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의 깨진 환상 N0.7

장염의 공포

by 김주리

그렇게 뭐라 말하기 힘든 교무실에서

애매모호한

환영도

그렇다고

비환영도 아닌

알 수 없는

선생님들과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난 내가 머물 숙소로 가게 되었다.


넓었다.

" 여기는 뭐 어디만 가면 다 넓어 " ㅋㅋㅋ

내가 선생님들과 함께 머물 아파트는 정말 넓었다.

아마 40평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넓은 아파트에 머물 인원은 달랑 3명;;;

그것도 내가 오기 전에는 두 명이서 그 넓은 곳을 다 사용한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총 원장님 아래

총 원장님이 한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하셨기에,

중국학원의 업무는

부원장님이 대부분 대표처럼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거의 총 원장님 급으로 일하셨던

부원장님이 함께 사용하는 숙소였다.

역시....그래서 넓고 좋았구나.


아니지 부원장님 숙소에 선생님이 얹혀 산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부원장님은 혼자서 안방 같은 방을 쓰셨고

변두리방?

작은방?

그리 크지 않은 방에 이미 계셨던 동료 선생님과

내가 함께 사용을 하게 되었다.


방이 몇 개였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한 3개? 정도였던 것 같고

거실이 매우 넓었고

거실 끝에는 문을 열고 나가면

답답한 마음이 진짜로 탁 트이는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는

베란다가 있었다.


약간 높은 고층이었다.


그 문을 열고 나가서 쑀던 바람내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중국에 겁 없이 혼자 가서 매일 알 수 없는 피곤귀신에 휩싸인

느낌으로 그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면 몸의 어느 부분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중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냄새가 있었다.

특히 학원은 주로 오후에 시작하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맡은 공기는

상쾌한 느낌이 아니라 어찌나 차갑고 으스스하고 스산했던지...

곧 감기가 올 것 같은 그런 공기의 느낌이었다.

공기도 내 마음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나 보다.


앞에 보이는 풍경은 그냥 한국과는 뭔가 다른

중국의 평범한 고층 건물들이었고,

가끔 멀리 자연도 보였던 것 같은데

이질감이랄까?

공기 냄새조차에서도

나는 뼛속까지 한국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중국은 한국처럼 수돗물을 마시는 게 말도 안 된다.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외국 다녀올 때마다 느꼈는데,

석회가 가라앉은 물인가 그래서 무조건 생수를 사다 먹었다.

그렇게 석회물은 마시지도 않았는데

나는 중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완전 죽기일보직전의 장염에 걸려

( 그것도 내가 장이 엄청 튼튼해서 변비가;;;심한데

( 한의사님 판단 상체빈약 하체튼튼형 )

태어나 첨으로 걸려본 장염이었다 그것도 중국에서;;;;)

맥을 못쓰고 비틀거리는 연체동물처럼 기운 다 빠져

진짜 엄청난 폐인이 됐었다.

엄마가 끓여주시는 흰 죽이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학원 측에선 병원에 나를 바로 데려가 치료해 주셨고

정말 좋은 식당에 가서 장염 걸린 나를 위해 비싼 음식으로

속을 달래고 빨리 회복하라고 하셨다.

그때 부원장님과 다른 선생님 한 분이 자리를 같이 했는데

뭔가 죄인이 된 이 기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라는 두려움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리고 자주 회식이 있었고,

갈 때마다 참 좋은 식당에서 선생님들이 음식을 먹게 해 주셨다.

한국에서 못 느꼈던 고급식당들을

중국에서 다 느껴보라는 건가 싶을 정도로

그런데 마음은 한국 분식집에서 아니 심지어 길에 서서 먹는

떡볶이와 어묵이 더 편하고 좋았다.

마지막은 항상 중국에서도 그 당시에도 인기 있던

별 다방 스타벅스.......

친구들과 스벅에서 얘기를 하면

몇 시간도 그냥 지나가는데


중국에 있던 스벅에서는

그냥 빨리 숙소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디저트로 뭘 마셨는지

목구멍으로 무슨 맛이 넘어갔는지

뭘 먹어도 편하지가 않았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보다 좋은 대우를 받고

최고의 대우를 받는 듯이 보이는

그런 삶이 아니었을까?

우리 삶엔 보이는 것이 항상 전부가 절대 아니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진실일 때도 있으니까

자주... 아니 가끔 아니 때론 종종...


P.S 정말 반백살 살아보니 인연이란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이젠 뼛속이 아니라 혈관속 흐르는 피에서까지 느껴지는 기분이다.

어딘지 모를 내 몸속 가장 깊은 곳에서까지 느껴진달까

그곳에 미리 계셨던 나보다 3살어린 동료선생님 덕분에



장염이고

향수병이고

학원대표의 갑질이고 ( 이건 못이기고 결국 한국으로 도망치듯 왔지만)

중국어 하나도 못알아 듣는 것이며

중국에서의 모든 어리버리 했던 생활을

이겨내며 지낼 수 있었다 .

다시 한 번 정말 성격좋고 씩씩했던 선생님께 너무너무너무 항상 감사하다



N0. 8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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