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생 김땡땡의 이야기

by 희망메이커 지니

스무 해 전에 소설을 하나 쓴 적이 있다. A4 10장짜리 성장일기 같은 거였는데, 소설로 풀어썼지만 내가 겪었던 일이었다. 대학 입학 전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백화점에서 일했던 내용인데, 두 달 밖에 안되었지만 굉장히 많은 경험을 했어서 글로 남길 수 있었다. 제목은 스무 살. 어쨌든 이사 다니느라 파일도 없고, 그때의 상장도 찾을 수가 없다.


문체부 무슨 콘텐츠 공모전 가작. 아마 이런 공모전 자체가 사라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귀여니' 같은 인터넷 소설이 열풍이어서 잠시 잠깐 만든 공모전이었던 것 같다.


무튼 나는 더 이상의 소재가 없기도 하고, 학기마다 오르는 대학 등록금이 부담이 되어 일찌감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소설 하나, 시 한 두 개.. 뭐 그마저도 과제여서 힘겹게 겨우겨우 써서 제출했으니까 재능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등록금 문제가 아니었어도 더 다닐 수는 없었을 거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잖은 가.


그렇게 취업전선에 나온 스물넷의 여대생은 한 두해 등록금을 벌어 복학하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대형서점에 입사하게 되었다.


와, 다시 생각해도 정말 서점의 호시절이었다. 매일같이 책이 산더미처럼 입고되었고, 주말마다 방송되는 '책책책을 읽읍시다.' 같은 코너에서 추천이라도 나오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다.


한 번 베스트셀러가 되면 몇 백, 몇 천 부씩 주문을 하기 때문에 책으로 탑을 쌓는 일도 흔했다. 그건 재미있었다. 일명 '회오리치기', '계단 만들기'같은 선배들의 기술을 배웠다. 나름 아이디어를 낸답시고 기둥에 현수막과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달아 꾸미기도 했다. 단행본 한 두 권도 소중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 좋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서있어야 했고, 무거운 책을 나르는 건 정말 힘들었다. 육체노동이 이런 거구나 하면서 파스를 아픈 데마다 붙였었는데, 선배에게 파스 냄새 풍긴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을 구분해서 주문, 반품을 하고 매일같이 들어오는 신간에 정말 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제대로 쌓지 않으면 책들이 무너지기도 해서 다치는 직원도 있었다. 차곡차곡 잘 쌓아야 했다.


담당이었던 경제코너는 정말이지 회전율이 좋았다. 이슈 되어서 며칠 팔다 보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러다 시간이 지나 몇 달, 아니 몇 주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십여 년 일을 했나 보다.


원래 지망했던 문학코너였으면 좀 달랐으려나.. 문학 코너는 담당 주임님도 문학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낭만과 정이 있다고 해야 하나? 회의 때마다 매대당 매출을 확인하는데, 잘 팔리지도 않는 시집 매대를 줄이거나 없애지 않고 지켜 내셨다. 꼭 있어야 한다고, 그게 대형서점의 할 일이라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자의는 아니었고, 법정 전염병이 돌아 회사가 인원감축에 들어갔는데, 육아휴직을 안 쓴 사람 먼저 휴직을 쓰겠느냐는 제의였다. 물론 거절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이 겁이 나 덥석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육아휴직자가 되었다가, 둘째를 임신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입사한 지 16년 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우리 지점의 첫 육아휴직자였는데, 첫째 때 안 쓴 육아휴직에 둘째까지 연달아 육아휴직을 쓰고 퇴사한 첫 사례도 되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후로 점장님은 남자 직원만 선호한다고 들었는데, 잘 구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마도 임금 때문이지 싶다. 그리고 일정치 않은 근무 시간 때문일지도.


근무시간은 매주 변동된다. 아니 사흘에 한 번 바뀔 때도 있었다. 오전근무, 오후근무, 중간근무 등 지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서점은 영업시간이 길다 보니 그렇게 돌아간다. 오전 퇴근은 일반 직장인과 다를 게 없지만, 오후 퇴근은 밤 10시여서, 매일 엄마를 기다리다 소파에서 잠든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고는 했다.


임신했을 때는 밤늦게 혼자 버스에 타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혼자일 때는 그게 밤 열시건, 열 두시건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뱃속에 생명이 있으니 그게 마음이 많이 달랐다. 조심스럽기도 하고 금세 우울해지기도 하고. 아마 무거운 몸과 호르몬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 뱃속에서 소중히 키워낸 아이는 이제 엄마 따위는 기다리지 않는다. 첫째는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소년이 되었고, 둘째만 아직 내 손을 붙잡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아가. 유치원생이 되었다.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있노라면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이 아이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감상에 젖고는 한다. 둘째가 와주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 싶기도.


아 나의 이십여 년이 이렇게 몇 줄로 정리가 되다니. 어이가 없다.

앞으로의 10년, 15년은 얼마나 더 빨리 지나갈까 생각하니 암담하기도 하다.

매일의 반복이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그날이 그날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20년이 후딱 지나버렸다.


앞으로 남은 인생 무얼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지난 내 꿈을 찾은 게 바로 이 글쓰기다. 취업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자아성찰을 하다 보니 나온 결과이기도 하다.


나의 내면 맨 아랫 서랍, 먼지 뽀얗게 쌓인 상자를 털어보니 글쓰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1982년생 김땡땡의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