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전공의) 1년차, 2년차 시절의 단상
정신과 레지던트(전공의)의 과정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우선 의과대학을 졸업한다. (난이도 상; 입학, 학년 진급 다 쉽지 않다.)
2)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한다. (난이도 하; 합격률 90% 이상)
3) 종합병원 인턴 1년을 마쳐야 한다. (난이도 중; 개고생)
4) 종합병원 정신과 레지던트 모집에 합격한다. (난이도 중상; 인턴 성적, 시험성적도 좋고 운도 따라야 한다.)
이 과정을 뚫고 나면 정신과 의사로서의 과정이 시작된다.
정신과 의사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경험이 부족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레지던트(전공의, 수련의) 신분이니 "병아리" 정신과 의사이다. 여기서는 병아리 정신과 의사가 번듯한 정신과 의사가 되어 가는 레지던트 4년 과정 동안 내 경험을 적으려 한다.
참고로 레지던트 과정은 수련을 받는 종합병원에 따라 분위기나 수준이 상당히 다르고 같은 병원 내에서라고 하더라도 시기에 따라 다르다. 즉 그때 당시 같이 일하는 동기나 선배, 후배, 교수님에 따라 꽤 차이가 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한 편이고 개인적으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적인 행운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닐 수 있음을 미리 언급해 둔다.
그리고 그런 상황적인 행운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후배들에게 넘겨주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레지던트 1년차 : 응급실 당직
개인적으로 레지던트 4년의 기간 중 1년차 기간이 가장 힘들었다.
모든 다른 과 레지던트 과정도 1년차가 가장 힘들고 바쁘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겠으나, 당시 병원에서 힘들고 잡스러운 일은 당연히 레지던트 1년차 몫이었다.
정신과에서도 마찬가지였기에 당연히 1년차가 가장 힘들었고, 그밖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어려운 억압적인 환경도 있었다.
어쨌든 정신과 레지던트 1년차는 입원 환자 진료도 보지만 가장 주된 업무는 응급실 당직 진료였다.
대부분의 다른 전공과에서도 그랬지만 응급실 당직은 레지던트 1년차가 주로 도맡았다.
물론 고년차 레지던트에게 상의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직접적인 역할은 1년차의 일이다.
레지던트 중에 가장 경험이 적고 힘도 없는 1년차에게 가장 응급을 다투고 어려운 응급실 진료를 맡긴다는 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내가 레지던트 3년차 후반부쯤 되었을 때, 정신과 과장님께 응급실 당직체계를 바꾸자고 건의를 드린 적이 있다. 낮시간 응급실 진료는 교수님이나 고년차 레지던트가 직접 도와줄 수 있으니 1년차 레지던트에게 맡기고, 어려울 수밖에 없는 야간 응급실 진료는 2년차 이상 고년차 레지던트가 돌아가며 맡자는 내용이었다.
물론 나 역시 당직을 서겠다고 했다. 과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다른 레지던트에게 의견을 물었고 모든 레지던트의 반대에 결국 무산되었다.
씁쓸한 기억이지만 당시 응급실 당직이 몇 개월 남지 않았던 레지던트 1년차가 가장 반발했고 다른 레지던트들도 한동안 나를 피했던 것 같다. 최종 무산이 결정되기 전까지 치사하게 점심을 같이 안 먹으려 하더라.
종합병원 응급실에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몇 가지로 나뉜다.
1) 자살시도로 응급실을 왔을 때이다. 환자의 의식이 있다면 환자에게, 의식이 없다는 보호자나 가족에게 그 간의 상황을 확인하다. 중요한 건 추가적인 자살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향후 조치를 정해야 한다.
2) 갑자기 공황 증상이나 신체마비로 응급실로 왔는데 여러 내과적 진료에서 이상이 없어서 정신과로 연결되는 경우이다. 스트레스 상황이나 압박감을 확인하고 증상에 대해 설명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도록 돕는다.
3) 갑작스러운 착란 증상이나 괴이한 행동, 난폭한 행동으로 응급실을 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급성 정신과 질환이 있는지 혹은 약물이나 술 등에 의해을 이차적으로 발생한 건 아닌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응급입원을 고려한다.
4) 신체질환으로 응급실에 입원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뇌 기능이 나빠져 혼동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섬망이라고 하는데 환자가 다치지 않으면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돕고 발생원인을 교정하도록 조언한다.
5) 그 밖에 야간에 정신과 병동이나 일반 병동에서 발생한 정신과적 돌발 상황에 대해서도 대처를 해야 한다.
응급실 진료가 어려운 이유는 언제 갑자기 응급실에서 어떤 영역의 진료를 요청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순전히 응급실 진료만 보는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내가 1년차 시절에는 낮 동안 다른 진료업무를 하면서 응급실 진료도 봐야 했기에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금 입장에서야 응급실 진료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기에 다이내믹하고 보람도 크지만 당시 병아리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는 하나부터 열 가지가 다 곤욕이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든 건 내가 정신과에서 가장 낮은 직급이기에 응급실의 다른 전공과 고년차 레지던트와 이야기를 할 때 소위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응급실은 하나의 진료과가 아닌 다양한 진료과 의사가 의논하며 진료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경험이 많고 직급이 높으면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도 레지던트 1년차가 맡으면 우선순위가 밀려버린다.
내가 응급실 근무를 할 당시에는 레지던트 1년차가 환자를 보고 2년차에게 보고를 하면, 2년차가 3년차에게 보고하고, 3년차가 4년차에게 보고 하고, 필요하면 교수님에게 보고하는 시스템이었기에 모든 절차가 다 느리고 복잡했다.
보고를 거칠 때마다 이걸 더 확인해 봐라 이건 물어봤냐 등등 1년차에게는 일이 계속 떨어진다. 그렇다 보니 응급실에서 진료를 한 것 보다 보고하는 과정이 힘들었고 지금 돌이켜봐도 썩 기분 좋지 않은 기억이다.
다행히 내가 1년차를 마칠 때쯤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이 없어지고 1년차가 응급실 관련 상황을 당직 교수님에게 바로 보고하고 상의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나아졌다.
힘들기는 했지만 응급실 진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힘들었던 환자나 보람을 느꼈던 환자, 엄청 혼나게 만들었던 환자가 지금도 떠오른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그다음 날에도 진료를 봐야 했던 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1년 동안 응급실 진료를 통해서 어떤 환자가 와도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던 같다.
조금은 더 체계적인 진료환경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응급실에서의 정신과 진료를 응급정신의학이라는 영역으로 구분해서 외국은 별도의 추가적인 수련과정도 있고 전담 교수진도 있다. 우리나라도 작년(2019)에 국회에서 응급정신의료체계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장 긴급하고 어렵고 복잡한 의료장소에 보다 경험을 갖춘 정신과 의사가 응급정신의학 체계 안에서 진료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레지던트 2년차 : 정신과 의사로서의 기본기
레지던트 1년차와 2년차는 대부분 정신과 보호(폐쇄) 병동 내에서 생활한다.
실제도 대부분의 시간을 정신과 병동 안에서 보낸다. 내가 있었던 병원은 1년차, 2년차 레지던트방이 정신과 폐쇄병동 내에 있었기에 출근을 해서 퇴근할 때까지 입원 환자와 같은 공간에서 지냈다. 1년차 때는 응급실에라도 자주 왔다 갔다 하지만 2년차는 입원 환자를 거의 전담하며 병동 진료의 책임을 진다.
혹여나 증상이 심한 환자가 소리를 지르거나 돌발 행동을 하면 병동 내 레지던트방에 있던 레지던트가 같이 나가서 바로 대처를 한다. 환자로서도 주치의가 바로 대응하는 것이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환자와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환자의 증상을 더 자세히 파악하고 실생활에서의 어려움도 가까이서 보게 된다. 그만큼 환자의 증상이나 상황을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어느 지방대학병원은 정신과 레지던트 1년차 시작 시기에 환자와 같은 옷을 입히고 병동에서 환자처럼 생활하게 한다는데, 이건 좀 과하다 싶지만 그만큼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중요하다.
정신과는 다른 과와 다르게 입원 환경이 고립되어 있다.
강화유리나 창살로 창문은 막혀있고 병동문은 이중 삼중으로 외부와 분리된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 자신이나 타인에게 위험한 행동이 있을 수 있기에 안전한 병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심한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외부 환경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종합병원 전체 구조에서 정신과 병동이 어디에 있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당시 내가 있던 병원은 정신과 병동이 병원의 가장 구석에 숨겨져 있다시피 했다.
어떻게 보면 병원에서 가장 구석의 안 좋은 공간을 정신과 병동으로 사용하게 한 셈이다. 그렇다 보니 같은 병원 내에 있는 다른 과 레지던트들은 내가 레지던트 2년차 기간 동안 병원에 있는지 몰랐다고 하기도 했다. 병동 자체도 고립되어 있는데 위치마저 구석에 있다 보니 생기는 오해이다.
그런데 이런 고립된 위치는 응급상황에서 문제를 만든다.
실제 레지던트 시절 환자가 떡을 먹다 기도가 막히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대학병원 안에 있었음에도 정신과 병동이 병원의 가장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응급호출에도("코드블루"라고도 하고 당시 병원에서는 "파랑새"라고 했다.) 내외과 의사가 꽤 늦게 병동에 도착했다. 심지어 정신과 병동 내에 산소나 석션(흡입) 시스템이 없어 부랴부랴 산소탱크와 기계를 구한다고 난리를 쳤다.
결국 정신과 병동은 종합병원 안에 있었지만 다른 병동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내외과 시설이 완비되지 않은 그저 수용시설 같은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후 정신과 병동 내에 일부 시설을 보강하기는 했지만 외진 위치는 어쩔 수 없었다.
종합병원 내의 정신의학을 종합병원 정신의학(General Hospital Psychiatry)라고 부른다.
과거 수용시설 형식의 정신병원을 탈피해 종합병원 내에서 신체질환과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를 두루 아울러 진료하는 정신의학의 영역이다. 인간의 신체와 마음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쪽에 어려움이 생기면 다른 쪽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종합병원 정신의학 영역에서 정신과 진료의 위치는 다른 전공과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될 수 있도록 병원의 중심부에 위치하도록 한다. 그래야 내과나 외과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정서적인 어려움으로 진료를 같이 보기 편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병동 역시도 신체질환을 동반한 환자가 정신적인 진료도 보기 원활하게끔 일반병동 수준으로 갖춰놓고 다른 내외과 병동과 가깝게 위치한다. 외부에서의 연결이 통제되는 보호병동도 있지만 일반 병동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개방병동도 같이 운영을 한다.
이러한 종합병원 정신의학이 발전하려면 정신과 의사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반 의사의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정신과 질환에 대한 편견은 의사 집단 내에서도 꽤 심한 편일 수 있다.
이야기가 좀 돌긴 했지만, 레지던트 2년차는 다양한 입원환자를 진료하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기본기를 다듬는 시기이다.
레지던트 1년차 시기에는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조울증)처럼 비교적 약물치료가 중요한 정신과 질환을 담당했다면, 레지던트 2년차부터는 소아/노인, 성격장애, 신체질환 등 복합적인 상태의 입원환자를 진료하게 된다.
치료도 더 복잡하고 환자나 보호자 상담도 더욱 깊이 있게 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교수님과 상의해 나가는 과정도 이전보다 더 중요해진다.
환자를 대하면서 증상을 평가하고 질환을 파악해 가면서 모르는 부분은 공부하고 배우고 적용하고를 반복한다. 이때부터는 비교적 정신과 의사로서의 모습도 갖춰진다.
여기서 내가 레지던트 때 배웠던 교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레지던트 과정 동안 선배 복은 없었지만 스승 복은 있었다.
당시 내가 있었던 정신과 의국이("정신과"라고도 하고 "정신과학교실"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교수님 세대교체 시점이었다. 노교수님이 퇴임하시고 과장님이 바뀌고 젊은 교수님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같은 대학, 같은 병원 출신들로만 모여있었다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겠지만, 새롭게 오신 젊은 교수님들은 대부분 서울대병원에서 각 세부전공 임상강사 과정을 하고 오신 분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교수님들을 기억해 보자면 경륜이 풍부한 기존 교수님들과 의욕이 넘치는 젊은 교수님들의 조합이 시너지를 발휘했던 시점인 것 같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 보인다. 윗 연배의 교수님은 과장님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과장님은 젊은 교수들이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줬다. 다른 의국에서는 교수님끼리 심하게 다투거나 일부 교수님이 전권을 갖고 자기 분야만 키우려는 악습도 있었기에 정신과 의국은 주변 레지던트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젊은 교수님들은 각자의 세부전공에서 정신병, 강박, 불안, 기분, 소아, 노인, 정신약물 등의 영역에 대해 어느 쪽으로 쏠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레지던트를 가르쳤다. 누가 들으면 웃긴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 당시의!) 내 수련환경이 서울 빅 5 대학병원 정신과 수련환경 중에서도 상위권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수련 환경 중에 지금 상황에서도 정말 쉽지 않았을 세 가지 장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외부 학회에서 공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다. 의국이 폐쇄적일수록 외부에서 공부하는 걸 싫어한다. 그런데 당시 의국에서는 서울 등 외부에서 학회나 세미나를 참석한다면 KTX 교통비를 지원해 줬다. 일부 과장님이 허가하는 학회는 참가비도 의국에서 지원해 줬다. 다만 배워온 내용(책자 등)을 의국 다른 선생님과 공유해야 했다. 레지던트가 외래진료 등이 겹치지 않으면 교수님과 같이 다양한 학회에 참석하고 배워 왔고 서로 토론했다.
두 번째는 교수님들이 하는 환자 면담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막상 정신과 의사로서 자기가 환자와 면담하는 내용을 제자나 후배에게 그대로 들려주려면 꽤 불편하다. 그런데도 배우는 처지에서는 그만큼 좋은 경험이 없다. 당시 의국에서는 교수님이 환자와 1시간가량 면담하는 내용을 옆에서 같이 있는 과정이 수련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경험은 지금 내가 진료하는 데도 중요한 자산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레지던트 과정 중에 3개월 동안 캐나다 토론토대학병원에 파견을 나가는 과정이 있었다. 이 부분은 레지던트 3년차 시점이기도 하고 이야기할 내용이 많아 다음번에 설명하겠다.
("정신과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 (2) - 레지던트 3년차, 4년차 시절의 단상"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