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나의 이십 대를 보냈다

by 희망메이커 지니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아이스크림 가게.
이십 대의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러다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입었던 유니폼은 서점의 유니폼이었다.


“맨날 서점 가서 책 구경만 할 게 아니라, 아예 서점에서 일하는 건 어때?”

같이 서점에 자주 가던 친구가 말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겠는데 싶었다. 어차피 자주 가는 곳이라면, 아예 그 안에서 일해도 되지 않을까.


그날 이후 집 근처 서점부터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물론 쉽게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고졸에 휴학생이었고,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건 아르바이트 경력뿐이었다. 그래도 계속 넣다 보니 세 군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집에서 가까운 순으로 면접을 봤는데, 합격 통보는 가장 먼 곳에서 왔다. 가장 큰 서점이었다. 나 하나쯤 들어갈 자리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휴학생이라 언제 그만둘지 몰라 망설였다고 하셨다.

어찌어찌 첫 출근을 했다. 그날의 긴장감은 기억나는데, 구체적인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매장은 1500평 정도였고 직원은 100명 남짓이었다. 모든 일이 분업화되어 있었다. 도서 파트별 직원이 따로 있었고, 계산하는 직원, 안내 데스크, 입고 담당, 운영지원팀까지. 하나의 제국 같았다.


내가 배치된 곳은 정치·경제 파트였다.
한창 ‘마시멜로 이야기’가 팔리던 시기였다. ‘청소부 밥’, ‘시크릿’ 같은 책들도 쉴 새 없이 나갔다. 그때는 왜 그렇게 많이 팔리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분위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2월에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교재 시즌이 시작됐다.
법률서적은 유난히 무겁고, 또 많이 팔렸다. 개강이 가까워지면 품절이 나기도 해서, 창고에 미리 쌓아두고 수시로 매대를 채워야 했다. 수레를 끌고 창고를 오르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동갑내기 직원들이 많아 함께 웃고 버틸 수 있었다.


손님들은 종이에 책 이름을 적어 들고 와서 서성였다.
그 종이를 받아 책을 찾아주는 것도 내 일이었다. 잘 나가는 책은 금방 찾았지만, 그렇지 않은 교재는 검색을 해야 해서 시간이 걸렸다. 특히 법률서적은 제목, 저자, 출판사가 한자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외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학생 본인도 눈앞에 있는 자기 교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 역시 헷갈릴 때면 바코드를 찍어 전산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일을 배워갔다.


지금은 대부분 휴대폰으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찾아가는 방식이 익숙해졌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직접 서점을 돌며 책을 찾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점에는 늘 사람이 많았고, 직원도 그만큼 필요했다. 그때도 인터넷 서점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활발했던 것 같지는 않다. 나 역시 책은 직접 보고 사는 편이라, 인터넷으로 주문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부의 미래, 스티브 잡스 같은 두꺼운 양장본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 책들을 옮기다 허리를 삐끗했다. 보통 일반 단행본은 30부씩 묶여서 들어왔는데,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책들은 20부씩 묶여 왔다. 그걸 요령 없이 들다가, 그만 ‘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며칠을 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물리치료를 6개월이나 받았다. 쉬는 날마다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얼마나 피곤했던지 베드에 누우면 금세 잠이 들곤 했다. 코를 골며 자던 날도 많았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방학 시즌이 되면 아르바이트생들까지 더해져 매장은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책 정보를 외우고, 진열대를 익히고, 판매 속도를 보며 주문을 넣었다. 창고에 얼마나 쌓아둘지 계산하고, 팔리지 않는 책은 반품했다. 월간 행사와 저자 사인회를 준비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서점에서 6년을 보냈다.


나의 이십 대를, 그곳에서 모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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