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트라우마는 불안으로 시작한다.
A는 직장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불안합니다. 평소 술 담배도 피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식단 관리도 하는 편이라 건강은 은근 자신이 있지만, 왠지 병원에서 검사를 하면 나쁜 병이 나올 것만 같아 염려가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1cm 크기의 결절이 있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둘러 병원에 가서 추가 진료를 봐야 할 텐데, 1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갑상선 결정은 흔히 가지고 있고 대부분 양성이라잖아. 나는 건강관리도 지금 잘하고 있고 크기도 아직 1cm니까 조금 더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혹시나 암이면 어떡하지. 지금 암에 걸리면 직장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 안이 복잡하지만 왠지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하면 암으로 진단될 것만 같아 여전히 병원을 못 가고 있습니다.
암은 진단을 걱정하는 순간부터 죽음에 대한 불안을 자극합니다. 그렇기에 암이라는 트라우마는 암 진단 이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죠. 퀴블러 로스라는 정신과 의사는 죽음 앞에서 우리의 심적인 반응을 5단계로 설명합니다. 부정(deniel), 분노(andger), 협상(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ing)입니다. 암이 죽음이라는 불안은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암으로 인한 트라우마 상황에서도 퀴블러 로스의 이 심적 과정은 통용됩니다. 암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처음에는 그 상황을 거부하고 회피하다가(부정),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화를 내고(분노), 자신의 다른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지 않을지 초월적 존재와 타협을 하다가(협상), 지금의 상황이 어쩔 수 없음을 느끼고 우울해하고(우울), 이후에는 온전히 상황을 받아들이게 됩니다(수용). 과거에는 이 5단계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여러 단계가 복합적으로 진행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암 진단 초기에는 불안과 관련된 여러 반응들이 주요합니다. 부정, 분노, 협상도 불안에 의한 반응들이라고 할 수 있죠.
흔히 불안은 병리적 증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정신의학적으로 불안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 본능입니다. 만약 우리가 불안이 없다면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을 미연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안해야 눈치도 보고 피하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말조심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적절한 불안은 우리가 잘 살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감정입니다. 우리가 불안에 대한 반응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안한 대상에 맞서서 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망가는 거죠.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도망가거나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잘못 나가게 되면 그때부터 불안은 병의 증상이 됩니다. 도망쳐야 할 불안 앞에 맞서 싸우려 하거나, 싸워야 할 불안 앞에서 도망가거나 하는 거죠. 혹은 강하게 대처해야 할 불안 앞에서 약하게 싸워서 지거나, 약하게 싸워도 될 대상 앞에서 너무 강하게 구는 것도 불안의 잘못된 방향입니다.
건강을 지키기 있어서도 불안은 필요합니다. 적절한 건강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식사나 운동, 주기적인 건강검진 등을 통해 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관리하게끔 하죠. 하지만 그 불안이 불필요하게 과하면 문제가 됩니다. 건강염려증이라고 하죠. 건강염려증의 방향도 불안의 반응과 동일하게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맞서 싸우는 방향이라면 건강염려증으로 인해서 불필요하게 너무 많은 병원 진료를 반복하는 거죠. 정상적인 증상인데도 몸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 같으면, 또는 방송매체를 통해서 어떤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그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염려하면서 병원에 달려가서 검사를 받습니다. 정상이라고 이야기를 듣지만 왠지 그 병원이 작은 병원이라 오진을 했을까 봐 큰 병원으로 달려가서 또 검사를 받죠. 거기서도 정상이라고 하면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교수님 진료를 받으러 갑니다. 반면 도망치는 방향이라면 병에 대한 검사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실제 병이 있을까 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병원에 가는 것을 회피합니다. 병을 진단받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자신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미루고 거부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에 대한 신세를 한탄하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죠.
이러한 불안은 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매번 이야기하듯 암 상황에서 불안이 생기는 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이 심해지면 자기 자신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런 불필요한 불안이 단지 내 마음을 괴롭히는 걸 넘어서서 암이라는 신체적인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거죠. 암 진단 상황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부정'과 '분노'가 그렇습니다. 암 진단이 충분히 고려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그런 병은 있을 리가 없다고, 의사가 오진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추가적인 검사나 치료를 거부하는 건, 막상 그 마음 깊숙한 곳에는 암으로 인한 극도의 불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암이라는 불안 앞에 압도된 나머지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음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저주하며 술을 마시고 치료를 거부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필요한 불안은 결국 우리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망가뜨리는 셈입니다.
암을 받아들이는 건 결고 쉽지 않습니다. 성인군자도 성직자도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는 누구나 어린아이 와도 같습니다. 의연하려 노력하지만 마음 안에서 연기처럼 피워올라 퍼지는 불안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이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불안이라는 본능은 우리를 망가뜨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있습니다. 불안은 잘 관리하면 우리가 처한 트라우마 상황을 오히려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결국 암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불안으로 인한 부정과 분노 등 여러 가지 감정의 반응을 인정하되, 그러한 반응이 과도해서 암의 진단과 치료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트라우마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정신없이 긴장하고 안절부절 바쁘게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암은 다른 트라우마 상황과 달리 갑자기 생긴 응급 상황이 아닙니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암은 내 몸 안에서 꽤나 오래전부터 서서히 생겨났습니다. 그렇기에 암에 대한 상황은 당장 무언가를 긴급하게 다뤄야 하는 상황이라기보다 좀 더 앞을 내다보면서 단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트라우마 상황임에도 암은 우리가 차분하게 암으로 인한 불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마음가짐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이어가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