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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Aug 08. 2022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다.

정신과 의사, 암 환자를 만나다.

A 씨는 올해 50세이다. 지천명이라는 나이지만 하늘의 뜻보다는 여전히 당장 하루를 사는데 급급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 50을 넘길 때 몸이 한 번은 말썽이라는 이야기는 주변 친구들을 통해서 익히 듣기는 했지만 막상 실제 이 나이가 되니 막연했던 몸에 대한 걱정이 실제의 상황처럼 와닿는다. 

그러고 보니 건강에 대한 마음이 이전과 다르다.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5년 전부터 건강검진을 하면 의사에게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은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는 체중관리를 하고 운동을 하면 자연스레 좋아지지 않을까 하며 미뤄왔지만 그렇다고 몸 관리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올해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고 이제는 약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올해는 유독 건강검진을 앞두고 마음이 다르다. 예전 같으면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소위 성인병에 대한 염려 정도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암과 같은 큰 병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 암이 늘었다. 예전에야 어느 친구 부모님이 무슨 암으로 돌아가셨데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최근에는 비슷한 연배에서 암 소식이 들린다. 회사 어느 부장님이 위암으로 수술을 하고 병가를 내셨다던가, 친구의 아내가 유방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거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암이 남일 같지가 않다. 어느 날 문득 내 몸 상태를 보니 나도 더 이상 암에서 안전한 것 같지 않다. 평소보다 피로감도 더 느끼는 것 같고 소화도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마른기침이 계속될 때는 폐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증상이 없이 숨어 있는 암이 더 무섭다는데 혹여 몸 어딘가에서 나도 모르게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나도 암에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공포가 밀려온다. 잊고 있던 건강검진을 어서 예약해야겠다. 그런데 암 검진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과연 검사를 하고 나면 안심해도 되는 건지 난감하다.




누구나 건강하고 싶습니다. 돈보다 명예보다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잘 알죠. 그런데 우리는 막상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챙기지 못합니다. 평소 잘 지켜야 하는 게 건강이지만 막상 건강은 빨간 불이 켜지고서야 신경을 쓰게 되죠. 그건 의사인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료실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몸과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저도 평상시에는 건강보다는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 만나야 하는 사람에, 휴식이라는 명분의 삶의 즐거움에 건강을 뒷전으로 넘겨버리기 일 수입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 건강을 삶의 우선순위로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저도 잘 압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는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옵니다. 몸과 마음을 같이 보는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질병이 뭘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겁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생활 습관병 같은 것도 있고, 주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같은 질환도 있습니다. 갑자기 혹은 만성적으로 신체의 특정 장기가 손상되는 신부전이나 간염, 심근염도 있을 수 있고,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질환도 있을 수 있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나 판단력 등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치매도 있습니다. 그리고 몸의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정상세포를 잠식해 가는 암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병은 다 고통스럽고 무섭습니다. 어느 질병 하나 만만한 병은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질병을 당장 염려하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물론 병이 생긴다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가 대부분의 병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런 병이 지금은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 갑작스레 병이 발생하고 그 병이 치명적이라면 미처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기도 힘들기에 불안이 자극되지 않습니다.


반면 암은 조금 다릅니다. 암이 질병으로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우리의 불안을 자극합니다.


1) 다양한 발병 연령

암은 기본 정상세포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돌연변이 세포가 되면서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나이가 들면 돌연변이 세포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니 암의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겠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아기에 호발 하는 암도 있고, 대부분의 암이 청년이나 중년의 나이에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조기 발견 등으로 인해 암의 발생 연령이 이전보다 조금 더 빨라졌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암에 대한 위험성이 늘고 그에 따라 불안도 늘겠지만 어느 연령대에서나 암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질병도다 다양한 연령대에서 암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합니다.


2) 일생 중 높은 발생 확률

암 통계 중에서는 기대여명을 산다는 가정하에 암에 걸릴 확률이 있습니다. 2019년 암 통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83세의 기대여명을 산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암에 걸릴 확률은 37.9%입니다. 3명 중에 1명 이상이 일생 중에 암에 걸린다는 이야기니 아주 높은 셈입니다. 더욱이 기대여명이 더 늘어난다면 이 확률은 더 높아질 것이고 실제 초고령사회를 살고 있는 일본의 확률은 50%에 육박합니다. 아마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가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암에 대해 걱정을 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은 질병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3) 암으로 인한 다양한 심각성

물론 암이 심각한 질병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암이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흔했고 그렇기에 치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치료하기 어려운 병일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기검진과 치료의 발달로 인해서 암으로 인한 영향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암 치료의 지표로 여겨지는 5년 이상 생존율도 2019년도 기준 70.7%로 높아졌습니다.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으로 알려진 갑상선암을 제외한 5년 이상 생존율도 66.5%입니다. 암에 결렸다 하더라도 누구는 절망적일 수도 있고 누구는 일상생활을 회복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암이 아닌 상황에서 암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자극하는 요인입니다.


4) 암 경험자의 증가

결국 지금의 암으로 인한 상황은 주변에서 암을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암을 경험한 적이 있는 암경험자는 200만 명을 넘어갔습니다. 직접 암을 경험한 당사자와 그 가까운 가족을 포함한다면 주변에서 암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인구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암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암은 더 이상 저 멀리 있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떻게는 만나게 될 난관일 수밖에 없습니다.


5) 조기 발견의 중요성

그렇다고 우리가 암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기본 암은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우리 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암을 얼마나 조기에 주변 조직에 영향이 적을 때 발견하느냐에 따라 치료방법이나 치료 이후의 회복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히 그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미리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이런 조기 검진의 가능성이 불안을 더 자극하기도 합니다. 검사를 해지만 혹시나 놓쳤으면 어쩌나, 검사를 안 한 사이에 암이 생겼으면 어쩌나 등 조기 발견의 골든타임을 놓쳤을 때에 대한 측면이 불안을 또한 자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전과 달리 암에 대해서 여러 가지 대응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신 그만큼 우리는 암으로 인한 정서적인 영향을 설령 암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암을 피할 수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암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암으로 인한 신체적인 영향이야 암이 걸리기 전에는 알 수 없기에 뭘 할 수가 없지만, 암이 없다고 하더라도 암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정서적 영향이나 암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생활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다 언젠가는 찾아올 수 있는 암이라는 상황에 우리가 그래도 내 삶의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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