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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

Chapter 1. 몸담았던 기업들로부터 배운 것

by Steve Kim

Chapter 1-1. 실패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

“Steve, 우리는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도 그 결과를 원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과연 정해져 있는지도 혼란스럽습니다”

한 스타트업에서 어떤 이가 퇴사하며 회고에 남긴 마지막 문장이었다.

팀은 열정이 가득했고, 대표는 실행을 강조했으며,

모두가 열정을 갖고 밤낮없이 일했다.

힘을 잃어가기 전 팀은 언제나 방향을 함께 의논하고,

방향이 나오면 디자인이 바로 이어졌고, 디자인이 완료되기도 전에

개발은 논의된 결과를 기반으로 설계에 착수했고,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QA가 이루어지며 제품은 곧바로 배포됐다.

우리는 실행력이 빠른 팀이었다. 그런데도 결과는 처참했다.

우리는 아무도 쓰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실패는 단순히 ‘제품이 잘 안 팔렸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건 제품 문화와 조직 구조 전반의 실패였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지’보다 ‘얼마나 빨리 만들지’에 집중했고,

‘왜 이걸 만들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제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정의하지 않은 채,

설루션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열중했다. 경쟁사의 기능을 벤치마킹해 “이런 것도 해보자” 이야기했고, PO는 그것을 정리해 문서로 만들고 일정을 잡았다.

디자이너는 UI를 예쁘게 만들었고, 개발자는 마감에 맞춰 기능을 완성했다.


모든 과정이 매끄럽고 속도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제품이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신규 기능을 출시했지만 리텐션은 1주일을 넘기지 못했고

사용자는 빠르게 이탈했다.

상당히 좋은 리워드를 제공하며 핵심 사용자를 확보하려고 노력했지만 비용만 증가할 뿐 사용자는 기대만큼 더 오랜 기간 머물지 않았다.

갈수록 사용자가 줄어드는데 비해 기능은 더욱 다양해졌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만족하지 않을까? 조금은 더 오래 머물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더 이상 우리 제품에 머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생각보다 많은 회사에서 반복된다.

나는 이후에도 다양한 조직을 거치며, ‘실패하는 제품 조직’에 공통된 징후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패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에게서 관찰되는 실패 징후와 상세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목표 없는 개발

“일단 만들어보자”, “다들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식의 근거 없는 추진


2. 벤치마크 중독

경쟁사의 기능을 무작정 따라 하지만 고객 맥락은 무시됨


3. 맥락 없는 협업

기획–디자인–개발 사이의 정보가 단절되어 일방향 전달만 일어남


4. 고객 없는 의사결정

인터뷰나 테스트 없이 내부 직감이나 지시로 결정됨


5. 피처 중심 사고

“이 기능만 있으면 쓸 거야”라는 기대 속에 기능만 쌓아감


아마도 위 사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속해있던 기업의 상위 의사결정권자가 저러한 의사 결정을 했을 가능성도 있고,

스스로가 의사결정권자였던 상황에 역시나 유사한 사례를 경험하고 지시한 바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얼굴이 붉어질지도 모르겠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런 실패의 책임은 PO나 PM에게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직의 리더십, 문화, 구조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대표는 명확한 미션이나 전략 없이, 당장의 트렌드나 숫자에만 반응하고, PO는 전략가가 아니라 일정 관리자처럼 행동하며, 팀은 고객의 문제가 아닌 사내 요청에 반응한다.


이런 조직 안에서 만들어진 제품은,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물이 되기 쉽다.

실패라는 DNA는 생각보다 무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조직은 쉽게 와해되고, 성장동력을 빠르게 잃어간다.

새로운 기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더 이상 도전하지 않거나, 도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실패를 경험한 뒤 나는 매번 제품을 만들기 전, 세 가지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건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

그 문제는 진짜 존재하는가?

우리 팀은 그 문제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그 어떤 화려한 전략이나 깔끔한 문서도 의미가 없다.

구성원을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문서를 만들고 시각화된 자료를 만들고 있다면 위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면 좋겠다.

CEO나 PO에게는 실패의 경험이 중요하다. 그리고 빠르게 실패하는 것을 선호하는 팀도 있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음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물론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다면 이 말은 유효하다. 반면 한정된 자원을 갖고 있는 팀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팀은 오히려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낸다.


오랜 시간 공들여 제품을 만들고, 빅뱅 론칭을 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제품을 만들었으니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

그리고 실패했더라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회고는 없고,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팀을 좌지우지한다.

이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게 된다.


열심히 일하는 팀이 실패하는 이유는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많은 기업이 성장을 멈췄다.

Covid-19 사태가 진정되자 많은 기업이 재택을 없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결국 많은 기업이 일터로 복귀하도록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성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정렬되지 않은 열정이나 협업은 방향을 잃고 흩어질 뿐이다. 좋은 제품은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왜 만들어야 하는가’에서 출발한다.

나는 Alinity팀은 언제나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빠르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팀의 성장이 멈췄다는 것은 가까이 호흡하기만 할 뿐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애초에 틀렸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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