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은 살인입니다.

우리나라 법은 아직도 멀었다.

by 김주리

"탐정들의 영업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불륜이 거의 주 테마이지만,

내용은 뻔하지 않다.

스토리가 진부하지 않게 매우 다양하며

흥미롭고

배우분들의 연기 또한 몰입해서 빠질 정도로 최고이다.


1년 전에 방영됐던,

불륜으로 오해받았던

한 성실하고 착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직장인 가장의 죽음 스토리를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는데,

너무 화가 나고 안타까워 펑펑 울면서

시청을 했다.


1,2년 전에 네 00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고,

가해자였던 대표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실화라는 것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부디 아내분과 아이 둘

앞으론 더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의 가장분들 모두 많이 힘내시기를 항상 진심으로

응원드립니다.


이 스토리를 보다가

문득 14~15년 전,

내가 당했던 바보 같았고 끔찍했던

이제는 어쩌다 한 번 생각날까 말까 한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명백한 "직장 내 추한 괴롭힘"이 떠올랐다.


이것은 내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실화이고

추잡한 인간의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자격지심이란 건 생각보다 매우 무섭고

상대를 죽음으로 까지 이르게 할 수도 있다.

한 여자의 자격지심이 유리멘탈인 엄마에게 와준

소중한 생명인 뱃속의 아가를

죽인 거나 다름없다.

그때 난 왜 그리 바보 같았을까...


떠올리기 싫지만 이제는 조금은 덤덤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사람을 그 당시 처벌할 수 있었다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너무 똑똑하지 못했고, 약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지금의 나였다면 조금 더 다르게 대처했을 것도 같은데~

그때의 멘탈과 지혜는 더욱 미성숙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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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자가 결혼을 더 이상 늦게 하면 안 된다는

깊은 신념을 가진

이제는 할머니가 되신 엄마의 권유로

34살이 되기 한 달 전인

11월 말

그 추운 날 결혼식을 올렸다.


서울 토박이인 난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거리상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직업상 지역 이동이 많은 신랑의 직장 쪽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 곳은 인천 저~~~~ 끝의 느낌

버스로 15분이면 월미도에 도착하는 동! 인! 천!이었다.


1년 동안 이곳에서 신혼생활을 한 후 서울로 다시 오게 되었는데,

경비원 아버님과 친하게 지낸 것 말고는

인천이란 곳은

심한 향수병, 직장 내 괴롭힘, 그로 인 한 맘 아팠던 유산등으로

나에겐 좋은 기억이 없는 곳이다.


인천의 강남이라고 하는 연수구가 있다.

내가 생활한 동인천은 조금은 조용한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사설학원 영어 선생님으로 일을 하다가 인천이란 외딴곳에

갑자기 이사를 왔기에 , 번화한 연수구에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사설 학원에서 일을 했었는데,

인천의 중심부같았던

연수구에

바로 직전에 일했던 같은 브랜드의 학원이 있었다.

매우 성실한 선생님이었던 난

전 직장에서 원장님 부원장님께 추천서를 받았고

면접에서 추천서만으로도 대표님이 많이 흡족해하셨고

바로 합격을 해서

일을 하게 되었다.


초. 중생을 가르치는 대형 학원이었기에

커다란 교무실에는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아마 난....

서울에서 굴러들어 운 인정받는 돌이었나 보다.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밀쳐내려고 한다고 오해를 한지도...

당당히 면접을 봐서 합격을 했는데도 낙하산으로 오해를 받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표와 전혀 일면식도 없고 그냥 같은 브랜드의 다른 지점에서 일을 한 것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중등부의 꽤 비중 있는 수업을 맡게 되었고

부지런하게 매우 열심히 수업을 해 나갔다.

원장님께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몸 바쳐 일하는 서울에서 온

정말 성실한 선생님인 나를 인정해 주셨고 ,

그렇게 원장님께서 호의적으로 나를

봐주시면서 박힌 돌이었던

김미 0 ( 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서 인가보다)

선생님의 불편한 태도를 점점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교통사고도 100프로는 거의 없듯이

그 분이 나를 좋아하지 않게 된 연유에는

나의 잘못이 있을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실수가 있을 수도

그러나 ...

그렇게 큰 미움을 당할정도로 내가 잘못한 것이 뭘까 생각해보았는데

내가 이기적인 걸까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잘못한 일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을 궁지로 몰고 왕따를 시키고 모함을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보통 학원에서는 공강 시간에 각자 밥을 먹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학원은 일찍 출근해서 항상 많은 분들이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만 나고,

정확히 어떻게 소외가 된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차라리 기억이 안나는 것이 낫다.

나는 점심식사에서 점점 왕따처럼 소외가 되었고,

그 "김미 0"라고 하는 작은 악마 (이렇게 불러도 미안하지가 않다)

는 점점 대놓고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고 무리에서 소외시키기 시작했다.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하고 잘 지내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 왕따라는 처음 겪어보는 힘든 경험에

너무 충격을 받았었고,

어떻게든 모두와 잘 지내보고 싶어 정말 많이 노력했다.


나중에 나를 둘러싼 많은 모함들이 있었단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모든 일이 다 터지고 내가 뱃속의 아기를 잃은 후였다.


세상에 돈 버는 것 쉬운 일 없다지만,

학원일 이란 것이 상당한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대형학원은 한 선생님에게 주어지는 수업량도 많고

몇 시간씩 연달아 서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컨트롤하며

수업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후엔 학부모님 전화상담 등 잡무도 매우 많았다.


그리고 내가 다니던 이 프랜차이즈 학원은

3달에 한 번씩 재등록이라는 것을 해서 내가 맡은 담임반의 학생들이

몇% 다시 등록을 하는지를 평가해 연봉협상에 반영을 했다.

그렇게 전 학원에서 담임반 학생 80명이 넘는 인원 중

평균 90% 이상의 아이들이 재등록을 했었다.

항상 웃으며 즐겁게 긍정적으로 일했던 나를

이번 학원에서도 원장님이 매우 신뢰하고 믿어주셨던 것이다.


원장님께선 나의 학벌 경력 성격 태도 등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하셨고

그걸 그 작은 악마는 캐치한 것이다.


그렇게 난 작은 악마의 계략으로 선생님들 사이에서 소외되기 시작하며

같이 밥도 못 먹고 혼자서 대충 때우기를 반복하고,

그런 와중에도 수업엔 최선을 다하며 몸을 혹사했다.


늦은 회식자리에 잘 지내고 싶은 선생님들과

어렵게 함께하게 되어

관계를 좋게 해 보려고

못 마시는 맥주를 마셔대며 최선을 다했었다.


회식 며 칠 후

어린 초등학생들 수업이 있는 날 4시경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수업 중에 칠판에 글을 쓰며 말을 하고 있는 데

갑자기 너무 심하게 배가 아파서

서 있질 못하다가 칠판 앞 바닥에 쓰러졌다.

아이들은 놀라서 선생님을 부르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고

119에 실려 병원에 갔던 날

유산기가 심하게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임신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선 마시지도 못했던 맥주를 마셨던 것이다.

지금도 이것이 너무나 속상하다.


누구를 벌하고 죄를 따지고 이럴 겨를도 없이

그 이후 도저히 학원을 나갈 수가 없었고,

병원에서 며칠 입원 후

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으나

결국 유산이 되고 말았다.

충격 미안함 속상함 억울함 분노 한심함 괴로움등

너무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고,

뱃속에서 아가의 심장이 뛰지 않는 계류유산으로

유명한 선생님이 계신 분당차여성병원 산부인과에서

뱃속에서 죽은 아기를

다 뜯어내서 ㅠ.ㅠ 께끗이 제거하는

맘 아프고 몸에도 안좋은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로 학원을 완전히 관두고

잠시 몸관리 마음관리 운동 식단등을 하며

회복한 후 나에겐 다시 몇 달 후 예쁜 아기천사가 왔고

그 아이는 이제 중3이 되는 사춘기 청소년이 되었다.


아무도 작은 악마의 악행을 왜 동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악마는 내가 유산된 것도 내 몸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며

비난을 했다는 다른 선생님의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직장 내 왕따에는 정의로운 기사가 한 명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악마의 악행이 밝혀지고 해결이 된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 드라마 같은 이야기인데

그렇게 유산하고 내가 학원을 관두기 얼마 전 새로 부임해 온

야무지고 똑똑한 실장님이

그 작은 악마의 모든 비리를 밝혀내게 되었다.

해고까진 아니었고 전라도인가 경상도 인가 어디 먼 지점으로

좌천시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작은 악마는 내가 입사하기 전에도 두 명이나 괴롭혀

한 선생님이 스스로 학원을 관둘 수밖에 없었던 맘 아픈

사연도 듣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은 그 실장님이 전부 다 밝혀내서

학원 본사에 알렸고

원래는 해고처리를 하려다가

개인 사정을 고려해 좌천을 시켜준 것이라고 한다.


내가 너무 심하게 당해서인지

학원관계자분들이 너무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울함을 풀어준 생명의 은인이신 실장님을

아직까지도 감사해하고 잊지 못하며

가끔 연락하며 지낸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지옥으로 출근을 하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교무실에 앉아있는 게 너무나 힘들었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쓸 에너지조차 다 소진해서

쉽게 지쳤다.


직장 내 괴롭힘

그것은 간접살인이다.

생계를 위해서 관두지 못하고 다닐 수밖에 없는

힘든 가장분들이 있다면

반드시 직장 낸 괴롭힘을 일삼는 상사든 동료든 악마들의

악행이 밝혀지고,

선한 이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직장문화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가끔 그 작은악마는 어찌 지내고 있는지

이젠 다시는 누가됬든 자신의 자격지심으로

괴롭히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150중반 정도될듯한 성인치곤 작은 키에

수술을 바로한듯한

두껍게 어색했던 쌍꺼풀

시력이 아주 안좋은지 뱅뱅이로 보였던 회색 테두리의 안경

나는

그 정도만 기억하고 싶다.


시간은 고마운 약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나의 역사들과 상처를

잊게 해주는....


생계를 위해 항상 긴장하며 일해야하는 직장에서

괴롭힘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함께 으쌰으쌰 할 수 있는

직장문화가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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