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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10. 2022

암 환자를 위한 정신건강, 정신종양학.

정신과 의사, 암 환자를 만나다.

지미(Jimmie)는 1928년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님은 고등학교 중퇴했지만 그 시골마을에서는 가족 친척이 다 목화 농장일을 했기에 아주 기본적인 교육만 받아도 생활에는 무리가 없었다. 남자아이에는 바비, 여자아이에는 지미라는 이름이 흔히 붙여지던 시절이었다. 삼촌이나 사촌과 어울리던 지미는 목화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주변 사람들과 딜리 어릴 적부터 과학과 생물학을 좋아했다. 자연스레 간호사나 의사를 꿈꿨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상황이었기에 공부를 이어하기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가족의 도움으로 어렵게 지역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들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의사가 되는 일이 드믈었다. 고향에서는 지미가 첫 번째 여성 의사였고 그녀가 졸업한 의과대학 동기 85명 중에서도 단 3명이 여성이었다. 의사가 된 지미는 그녀가 살던 시골마을에서 소아과나 일반의사로서 소박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런데 삶은 우리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고 트라우마는 불현듯 예고 없이 찾아온다. 결혼을 하고 인턴 의사를 하던 와중 그녀의 남편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으며 그녀는 지역을 떠나 보스턴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정신과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어릴 적 삼촌이 신경쇠약에 걸려 정신과 입원을 한 적이 있었고 인턴을 하면서도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정신증상과 등 정신의학에 관심이 있었다. 우연과 필연의 과정으로 그녀는 정신과 의사의 길을 가게 된다.

지미가 레지던트 시절, 보스턴에서는 소아마비가 대유행을 했다. 매일 응급실로 찾아오는 소아마비 환자와 그 가족을 보면서 신체적 질병과 그 후유증이 한 개인과 가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신체의 병과 정신적인 병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 여행 중에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암 치료에서 복합 항암 화학요법(다양한 항암제의 조합으로 하는 약물적 암 치료)을 처음 도입해 치료하는 종양학 의사였다. 그 전까지의 암 치료를 수술이 거의 유일한 치료 수단이었고 진행된 암은 불치병에 가까웠다. 항암 화학요법의 발전은 암 치료에서는 획기적인 변화로 그전까지는 치료할 수 없었던 진행암에서의 생존율을 높이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암도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체질환자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지미에게 암 치료를 하는 남편의 임상적 경험과 조언을 지미로 하여금 자연스레 암 환자에서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이 이야기는 정신종양학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지미 홀랜드(Jimmie C. Holland)의 이야기입니다.   지미 홀랜드는 세계적인 암센터인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erring Cencer Center, MSK)에서 정신종양학의 기틀을 세운 분입니다. 그녀가 MSK 암센터에 처음 들어갔던 1977년만 하더라도 암 치료는 신체질환 치료 중심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암은 아주 치명적인 질환이었고 이제 막 항암 화학요법이나 방사선 치료 등의 수술 외적인 치료가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그저 괜찮을 거니 걱정하지 말라는 "막연한 긍정"만이 암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암환자의 정신적 상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시기에 지미 홀랜드는 암 환자가 암 치료를 하는 과정에 어떤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암 환자가 여러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관리를 받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죠. 암 치료는 점점 발전해서 암이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니라 극복 가능한 병으로 바뀌어 가던 와중이었기에 암 치료과정과 그 이후까지 더 나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의학적 도움은 절실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녀는 2017년 크리스마스이브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항암 화학요법의 선구자이자 지미 홀랜드의 남편이고 그녀의 의학적 동료였던 제임스 홀랜드(James F. Holland)도 2018년 초 그녀의 곁으로 함께 합니다.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은 정신의학(Psychiatry)과 종양학(Oncology)의 합성어로 암 환자에서의 정신건강을 담당하는 의학 분야입니다. 과거에는 정신질환과 암은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질환이었습니다. 지미 홀랜드가 암센터에서 진료를 시작하던 1950년대만 하더라도 유방암 여성에서의 사회운동을 뉴욕 타임스에 홍보를 하려 했을 때 여성과 암에 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을 정도이고 택시를 타고 암센터를 가려고 하면 택시기사가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내려줬다고 하니까요. 당시만 하더라도 암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불치병이었고 정신질환은 심적으로 나약하다는 증거였습니다. 암에 걸린 환자에게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고는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긍정이었지요. 암 환자에 대한 무책임한 희망을 홀랜드는 "막연한 긍정에 의한 폭력"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홀랜드는 암 환자는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우울, 불안, 공포를 포함한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정상적으로 하게 되고 이를 정확히 평가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지미 홀랜드와 그의 여러 동료 의사들의 지속된 연구와 노력과 함께, 여러 암 환자들의 투병 경험담이 사회적으로 공개되면서 암 환자에 대한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의 발전으로 진행암의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암의 치료시기뿐 아니라 암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암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라면 우리는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고 그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그 과정 전체를 바라보면서 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2007년 미국 의학원(미국뿐 아니라 세계 의료의 방향을 정하는 공식 의료기구)은 암 치료에서 정신사회적 요구를 만족하는 전인적 돌봄을 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Cancer Care for the Whole Patient: Meeting Psychosocial Health Needs) 물론 이러한 정신사회적 돌봄이 실제 의료에서 현실화되기까지는 그 이후에도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죠.


정신종양학에서의 진료 개념은 단순하게 이야기해 본다면, 암의 모든 과정에서 암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을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따른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거죠. 이런 정서적 어려움을 디스트레스(distress)라고 통칭합니다. 사실 여기서 영어단어의 어원에 대한 고민을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좀 재미 삼아 돌아서 가 본다면, 이 디스트레스라는 단어는 때론 생뚱맞습니다. 스트레스면 스트레스이지, 디스트레스라고 하니 발음만 듣고는 오히려 '없애다'는 의미의 영어 접두어 'de-'라고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행위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추측해 본다면 영어 접두어 'di-'는 '두 개의'라는 뜻으로 디스트레스는 암과 더불어 오는 스트레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왕 단어에 대한 이야기로 빠진 김에 한 가지 이야기를 더하자면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라는 단어입니다. 제가 어디 가서 정신종양학 전문가라고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정신에도 종양이 생기냐고 물어보거든요. 따지고 보면 이것도 영어식 번역에 의해 생기는 오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종양학은 정신의학(psychiatry)과 종양학(oncology, 이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종양내과라고 하는 게 문화적으로는 맞는 번역입니다)의 합성어이고, 영어에서는 합성어 뒤에 오는 단어가 더 강조되기 때문에 종양학을 더 강조하기 위해서 정신종양학(psycho-oncology)이 되었습니다. 즉, 종양학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서 정신의학적 관리가 담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환자에 대한 일종의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암 환자의 입장에서는 암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거든요. 거기에 정신적인 질환이라는 추가적인 사회적 낙인을 찍으면 안 된다는 거죠. 즉 암 환자에서는 당연히 정서적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별도의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암을 치료하는 종양학 안에 포함시켜 같이 관리해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학문의 단어 하나를 정하는데도 이런 섬세한 의미를 가지는 서구가 부럽기도 하지만, 막상 우리 정서에는 어색한 정신종양학이라는 단어가 참 아이러니하죠. 


이야기가 많이 겉돌았습니다만 각설하고, 정신종양학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암 환자 관리에서 '디스트레스'를 6번째 활력징후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관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활력징후는 병을 치료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지표로 혈압, 맥박, 체온, 호흡이 있고 통증도 최근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통증과 더불어 정신적 통증인 디스트레스도 추가로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디스트레스 온도계라는 간단한 도구를 이용해서 암의 각 시기별로 개개인의 디스트레스를 평가하고 어느 정도 이상의 디스트레스라면 암 치료와 병행해서 관리합니다. 물론 암은 개개인에 따라, 암의 여러 단계 및 시기에 따라 다양한 디스트레스 항목을 가집니다. 불안도 암 진단 시기와 치료, 재발, 죽음 등 여러 상황에 대한 불안이 다 다르고, 수술 이후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 피로감, 인지기능 저하, 남성/여성성의 손상으로 인한 부담, 관계에서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등 암의 상황보다 더 많은 디스트레스 상황이 있습니다.


의학의 관점은 항상 달라져왔습니다. 정확히는 발전해 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네요. 초창기에는 증상을 조절하기 위한 땜질식 대증요법이었다면,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식으로 발전해 갔고, 이후에는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쪽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한 개인이 질병으로 인한 과정 중에 인간으로의 가치를 존중받고 삶의 기능을 지속 발전시키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갈 수 있도록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중에 우리는 사람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정신종양학은 현대의학에서 놓치고 있었던 사람됨의 소중한 영역을 채워 넣는 의학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https://www.nytimes.com/2018/01/04/obituaries/jimmie-holland-who-cared-for-the-cancer-patients-mind-dies-at-89.html

https://ascopost.com/issues/january-25-2018/celebrating-the-life-of-jimmie-holland-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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