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향내를 풍기는 담배연기
우리의 삶은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하지만,
그 괴로움 곳곳에는 우리가 찾기도 하고
때론 보고도 지나쳐버리는 크고 작은 행복들이 숨어있다.
칭다오에서의 결말이 우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인간의 두뇌구조상 괴로웠던 걸 더 잘 잊어버리지 못하기에
억울한 결말의 공기로 뒤덮인 칭다오 생활이 더 크게 떠올랐지만,
돌이켜 보면 중국이라는 타지의 새로운 곳에서 만든
선생님들과의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들도 있었다.
월~ 금에는 정말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도 보기 힘들 정도로
정규수업으로 정신없이 바빴고,
토요일도 신학기라서 특별한 잡무들이 많아
반근무 정도로 거의 매주 출근을 했다.
고로 일요일만이 진정한 "자유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칭다오에 가기 전
그곳에선
나름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지낼지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막상 가서 지내보니
동그라미 방학 계획표를 야심 차게 세워놓고
거의 지키지 못하는 초등학생의 방학생활과 흡사 비슷했다.
계획표라면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적당히만 타잇 한 레깅스를 입고 편한 운동화에 헤드셋을 꽂고
총 원장님이 말씀하신 숙소 근처에 있는 시어어어원한~~~~
강을 벗 삼아 달리기를 하며
상쾌한 공기로 한 주간의 피로를 다 씻으려고 했었다.
마 음 만...
그러나
일욜 아침에는 피곤이 세게 몰려와 룸메 선생님과 나는 자기 바빴고,
그곳에서 우리에게 배급된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없는
자기들 멋대로 우리에게 하사한
자비나 혜택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후부터 외출을 시작할 수 있었고,
( 대체 오전 러닝을 하라던 총원장이랑 칭다오에 있던 총원장은 다른 인물이냐구요;; )
나가게 되면 시간을 정해놓고 어디 가는지를 일일이 전부다
보고해야 했다.
흑
룸메 선생님과 나는 정말 한정된 가게쇼핑
그것도 멀지 않은 숙소 근처 반경 어느 정도 선에서
주로 옷가게나 악세사리샵 위주로
일요일 오후에 둘 이 손 꼭 붙들고 구경하러 다녔다.
그냥 아이쇼핑으로
그래도 좋아하는 선생님과 단 둘이 오붓하게
그 순간만은 모든 걸 잊고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무슨 FBI 요원이냐고요
아니 솔직히 나는 이 학원이 얼마를 버는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아직도 거지인 이유)
그냥 내 월급 밀리지 않고 잘 주고
난 수업 열심히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잘 지내고
심한 과로로 괴롭힘만 안 당하면 되는 게 소망이었다.
그리고 뭐가 우리 눈에 뜨여야
그 학원의 비밀을 알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냐고요
다 어딘가에 집어넣고 가리고 매일 뭔가 숨기는 사람들처럼
이상하게 굴면서....
그런 분위기에서 또 유일하게 반전은
다른 건 비밀스럽게 다 클로즈되어 있는데 유일하게 오픈되어있는
교실 안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항상 중국은 이놈의 화장실이 문제였다.
처음 칭다오 공항에 내릴 때부터 말이다.
아니 단상 교탁 앞에서 수업하고 판서하는데 저 뒤로 화장실 들어가는 공간?
아스팔트로 약간의 문 같은 경계를 만들어 놓은
화장실로 가는 오픈된 공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엄청 거슬렸었다.
수업시간에 급하면 가라는 건가?
아직도 그게 왜 교실에 있었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난 무조건 아이들 수업이 끝난 후 그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아직도 반갑지 않은....... 교실 내의 향긋하지 못한 시설물이었다.
지금도 너무나 선명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은행에 가면 현금을 많이 들고 온 고객을 위해
드드드드드드드드 현금을 힘 있게 새 주는 현금카운트 기계가 있다.
칭다오 초등관 ( 분점 ) 교무실.. 여기도 조용하긴 마찬가지
에서 총원장은 언젠가
기계도 아닌 손으로 손으로 손으로
엄청난 현금 다발을 들고 와 다리를 꼬고( 뭐야 이 와중에 섹시어필도 아니고!)
한 시간을 넘게 돈을 센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인간 현금 카운트 기계 등장....
수업이 다 끝나고 아이들이 다 하원한 그 시간
의 마지막을 노리며
한 구석 빈 책상에서...어찌나 황당하고 이상하던지 그 장면이 20년이 다지났는데도
또렷이 기억난다.
뭐 하는 건지...
마지막에 보충이 하나 있어서 딱 학생 한명과 1:1 로
정규외 수업을 마치고 나왔을 때
( 50분 정도 보충 설명과 마무리 10분 정도 )
수업 시작 전부터 하던 돈 세는 행동을
수업이 다 끝나고 나왔는데도 하고 있었다.
이건 돈자랑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보습인지 어학인지 입시학원인지 하여간
이곳은 절대 카드를 안 받고 무조건 현금으로 수업료를 받았다는 걸 알았다.
동네에 있는 도매로 떼어온
미끼상품을 매개로 박리다매로 현금장사를 하는 매우 싼 과일가게가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해서 전해주는 스마트한 선생님들께
질 높은 수업을 받는 교육기관에서 말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맑은 베란다 공기를
오랜만에 본 부원장님이 훔쳐가셨다.
부원장님이 스타벅스를 좋아해서 그렇게 시간만 되면 우리를 끌고 가서
자비를 베푸는 척을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커피값은 누가 지불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아마도 부원장님 사비인지 법카인지로
사주셨던 것 같다.
법카 유력
내가 본 부원장님은 밀크티 초등부 장님의 인성과는 많이 달랐다.
베란다 유리문 뒤로 150대 중후반쯤 될 진정한 44 사이즈
여리여리 왜소한 외모의 부원장님의 굵고 예쁜 갈색 파마머리를 한
뒷모습이 비쳤다
왼손에는 하얀
평소에 잡고 있던 분필도 전용 만년필도 아닌
담배를 쥐고서 말이다.
왼손에 쥐고 있어 더 잘 비쳤던 것 같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부원장님의 담배 연기는
스타벅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떠나는 날 까지도
속을 알 수 없었던 부원장님의 성격
지나칠 정도로 무섭게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차분했고,
인상 쓰고 소리지르고 화내는 것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총원장과는 달리
항상 과하지 않은 미소를 머금고 친절한 듯 보이려는 얼굴
난 그게 항상 뭔가 가식의 가면을 투명하게 쓰고
저의를 지니고 쳐다보는 듯 불편했었다.
내가 학원을 더 이상은 못다니겠다고
울먹이며 상담을 신청했을 때도
수도 없이 여러번 부원장님은
자신의 방으로 나를 불러서
편안하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듯이
자신의 침대위에 앉으라며
최대한 친절하고 편안하게 해 주는 척을 했고,
있는 대로 평소땐 하지도 않던 내 칭찬을 하면서
더 있어보라고 견뎌보라고 유혹아닌 유혹을 했었다.
인형의 표정처럼 항상 그렇게 비슷한 웃음띈 듯한 얼굴을 하고서...
칭다오의 깨진환상 N0.10 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