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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12. 2022

암 환자? 암 생존자? 암 경험자?

정신과 의사, 암 환자를 만나다.

A 씨는 4년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아이도 아직 어리고 직장에서 일도 중요한 시기에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초기는 아니어서 걱정이 많았지만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2년 전부터는 정기적인 추적검사만 하고 있고 이제는 그 간격도 꽤 길어졌다. 회사에서의 역할도 다시 자리를 잡았고 가족이나 동료도 더 이상 나를 암환자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끔 많이 피곤하거나 배가 찌릿하게 아플 때는 혹시나 재발한 것은 아닐까 불안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비교적 암에 대한 생각을 털어 내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불쑥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정기검진을 하러 병원에 가거나 그냥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가더라도 기록을 보고는 암환자라는 호칭이 따라온다. 친구들도 회식자리가 있으면 나를 암 환자 취급을 한다. 이제는 환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 환자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누군가는 나를 암 생존자라고 하기도 하고 암 경험자라고도 하는데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제법 암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하는데 5년, 10년 뒤에는 스스로 암과 관련해서 어떤 호칭으로 불려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 조금 먹먹해 지곤 한다.




말이란 참 어렵습니다. 무섭기도 하고요. 특히 누군가를 지칭하는 호칭은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특히나 조심스럽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하는 암에 대한 호칭도 그렇습니다.


암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옵니다. 때론 유전적 요인이나 생활 습관이나 환경이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암은 그냥 확률적인 운명으로 찾아옵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암은 그 누구의 잘못을 탓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한순간 병원에서 암이라고 진단되는 순간 그렇게 우리는 암 환자가 되어버립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니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은 치료가 중요하기에 암 환자라는 꼬리표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병원에서는 '환자 분'이라 호칭으로, 밖에는 그냥 '환자'로 살아갑니다. 사회적 역할의 상당 부분을 줄이고 꼭 필요한 대인관계 외에는 누구를 잘 만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서로 어색함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돌봐줄 가족이 있다면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와 화장실과 간단한 산책과 오늘 챙겨 먹어야만 할 음식과 함께 보냅니다. 수술을 하고 항암 화학요법을 하고 방사선 치료나 기타 호르몬 또는 면역치료 등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암 치료 기간을 보내고 나면 암의 상태에 따라 추가적인 치료를 해야 할 수 있고 추적관찰만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암 치료의 발전 (특히 항암 화학요법) 및 조기 발견으로 인해 일정기간의 치료 이후에는 초기 암이나 진행암이라 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관해 상태, 즉 검사상으로는 암 조직이 발견되지 않지만 재발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 상태로 추적관찰을 향후 수년간 지속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호칭에 대한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암 치료를 하는 동안이야 몸 안에 암 조직이 있고 암으로 인해서든 치료로 인해서든 통증이나 피로, 구역/구토, 저림 등 여러 불편감이 있으니 누가 보더라도 환자인데, 치료를 마치고 관해 상태가 되면 상당 부분의 불편감은 줄어듭니다. 물론 피로감이나 머리에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나 손발 저림 등은 좀 더 지속되지만 주변 사람들도 느낄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럼 이 시기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암 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환자 같고 그렇다고 환자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암으로 인한 불편감이나 재발의 위험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앞선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현재의 암 관리는 암 치료 시기뿐 아니라 그 이후 일상생활과 삶의 질을 회복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 치료 이후 암 환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관리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는 암 서바이버(Cancer Survivor, 생존자라고 번역체를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좁은 의미는 암 치료를 마친 후 검사 상 암의 근거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암 서바이버의 의미가 더 확장되었습니다. 암 진단 시점부터 치료를 받는 동안이나 암이 관해되지 않은 상태로 추가적인 치료를 더 받는 상황이나 진행암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 서바이버의 의미는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person living with cancer)'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여러 암과 관련된 해외 연구 논문을 제목을 보더라도 '암 환자(cancer patients)'라는 표현보다는 '암 서바이버(cancer survivors)' 또는 '암을 진단받는 사람(person diagnosed with cancer)'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죠. 실제 제가 유방암 환자 관련 논문을 썼을 때도 처음 논문 제목에 '유방암 환자에서의(among breast cancer patients)'라고 제출했는데, 학술지에서 '유방암을 가진 여성에서의(among women with breast cancer)'로 수정하라고 지적이 들어와서 바꿨죠. 게다가 최근에 암 서버이버의 의미는 암을 경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정확히는 돌보는 이, caregiver)으로 보다 확장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이런 관점의 변화는 암 치료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암 치료는 암 조직 자체를 없애는데 집중했습니다. 말 그래도 치료에 중심을 둔 셈이죠.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암은 치료해서 재발하지 않으면 살고, 재발하면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고 봤으니 진단 이후 치료의 결과가 중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암 치료는 관점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물론 초기 치료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치료 이후의 관리도 중요해졌습니다. 항암 화학요법이나 표적치료, 면역치료, 호르몬 치료 등등으로 인해서 관해 상태가 아닌 암 조직이 남아 있더라도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서 삶을 이어 갈 수 있고, 관해 이후 재발을 예방하는 관리가 중요하며, 재발을 했다고 하더라도 추가적인 치료를 통한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암은 초기 치료가 중심을 이루는 "급성질환"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리가 중심이 되는 "만성질환"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환자라는 표현보다는 보다 넓은 의미가 표현이 필요해진 셈입니다.


이 암 서바이버라는 호칭을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암 생존자로 그대로 번역해 사용합니다. 암관리법 제12조 2에 따르면 암 생존자는 암환자 중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에서처럼 넓은 의미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다면 '생존자'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저는 다소 불편감이 있습니다. 일단 영어의 "survive"를 "생존하다"로 그래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게 과연 정확한 번역일까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거죠. 물론 제가 영문학자는 아닙니다만, 영어에서의 'survive'의 어감과 번역체인 '생존'의 어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영어의 접두어인 'sur-'은 '극복한, 넘어선(beyond)'라는 의미도 있지만 '-위에(above)'라는 의미도 있거든요. 그래서 영어 'survive'는 '생존하다, 극복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위에 서있다. 함께 있다'라는 의미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어권에서는 암을 치료 중이거나 진행암인 상황에서도 암 서바이버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암 생존자라는 표현은 어색해져 버리죠. 아직 암을 치료 중이고, 암이 재발한 상황인데 암 생존자라고 하기에는 아무래도 이상해져 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암 생존자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계기는 3차 암관리 종합계획에 따라 2017년부터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이 시범사업으로 추진되면서부터입니다.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은 2020년 암관리법에 명시되면서 본격 시행되게 되죠. 다만 앞서서의 '암 생존자'라는 단어의 모순성 때문인지, 암 관리법에서는 '암 생존자'를 말기암 환자를 제외한 암 환자로 넓게 정의하면서도,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의 대상은 '암 진단 후 완치를 목적으로 주요 치료(수술, 항암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등)를 마친 암환자와 그 가족'으로 좁혀서 구정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가족이 포함된 거는 다행이네요. 물론 제가 정부 정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도 보건복지부 암관리위원회 전문위원이기도 하기에 누워서 침 뱉는 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책 실무진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고충도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아무래도 한정된 예산이라는 제한점이 있으니까요. 그렇더라도 저는 개인적으로 '암 생존자'라는 번역체는 향후 수정이 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암은 더 이상 죽느냐 사느냐 식으로 싸워서 승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꽤 긴 기간 동안 관리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기에 생존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이야기를 들먹이는 게 좀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같은 한자어를 쓰는 나라이기에 이럴 때 참고해볼 만은 합니다. (참고로 대만과 중국에서는 아직까지 암 환자, 암 환우 정도의 표현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미국의 암 서바이버를 어떤 표현으로 사용해야 할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에는 암 생존자라는 표현으로 사용을 하다가 지금은 암 서바이버의 좁은 의미(즉 관해적 치료를 마친 암 환자)는 암 생존자로 표현하지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암 서바이버의 넓은 의미는 암 서바이버(がんサバイバー)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처럼 암 서바이버라는 표현을 쓰자는 건 아닙니다. 영어식 표현을 그대로 쓸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암과 관련된 대표적인 민간단체인 대한암협회에서 흥미로운 조사를 했습니다. 암을 경험하신 분들에게 '암 생존자'와 '암 경험자'라는 표현 중에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암 경험자'를 선호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금 많은 암 단체에서는 암 생존자라는 표현 대신 암 경험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암 경험자라는 표현을 더 쓰는 편이고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국립암센터에 계신 여러 실무진 분들도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전문가의 의견도 수렴하고 실제 암 환자 분들의 의견도 듣고 있고요. 물론 정책에 맞게 대중의 인식이 바뀌어 나가는 측면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대중의 인식에 맞게 정책이 맞춰가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만성질환으로 변해가는 암 관리의 관점에서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고 삶을 이어가는 여러분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https://www.cancer.net/survivorship/what-cancer-survivorship

https://www.ncc.re.kr/main.ncc?uri=manage01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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