. 그러나 답 또한 내게서 찾아야 했다.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이는 내가 아니잖아. 그이는 내 엄마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아무것도 모르잖아. 내 엄마랑 살아본 적도 없고, 대화도 몇 번 해보지 못했어. 내가 아니라서 나처럼 생각할 수도, 행동할 수도 없어.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는데 왜 내가 난리야. 진정해. 그이는 내가 아냐.’


결혼하면 없던 효심도 생긴다더니 평소에 엄마한테 잘하지도 않는 주제에 효녀처럼 언짢아했다. 나는 사실 약속시간 몇 분 늦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가 화 '날 것 같다'는 예상을 이유로 화가 났다. 나는 엄마의 감정을 대신 느끼려고 했다. 내가 뭐라고. 엄마와 나는 가족이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게 묘해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타인이라고 인지하지만, 타인 앞에서는 구성원을 자신처럼 여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엄마의 화려한 꽃무늬 바지를 내가 입은 것도 아닌데 내가 부끄러워한다거나, 매일 싸우는 남매지만 다른 사람이 내 동생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열 받는다. 그래서 나는 그이라는 타인 앞에서 내 가족인 엄마를 대신하여 속을 끓였다.


이제껏 타인과 테이블에 앉을 때 나는 엄마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이 날은 그이와 옆자리에 앉아 엄마를 마주 보았다. 그러니까 이 날은, 엄마와의 가족을 해체하고, 그이와의 가족을 조합하려는 첫 번째 자리였다. 내가 원래의 가족에서 나간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나는 엄마와 내가 언제든 분리 가능한 독립된 성인 개체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러니 그이와 조합하려는 이 가족의 형태 역시 언제든 해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결혼이라는 이름이 견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허허벌판에 문 하나 세워 놓고 들어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은 나아간다. 내 이름으로 시작하는 문짝 하나는 생길 테니까.  





20A년 9월 공식적으로 결혼을 허락받은 날   













[ 남의 집 부모님과 첫 만남 추천 선물 ]

결혼한 커플 7쌍이 있는 단톡방에 남자 후배가 질문했다. 여자친구네 집에 인사하러 가는데 어떤 선물이 좋냐고. 어디 정답이라도 있다는 듯 만장일치로 꽃다발과 과일바구니 조합을 답했다. 무난함이 최선이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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