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시도.....
생각만 해도 얼굴이 벌게지고
양쪽 머리카락으로 덮어서라도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그 머리카락을 다 뒤로 넘기고 흐뭇하게 웃고 싶다.
응답하라 1991
중2병은 우리 엄마를 괴롭게 했겠지만
중2병 환자인 날 괴롭게 한 건 발표 공포증이었다.
9일 , 19일 , 29일....... 달력에 미리 체크
자신의 번호에 날짜가 들어가면
발표하는 사람으로 뽑힐 확률이 95.9% 였던
응답 1991
19번이었던 나는 전 날짜만 되면
자기 전 전침대에 누워서 망상을 시작했다.
학교에 불나면 좋겠다;;;;;
선생님이 아파서 안 오시면 좋을 텐데...
어김없이 적은 확률의 예외는 절대 발생하지 않았고
학교 운동장 모래 한알에서도 작은 불씨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날따라 선생님은 유난히 더 건강하고 씩씩해 보이셨다... 아.... 흐...
모기 목소리에 소심했던 난 그렇게
발표에 대한 칭찬은 못 들을망정
잘하라고 꾸지람을 빙자한 응원을 들었고.
"난 내성적이라서 그런 거야 "
이런 변명으로 의기소침한 하루를 보냈었다.
그만큼 발표하는 거
남 앞에 나서는 거 죽을 만큼 싫어하던
극 I 인 내가 어른이 되어
가짜 외향인지 적응 외향인지
변했다고 느꼈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말이다.
어릴 때는 안무식하고 용감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 당시 영어로 말하는 게 많이 서툴렀었다.
어떤 기회로 영어프레젠테이션 같은 걸 즉석;;;;
에서 하게 된 거였다. 그때 난 영어회화를 첨 배우기 시작한 대학입학을 앞 둔 어정쩡한 성인이었다.
도망칠까
못하겠다고 할까
나 영어 알파벳도 모른다고 할까
수도 없이 손에 땀을 흘리며 피할 구실을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준비해 간 것도 제대로 발표 못해
망신당했던 중등 소녀는
그 후 준비하지도 않은 걸 뻔뻔하게 발표하는
용감한 갓 성인이 된것이다.
결국 내 의지와 상관없는 급 제의에 응했던
나의 무모한 도전은
완전 개박살이 나는 창피함을 넘어서
나의 부끄러움과
죄 없는 청중분들의 부끄러움을 합해
모두를 헤어 나올 수 없는 힘든 정적에 빠뜨렸다.
싸하다 못해 추워
수습불가였던 그 공기
나는 아직도 그 공기의 온도를 절대로 잊지 못한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조차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나의 느낌 청중분들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준비를 했는데도 용기를 내지 못한 어린 나보다
영어를 못했는데도 영어랍시고 그것도 큰 목소리로
앞에 나가 말도 안 되는 언어로 발표를 했던 내가
나는 더 자랑스럽다.
용감하려면 무식해야 하나 보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나는 50이 되는 지금
가끔은
때에 따라서만
무식해야 용감해진다는 걸
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걸 말도 안 되게 용기라고 불렀지만
소심한 나보다 난 용기 있는 내가 좋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움받을 용기이든 사랑받을 용기이든
가끔은 무모하더라도 용기를 내고 싶다
간절히..
그걸 강한 멘탈이라고 착각하더라도
그래야 살아지더라
이 험하고 어려운 세상은.....
Ps 그 후 영어회화 공부를 위해 타이타닉 비디오테이프를 100 번 200번 돌려보다 영어회화는 안늘고 장면 다 외우고 비디오테잎은 필름 다 늘어나서 폐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