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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Aug 16. 2019

2. 정신과 의사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왜 정신과 의사가 되었나?

정신과 전공의 시작부터 듣게 되는 질문

정신과 의사를 하게 되면 주구장창 (주야장천)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왜 정신과 의사가 되었느냐는 것. 매년 정신과 레지던트에  합격하고 나면 첫 모임에서 물어보는 고정 질문이다. 이후에도 여러 교수님이나 선배, 가까운 지인에게 공식자리에서든 술자리에서든 숱하게 듣게 된다. 요즘도 사회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조금 친해지고 나면 묻는 질문이니 앞으로도 계속 듣게 될 질문일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들

나 역시 가까운 정신과 동기나 선후배 선생님들에게 이 질문을 하곤 하니까 내가 이 질문을 듣는다고 불만은 없다. 이 질문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대답이 다양하다는 점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이가 정신과 질환으로 힘겨워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음먹었다는 이도 있었고, 정신과 진료는 응급이 없으니 당직도 적고 힘들지 않을 것 같아서 (물론 정신과에도 응급과 당직은 있다.) 결정했다는 이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 유독 자기에게 고민거리나 속마음을 털어놓아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고 믿는 이도 있었다.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고 싶다거나 사람을 더 깊이 알고 싶다거나 인간의 마음을 뇌과학적으로 밝혀내 보이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하긴 나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그 내용을 다 나열하자면 한도 없겠다.


의사가 과를 정하는 심리적 이유

반은 재미라고 생각하지만 옛날(!) 연구들 중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이 내과든, 외과든, 정신과든 각 과를 정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내과의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리적 기저에 있고, 외과의사에게는 사람을 칼로 베고 싶은 욕망이 합법적으로 표현된 거라는 식이다. 정신과 의사에게는 두 가지 정도를 크게 언급하는데, 첫 번째는 다른 사람의 비밀스러운 삶을 보고 싶은 관음증이고 두 번째는 자신이 정신과 질환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한다. 언급했듯 요즘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옛날 연구이니 재미 정도로 생각하자.


이른 시기에 정한 정신과 진료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치고 비교적 일찍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결정한 편이다. 의과대학 들어올 때부터 정신과를 생각해서 본과 2학년 무렵에는 마음을 정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일찍 정신과를 정한 데는 아무래도 어릴 적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정신과 의사가 종교를 언급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이야기고 때로는 부적절하지만, 그래도 개인적 배경은 무시할 수 없기에 이야기하자면 우리 집안은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이다. 나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할아버지까지 3대에 걸쳐 목사를 했으니 어릴 적에는 자연스레 목사에 대한 꿈을 꿨다. 물론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내가 목사를 할만한 깜도 아니고 신앙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알면서 목사가 아니라 의사가 되었다. (솔직히 목사가 되었다면 지금의 기독교에 절망하고 다른 직업을 다시 찾았을 것 같아 어찌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찌 되었든 목사 집안이라는 가정환경은 분명 내가 정신과 의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물론 목사의 역할과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엄연히 별개의 영역이지만 한 개인과 가정, 넓게는 사회적인 치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것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신의학과 종교(기독교)를 연계하여 진료를 하는 것은 의학적이지 않으므로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정신과 의사가 된 개인적인 배경으로 어릴 적 목사의 꿈을 정신과 의사로 변형하여 성취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전적으로 부인하긴 어렵다. 내가 선택한 가정환경은 아니지만 영향은 받을 수밖에 없다.


숲을 보고 싶은 마음

강조하지만 나는 정신의학과 종교는 엄연히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신과 진료에서 종교적 행위를 접목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할 생각도 없다. (무엇보다 내가 신실한 신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는 그저 내가 왜 정신과 의사가 되었느냐에 대한 배경적인 이야기로 일종의 업보 같은 거라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이러한 배경이 내 정신과 의사로서의 역량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 배경과 여러 가지 경험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겠으나 정신과 의사가 되어가면서 나는 질병보다는 사람을, 사람보다는 사회를 넓게 보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했다. 아니 되고자 한다. 아마 그래서인지 단지 진료실에만 있는 의사가 아니라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정신의학에서 다양한 전문지식을 배우려고 했고 공공의료를 포함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보다 앞으로 더 그렇게 되어 가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밖에 사소한 이유들

나중에 의과대학 실습과 대학병원 인턴을 다 마칠 때쯤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알고 봤더니 나는 의사치고 피 보는 것이 무서웠고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치료를 하기 싫어했다. (병원에서 하는 대부분의 치료는 아프다.)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죽어가는 걸 바라봐야 하는 것도 두려웠다. (그럼에도 나중에 암환자 정신건강을 전공했으니 인생의 아이러니랄까.) 이런 성향을 고려하고 나면 내가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과는 별로 없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일찍이 정신과를 생각했던 것은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까, 만약 학생 때부터 내과나 외과를 하고 싶었다면 지금까지 꽤나 고전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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