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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11. 2022

의사 가운 없이 진료하는 정신과 의사

정신과 의사, 암 환자를 만나다.

정신종양학 관련 해외학회를 갔을 때의 일이다. 학회 중 한 파트가 세계 각국에서 정신종양학의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미국, 캐나다 , 한국, 중국, 독일,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세계 각국의 전문가가 참가해서 그 나라에서 암 진료에서 정신사회적인 돌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나름 우리나라에서의 상황을 발표했고 이어 중국에서 온 선생님도 발표를 했다. 발표 내용은 서구에 비해서는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각 주요 암병원에서 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를 평가하고 관리하고 관련된 연구를 하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런데 발표를 마치고 난 후, 토론의 주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한 참석자가 한국과 중국에서 진료하는 사진을 보고 아시아에서는 왜 정신과 의사가 흰가운을 입고 있느냐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이다. 흰 가운은 의사가 감염이나 오염을 보호하고 다른 환자에게 전파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위생의 용도인데 수술이나 시술을 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가 진료 환경에서 굳이 흰가운을 입을 필요가 있겠냐는 이유다. 더욱이 암 환자는 여러 의료적 치료에 의해서 시달리는 과정에 있는데 그런 디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정신종양 의사가 흰가운을 같이 입고 가서 정서적인 부담을 더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말이야 친절하게 했지만 일종의 지적 같은 거였다. 그렇지만 의사는 흰가운을 입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있는 우리로서는 그런 지적이 오히려 의아했다.




일반적인 의료 진료 환경과 정신과의 진료 환경도 사뭇 다르지만 정신과에서의 진료와 암 환자를 대하는 정신과 진료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암과 정신질환 모두 환자 당사자에게는 정서적으로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기에 다른 어떤 진료보다도 의료진 입장에서 대한 태도도 다른 것이 맞습니다. 앞서 해외학회에서의 에피소드에서 흰가운을 지적한 의사는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전 점이 저의 입장에서는 정신과에, 그리고 정신종양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로 처음으로 암을 접하게 된 시기는 레지던트 시기였습니다. 어찌 보면 운이 좋게도 제가 레지던트를 할 때, 제가 속해 있던 대학병원에는 암 환자의 정신적 관리에 관심을 가지고 진료와 연구를 해오신 노교수님이 계셨습니다. (노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좀 죄송스럽기는 합니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신 임효덕 교수님이십니다. 정신 치료자(분석가)이기도 하신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암 환자, 특히 유방암 환자에게 암의 발생 과정에서와 치료 과정에서 정서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상담 진료를 하신 분입니다. 암이 발생하기까지는 여러 삶에서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한 삶을 방해해서 건강을 소홀히 하거나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게을리하면서 암의 조기발견을 늦춰 병을 키우게 할 수는 있습니다. 레지던트 시절 임 교수님의 지도하에 곁에서 지켜봤던 환자들은 암이라는 트라우마 상황에서 암으로 인한 절망감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금의 삶에서 암을 치료하는데 바꿔야 할 마음가짐이나 삶의 태도를 확인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집중해야 할 암 치료를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제가 배웠던 병원에서는 교수님이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거나 녹음본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대가라고 해도 내가 직접 상담하는 걸 제자에게 보여준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일이죠. 이걸 그 병원을 떠나고 다른 병원에 있으면서 이런 교육이 흔치 않다는 걸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어쨌든 운이 좋게도 저는 그런 환경에서 암 환자가 진단과 치료시기 경험하는 여러 감정의 상태를 곁에서 보고 어떻게 이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것이 이 임효덕 교수님이 가운을 입지 않고 진료를 보셨다는 거죠. 사실 의료 상황에서 가운이라는 것은 위생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권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 앉아 있으면 환자 입장에서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죠. 그렇데 임 교수님은 그 대학병원에서 유일하게 가운을 입지 않고 병원에서의 모든 일들 하셨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위생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진료가 없을뿐더러 괜히 환자 앞에서 의사라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이지요. 가끔 의사의 권위가 필요할 때, 예를 들자면 교수회의를 들어가셔야 하거나 의사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성향을 가진 환자나 보호자와의 면담이 있거나 하면, 그럴 때는 교수님도 가운을 입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환자와 평등한 관계에서 진료를 보려 하셨습니다. 그런 교수님을 멋있다고 저도 따라 해 본 적이 있었는데, 풋내기 정신과 레지던트가 어설프게 따라 하기에는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오히려 의사가 아닌 것처럼 보여 오해를 사기도 했죠. 물론 저도 이제는 가운을 입고 진료를 보지 않습니다.


암 환자를 돌보는 정신과 의사를 해야겠다고 보다 마음은 먹게 된 시기는 레지던트 후반 캐나다 토론토로 단기 연수를 갔을 때입니다. 좋은 기회로 다시에 토론토대학병원(UHN, University Hospital Network) 정신과에서 다양한 정신과 세부 학문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조현병, 기분장애, 보호병동, 자문 정신의학, 정신종양학 등 직접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간접적으로 진료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자문 정신의학과 정신종양학에 관심이 갔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러 진료를 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영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상황이 그 두 분야이긴 했습니다. 왜냐하면 조현병이나 우울증, 불안증 등은 개인적인 상황이 워낙 다양하고 문화적인 이해가 같이 필요하다 보니 진료상황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걸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거든요. 그렇지만 자문 정신의학(신체질환에서의 정신과적 관리)나 정신종양학적 상황에서는 대화의 주제가 질병과 관련되어 있었기에 영어가 조금 더 수월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 때문에 이쪽 분야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요.

토론토대학병원 부속 암병원은 Princess Margarett Cancer Centre로 얼마 전 돌아가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인 Princess Margaret Rose Windsor의 이름을 딴 병원입니다. 그곳에서 암 진료의 정신사회적 관리를 담당하는 교수님이 Gary Rodin입니다. 이 분 역시 암 경험자에서의 정신치료적 진료에서 대가이고 CALM(Managing Cancer And Living Meaningfully)라는 암 환자에서의 치료기법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단기 연수기간 동안에는 주로 이 분의 진료를 곁에서 볼 수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이 가운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은 당연하거니와 진료실 책상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의사 책상을 앞에 두고 의사가 앉는 자리와 환자가 앉는 자리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동일한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사이에 탁자만 하나 놓아있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마주 앉아 있으면 시선처리 등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테니 서로 45도 정도 각도로 비스듬히 앉아서 마치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듯 진료를 하는 거죠.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는지 어떤 불편감이 있는지를 이야기 나눕니다.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가면서도 지금 주변에 누가 있는지 그 관계에서의 이야기나 때로는 예전에 살아왔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가운데 현재까지 이어지는 삶의 가치나 의미를 이야기합니다. 암이라는 큰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과정을 견뎌나갈지 같이 찾아나갑니다.

물론 이런 대화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암 자체가 가진 불편감, 그리고 그 치료과정에서 동반되는 불편감이 있기에 대화가 끊기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오히려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의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에서의 환경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환경마저 고압적이라면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병이 내가 원한 병은 없다지만 암은 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순간 불쑥 평범하던 내 일상에 끼어들어서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놓는 것 같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느 순간 나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는 환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그 누구도 다 언젠가는 마주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암환자와 대화를 나눌 때는 상호 존중과 소통이 필요합니다. 내가 의사여서 당신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나는 의사이지만 내가 가진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당신이 겪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을 함께 이해하고 나누고 견뎌내며 그 가운데서도 내가 살아가는 힘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있는 동안, 퀘벡에서 정신과 전문의를 따고 정신종양 전문가 과정을 위해 같이 와 있던 정신과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저보다야 더 선배님이라고 봐야겠죠. 그분의 교육과정 중에는 Gary Rodin 선생님이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암 환자와 직접 진료를 하고 이후 토론을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저도 같이 참관을 했죠.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 선생님은 환자에게 편안하게 대하면서 자신을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나는 어떻게 부를지를 물어봤습니다. 환자도 당연히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문화에서야 당연히 선생님, 환자분 등으로 서로 존대를 하거나 설명 이름을 부르더라도 '~님', '~씨'를 붙이는 것이 예의입니다만 미국 사회에서는 조금 가까워지면 존칭을 쓰기보다 편하게 이름을 부르곤 합니다. 심지어 Gary Rodin 선생님도 저에게 편하게 Gary라고 부르라고 하고 세미나 시간에도 교수든 제자든 편하게 서로 이름을 부르죠. 그렇기에 진료 초반에 진료를 하는 선생님이 편하게 이름을 부르라고 하는 건 환자와 거리를 줄이며 소통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감탄을 했었습니다.

30분 넘게 이어진 상담이 끝나고 환자가 나간 후 저희끼리 진료상황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의외로 Gary Rodin 선생님은 진료 초반 서로 이름으로 호칭을 하게 한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서로 편안한 환경에서 속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곤 해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암이라는 질병과 더불어 정신과적 상담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아직까지 마음의 문이 충분히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가 섣불리 관계를 좁혀나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고는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라는 질문도 이미 답을 정해놓고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그 상황에서 '저는 Mr 누구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소통이란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라고는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존중과 신뢰를 가져가면서 이제는 들어오실까요라고 제안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암이라는 트라우마 앞에, 암뿐만 아니라 모든 트라우마 상황에서, 사람이 가지는 첫 번째 반응은 얼어버리는(freezing) 겁니다. 트라우마라는 상황 앞에 압도되어 버리는 거겠죠. 그리고 그 트라우마라는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치료자가 필요한 역할은 그 얼어버린 마음의 상태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녹이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가도록 지지해 주는 겁니다. 가운을 입지 않는 것, 서로 동일한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것, 편한 호칭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그 과정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암이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 앞에서 의사가 문턱을 낮추고 소통하는 방법이지만 그 역시 '꼭 이렇게 해야만 해!'가 아니라 서로 간의 마음의 상태에 맞춰 접근해 나가야 하는 거겠죠. 그리고 이 부분은 진료 상황을 떠나서 모든 소통에서의 기본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정신종양의 진료에서는 의사 가운도 필요 없지만 정신과 소속이라는 명찰도 필요 없습니다.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이라는 학문이 종양 정신학(onco-psychiatry)라고 붙여지지 않은 이유가 암이라는 사회적으로 부담스러운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 정신질환이라는 추가적인 낙인을 찍지 말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요.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신적인 어려움(증상)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병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통상적인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정신적 어려움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 역시 정신과라는 타이틀을 빼고 통상적인 암을 치료하는 의료진으로 포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세계적으로 암과 관련된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미국에서 암 병원을 인증하는 NCCN(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에서도 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암병원 내 정신과 진료는 정신과 소속이 아닌 암 병원 내의 통합진료센터와 같은 중립적인 의미의 부서에서 하고 있죠. National Comprehensive Cancer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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