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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15. 2022

불안할수록 몸은 더 아픕니다.

암이라는 트라우마는 불안으로 시작한다.

유방암 진단을 받은 A 씨는 수술을 하기 전 항암 화학요법을 받기로 했다. 수술 전에 항암 치료로 암 크기를 줄여 유방을 가급적 보존하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여성호르몬 수용체도 양성이고 HER2 수용체도 양성이라 표적치료도 가능하다. 다양한 추가 치료가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쓸 수 있는 무기가 많은 거라 재발률도 낫다고 하니 위안은 된다. 다만 항암 화학요법을 앞두고 걱정이 많아진다. 총 8번의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고 초반 4번의 약물과 후반 4번의 약물이 다르다고 한다. 흔히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도 빠지고 속도 메스껍고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는데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원래 남들 다 가볍게 지나가는 감기도 나는 일주일 몸살을 앓던 몸이다. 항암치료 부작용도 사람들마다 경한 사람이 있고 심한 사람이 있다는데 나는 분명 심한 쪽에 들어갈 거라고 이미 단정 지어 버렸다.



불안은 사람의 보호 본능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불안하지 않는다면 조심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불안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정신증상인 듯 보이지만 우리는 삶을 보다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불안이라는 감정이 필요합니다. 


다만 불안이라는 감정이 과할 때는 분명 문제가 됩니다. 불안이 예측할 수 있는 돌발상황을 고려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준비하고 거기서 마무리되면 괜찮은데, 이미 준비된 상황에서도 불안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때부터는 병적인 증상이 됩니다. 강박증상이 대표적이죠. 분명 문을 잠갔는데도 계속 문을 잠갔는지 불안한 생각이 들거나 손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손이 오염된 듯한 불안이 드는 경우 등이죠. 


불안과 관련된 또 다른 정신적 증상 중에는 공황도 있습니다. 공황 증상은 일종의 신체증상과 연결되어 있죠. 우리의 몸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을 때 교감 신경이라는 자율신경계가 작동합니다. 불안한 상황에서는 내 몸도 돌발적으로 대처를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몸이 준비태세를 가집니다. 무언가와 싸워야 할 수도 있고 도망쳐야 할 수도 있으니 몸을 예열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심장은 빨리 뛰고 호흡은 거칠어지고 근육은 긴장되며 모든 신경은 예민해 지죠. 반면 지금 중요하지 않은 소화기계 즉 장운동은 느려집니다. 이 역시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 같은 거지만, 이 불안으로 인한 교감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면 긴장하지 않아도 될만한 상황에서 폭발적으로 활성화하면 그 상황을 공황 증상이라고 합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가슴은 숨을 아무리 쉬어도 답답하고, 어지럽고, 이명이 들리기도 하고, 시야가 흐려지기도 합니다. 온몸은 긴장되어 머리나 목 뒤로 긴장성 통증이 오고, 장 운동은 멈추면서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을 느끼거나 속에 탈이 나기도 하죠. 공황 증상은 우리 몸과 마음의 긴급 알람이 오작동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돌발적인 공황 증상은 일반 인구에서 반 정도는 일생 중에 한차례 이상 통상적으로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황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어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수준이 되면 그때는 병적인 수준으로 공황장애가 됩니다. 공황 증상이 공황장애로 발전하는 데는 '예기불안'이 작용합니다. 공황 증상이 한번 발생하면 몸의 모든 기관이 폭발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죽을 것 같은 공포와 더불어서 현기증, 피로, 메스꺼움 등 다양한 신체적 불편감을 경험하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공황 증상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황 증상이 오면 어떡하나'에 대한 불안이 생깁니다. 이런 미리 걱정하는 정서적 상태가 예기 불안입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있거나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긴장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이런 예기불안은 심해지고 순간 공황 증상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은 스스로의 몸 상태를 예민하게 확인하면서 사소한 신체증상에도 공황 증상으로 넘어가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게 됩니다. 기억된 신체적 불편감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안은 예기 불안을 만들고 예기불안은 당시의 불편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불안을 더 자극하고 스스로 신체적 불편감을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공황 증상을 촉발시키는 거죠. 이렇게 우리 마음의 불안은 신체적 불편감을 악화시킵니다.


이런 심리적 과정은 암을 치료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작용 상황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수술에서는 통증이 주된 불편감이지만 항암 화학요법에서는 다양한 신체 불편감이 발생하게 됩니다. 과거부터 사용된 고식적 항암 화학요법은 우리 몸에서 세포분열 주기가 빠른 세포를 집중 공격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세포도 같이 영향을 받습니다. 암세포는 일반적인 세포보다 세포의 분열 증식이 빠르기 때문에 다른 일반 세포보다 더 이런 치료에 취약하고 그 결과 암세포가 먼저 사멸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일반 정상적인 세포 중에서 세포분열이 비교적 빠른 조직도 항암치료에 의해 조직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몸에서 분열 주기가 비교적 빠른 조직은 모발이나 피부, 소화기관 등이지요. 그밖에 다양한 세포도 일정 부분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항암 화학요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오심과 구토, 탈모, 피부 및 손톱 손상, 손과 발의 저림 등이 있고 피로감이나 통증, 기억력 저하 등도 동반되죠.


이런 부작용이 있는 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통상적인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일정 부분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합니다. 불안의 긍정적인 작용이죠. 어느 정도의 불편감을 예상하면서 치료 전에 체력을 키워 놓기도 하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미리 준비하기도 합니다. 오심과 구토에 있어서는 그나마 그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찬 과일, 주스나 셰이크, 생강 등)을 준비하거나 탈모 상황을 고려해서 가발이나 비니를 미리 준비하기도 하죠. 침대에서 보낼 시간이 많을 테니 침실 환경을 개선하기도 합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취미거리나 맨손 운동을 배워두기도 하죠. 치료가 시작되고 여러 부작용이 느껴지면 미리 어느 정도 각오한 대로 증상에 집중하지 않고 흘려버리면서 견뎌냅니다. 


반면 이런 부작용에 대한 불안이 과도하면 공황장애에서와 유사하게 예기 불안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예상되는 불편감에 대한 필요한 대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이런 부작용에 의해 압도될 것을 걱정하면서 먼저 겁을 먹고 얼어버립니다. 치료가 시작되고 나면 막상 부작용이 발생하기 전부터 온 몸의 신경에 집중하면서 어딘가 불편한 데가 없나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우리 몸은 신경을 집중하면 사소한 불편감도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됩니다. 사소한 불편감이 느껴지면 그때부터 부작용으로 인한 염려와 걱정은 더 심화되면서 우리의 불안은 더 자극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신체적으로 감각되는 객관적 불편감도 감정적으로 몇 배를 부풀려서 주관적 불편감으로 느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불편에 대한 느낌은 공포와 연관된 감정적 기억으로 우리 뇌에 기억되고 이후의 예기 불안을 더 강화시킵니다. 신체적 감각에 대한 기억은 이후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항암치료 내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신체적 불편감을 자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더 우리의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입니다. 항암 치료에서 불안과 부작용의 연관성은 단기적 불편감뿐만 아니라 장기적 불편감에도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로 인해서 발생하는 손 발의 저림 부작용은 다른 부작용에 비해 항암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도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존에 불안 증상이 심한 사람에서 이런 부작용을 보다 장기적으로 경험하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연장선상에서 최근에는 항암 화학요법에서의 여러 신체적 불편감에 정신과 약물이 다른 약만큼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실제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란자핀(Olanzapine, 상품명 Zyprexa)은 항암치료로 인한 오심 및 구토 증상 예방 및 개선에 다른 항구토제와 동등한 수준의 효과가 입증되었고, 둘록세틴(Duloxetine, 상품명 Cymbalta) 및 벤라팍신(Venlafaxine, 상품명 Effexor)은 항암치료로 인한 손 발 저림 증상(말초신경병증)에 효과를 인정받았습니다.


암 치료는 신체적 불편감을 수반합니다. 비교적 불편감이 적다는 호르몬 치료나 면역치료, 표적치료 역시 적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불편감이 있다 하더라도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 수술 및 항암치료 등 여러 치료로 인한 불편감은 감당해야 할 영역입니다.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을 안 담글 수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불안이나 정서적 괴로움을 오히려 잘 관리하면서 힘겨운 암 치료 과정을 버티고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적당한 영양을 섭취하고 적당히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자면서 일상생활의 균형을 맞추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면서 지지적인 관계를 이어가면서 정서적 버팀목을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합니다. 불필요한 불안이나 신체적 불편감이 심해질 때는 의료진과의 소통을 통해 정신종양학적 관리를 병행하면서 증상을 조절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필요한 불안이 우리의 건강을 더 잘 관리하게끔, 오히려 불안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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