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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May 09. 2022

암 이후 내 삶을 더 건강해졌습니다. (회복탄력성)

당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이야기


3년 전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은 A는 지금은 뭔가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분명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암 치료를 받는 과정, 이후에 직장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힘들어서 떠올리기도 싫습니다. 엄습해 오는 죽음의 공포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터널 안처럼 깜깜하게 느껴졌던 그 시간도 버티다 보니 어느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도 암울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을 되돌아보면 뭔가 자신이 단단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암이라는 힘든 과정을 겪고 난 지금은 직장에서 하는 역할이나 다시 회복한 건강,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그냥 막살았다면 이제는 하루하루의 삶이 감사하고 소소한 즐거움에도 행복을 찾아내게 됩니다. 물론 때론 마음이 먹먹해질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분명 예전의 자신보다는 지금의 자신이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반응


암은 정서적 외상, 트라우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트라우마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는 중에는 누구나 힘들어합니다. 암의 상황이라면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시기는 누구나 다 힘들어합니다.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고 우울하고 예민해지는 건 이 시기에는 어느 정도 트라우마에 따른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다만 우리가 트라우마에서 반응의 정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누군가는 넘어진 이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반면, 누군가는 넘어진 상태에서 그냥 좌절해서 쓰러져 있기도 합니다. 암이라는 유사한 트라우마를 경험했을 때도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막연한 공포 앞에 계속 좌절해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두려움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며 견뎌나갑니다.


회복탄력성의 힘


이렇듯 삶의 절망이나 고난 앞에서 견뎌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라고 이야기합니다. 복구력이라고도 하는데 결국 이런 힘이 강한 사람은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그 가운데서 희망과 의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언뜻 회복탄력성의 개념은 외국의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문화에서도 회복탄력성은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 '와신상담', '칠전팔기' 등은 예로부터 회복탄력성에 대한 우리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이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비슷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청춘이 굳이 아플 필요야 없지만 그 아픔 가운데도 견뎌내고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이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지금 시기의 청춘에게 필요하다는 걸 의미하겠죠. 


회복탄력성의 예


우리가 흔히 아는 이야기 중 회복탄력성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견뎌내는 대표적인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과 성냥팔이 소녀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긍정의 의지로 명량대첩이라는 놀라운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춥고 힘든 상황 속에서 작은 성냥불 속에서 가족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견뎌냅니다.


암 상황이라면 <뚜르: 내 생애 최고의 29일>로 영화화된 이윤혁 씨가 있습니다. 이윤혁 씨가 앓고 있던 '결체조직성 작은 원형 세포암(Desmoplastic small round cell tumor)'라는 희귀 암은 그 암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를 알 수 없어 종양이 생길 때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끊임없이 지속해야 합니다. 2차례의 수술과 26번의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과 살아야 한다는 의지로 견뎌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미와 희망을 찾기는 힘겨워졌습니다. 스물여섯이 된 해, 이윤혁 씨는 지루하게 반복하던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자신이 이전부터 꿈꾸어 왔던 '뚜르 드 프랑스'라는 세계 최대의 사이클대회에 참가하기로 합니다. 프로선수들 마저 힘들어하는 이 경기를 이윤혁 씨는 여러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참가하고 '希望(희망)', 'For Cancer Patients(암 환자를 위하여)'라는 문구가 적힌 자전거를 타고 완주해 냅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암이라는 고통과 그밖에 여러 역경이 있지만 암 환자라는 힘든 상황에서도 그 과정을 버티며 이겨내는 과정은 우리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윤혁 씨는 그런 과정에서 "암을 가지고 있는 나도 행복한데, 암을 가지지 않은 여러분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라는 삶에 대한 희망을 우리에게 전달해 줍니다.


물론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할 때 항상 극복과 성공이라는 결과가 담보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그 과정을 내가 어떤 마음가짐과 의미, 가치, 희망을 가질 수 있는지가 회복탄력성입니다.


회복탄력성의 배경


그렇다면 회복탄력성은 어디에서부터 생겨날까요?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대표적인 연구는 심리학자 에미 워너(Emmy E. Werner)가 주축이 된 하와이 카우아이 섬 연구입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비교적 나아졌지만 이 연구가 진행된 1955년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사회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이 시기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며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지속해서 추적하는 연구였습니다. 이 중 특히나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대부분 노숙자나 약물 중독, 범죄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예상해지만, 오히려 1/3 정도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잘할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났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정의했죠. 연구에서는 이 아이들이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었던 공통적인 요소를 밝혀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나를 사랑하고 지켜봐 주던 그 누군가가 있었느냐 였습니다. 그 누군가가 부모는 아니라 하더라도 조부모이든 친척이든 선생님이든 종교인이든 선배든 친구든 말이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는 정신의학적으로도 참 좋은 영화들이 많지만, 저는 그중에서 <모아나>를 첫 번째로 꼽습니다. <모아나>를 보면 회복탄력성이 어디서 오는지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아니러니 하게도 <모아나>의 배경 역시 회복탄력성 연구가 진행되었던 하와이입니다. 주인공 모아나는 끊임없이 먼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꿈이 있고 부모님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이런 꿈을 제지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모아나를 항상 지켜보고 응원하는 누군가로 할머니가 있죠. 풍요의 신인 테피티가 자신의 심장을 잃어 모아나가 살고 있는 섬에 절망이 찾아오고 모아나는 테피티의 심장을 돌려주기 위해 먼 항해를 떠납니다. 그 가운데 동료로 마우이의 도움을 얻어가면서요. 그렇지만 테카라는 장애물을 만나고 모든 상황이 그러하듯 모아나도 좌절을 경험하죠. 그 가운데 다시금 회복탄력성을 발휘해서 극복하게 됩니다. 이야기를 다 드리면 스포일러가 될 테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모아나>를 보시거나 OST 중 <나는 모아나 (조상의 노래)>를 들어보길 추천드립니다. 결국 우리의 회복탄력성이란 나를 긍정으로 지켜봐 주는 마음속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다시금 나의 의미, 가치, 희망을 찾아가는 힘입니다. 그게 바로 나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회복탄력성은 트라우마를 재료로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결국 회복탄력성은 트라우마 상황에서도 우리가 극복하고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의미와 가치, 희망을 만들어 줍니다. 그 순간, 트라우마라는 외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가 아니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트라우마라는 파도를 다 피할 수 없고 인생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견뎌나가는 항해라면 우리는 그런 트라우마를 통해서 단단해지고 강해져야 합니다. 트라우마를 통해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일어나기 위한 회복탄력성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강하건 약하건 회복탄력성의 배경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지만 당연히 저에게도 나름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의 배경이 있어야 하죠. 저도 모아나에서처럼 할머니가 제 회복탄력성의 배경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마음 안에는 할머니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기도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던 건 아닙니다. 막상 함께 있던 건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고 응원하고 있다는 걸 제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그 누군가는 나에게 회복탄력성의 배경이 됩니다. 물론 이런 회복탄력성의 배경은 여러 사람이나 신념, 환경이 다 복합적으로 섞여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우리의 회복탄력성의 배경을 알고 있고 그걸 소중히 지키고 키워나가고 나도 그 누군가가 가질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겠죠. 여러분은 어떤 회복탄력성의 배경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리고 누군가 소중한 사람에게 회복탄력성의 배경이 되어 주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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