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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Sep 17. 2022

암이 악화될까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암이라는 트라우마는 불안으로 시작한다.

항암 화학요법을 앞둔 A 씨는 원래 불안이 높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 인터넷에서 암 카페 등을 통해 암에 좋은 음식, 암에 나쁜 음식 등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암에 나쁜 것이 내 주변에 너무 많았다. 당장 식재료를 다 유기농으로 바꿨고 플라스틱 용기나 식기도 싹 다 도기 제품으로 바꿨다. 예전 같으면 전자레인지에 돌려 간단히 먹었을 음식도 이제는 다 새로 만들어 먹는다. 몸에 나쁘다는 화학제품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런 걸 다 없애고 바꾸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든다. 돈도 만만찮게 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어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흰쌀이나 흰 밀가루가 암을 오히려 키운다고 해서 현미밥이나 통밀가루 빵으로 바꾸고 설탕,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그러고 나니 입맛이 없다. 정확히는 음식이 맛이 없다. 그러다 보니 먹는 양도 줄었고 체중도 줄었다. 주변에는 항암치료를 하기 전에 체력을 키워야 하는데 오히려 체중이 줄어드는 걸 염려하는데 어느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암을 일으키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합니다. 기본적으로 암은 정상세포가 세포분열 중에 확률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돌연변이 세포가 사멸하지 않고 면역체계를 회피하면서 증식했을 때 발생합니다. 발생하는 대부분의 돌연변이 세포는 스스로 죽어버리거나 우리 면역세포에 의해 탐색되고 죽이기 때문에 없어지지만 드문 확률도 이런 모든 사멸과정을 피해 가는 세포가 암 조직이 됩니다. 그렇기에 암은 기본적으로 무작위 확률(랜덤)에 의해 발생합니다.


다만 이런 돌연변이 세포가 보다 더 발생하기 쉬운 상황이 있는데 이를 발암요인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전적 소인입니다. 특정 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장기의 세포가 유전적으로 돌연변이 세포를 더 일으키고 암이 될 취약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건 확정적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최근에는 유전 연구의 발달로 특정 유전자가 있는 경우 매우 높은 확률로 특정 암이 발생하는 것을 예측할 수 있기도 합니다. BRCA 유전자가 있는 경우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BRCA 유전자가 확인되어 예방적인 목적으로 유방과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유전자가 있다고 예방적 수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한 건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정기적인 암 검진을 촘촘하게 하면서 관찰을 하고 의심 소견이 있거나 나이가 들어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지면 (나이가 들면 돌연변이 세포의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집니다.) 그때 예방적 목적의 수술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암 발생에는 환경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생활 중에 노출될 수 있는 화학물질이나 음식 종류, 질병, 생활 습관 등이 포함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발암물질이 있습니다. 단 이러한 요인이 암에 미치는 위험성은 아주 심각한 것도 있고 아주 약한 것도 있습니다. 세계 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 암 연구기구(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에서는 암 발생의 위험 정도에 따라 암 발생 요인을 구분해서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중 1군(Group 1)은 실제 인간에서의 암 발생 위험이 분명하거나 충분한 경우입니다. 위암과 관련된 H 파일로리균이나 간암과 관련된 B형, C형 간염, 자궁경구암과 관련된 HPV(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이 있고, 벤젠이나 비소, 석면, 납, 방사선 등 우리가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 물질도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 자외선, 오염된 공기(매연)도 여기 포함되며, 피임약(일부 암에는 예방 효과도), 가공육, 소금에 절인 생선 등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물질도 있죠. 


2A군(Group 2A)은 더 다양한 물질과 환경이 있습니다. 이 군은 인간에서는 다소 암 발생과 관련된 충분한 연구결과가 없지만 동물실험에서는 충분한 연구결과가 있어서 암 발생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요인이 포함됩니다. 여기에는 비닐 등 우리 생활 주변의 다양한 화학물질도 있고 우리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환경도 있습니다. 붉은 고기(소, 돼지, 양 등), 고온에서의 튀긴 음식(요리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도), 65도 이상의 뜨거운 음료, 살충제도 여기에 포함되죠. 직업적인 영역에서는 화학물질에 노출이 되기 쉬운 유리공예, 정유정제시설이 있고 염색약 등으로 인해 미용업이 있습니다. 낮-밤이 바뀌는 직업도 여기 들어가죠.


이렇듯 발암요인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접할 일이 잘 없는 위험한 물질이나 환경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거나 때로는 피할 수 없는 환경도 있습니다. 술, 담배야 안 한다고 하지만 햇볕에 포함된 자외선이나 도시에 살면서 매연도 피할 수 없죠. 뜨거운 차도 마셔야 하고 고기를 안 먹을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일로 인해 밤을 새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암 물질은 줄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발암 물질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다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죠. 결국 발암물질이나 환경에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양과 빈도이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발암 환경을 상쇄시키기 위한 생활습관적인 측면에서의 암 예방을 위한 건강 관리를 하고 있느냐 이겠죠.


물론 이런 발암 물질이 암 발생에 직접적인 원인으로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특정 공장에서 공기나 하천에 위험한 발암물질을 무단으로 방유 하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원치 않게 만성 또는 급성으로 노출되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암 발생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는 특정 공장의 근로자가 일을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다루어야 하는 여러 물질 중에 위험한 발암물질이 있었고 사전에 그런 위험에 대한 고지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일 연령대의 일반 인구보다 암 발생이 높았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환경적인 요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암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역학조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원인을 규명하고 피해 보상 및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통상적인 암 상황에서 환경적인 요인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선 특정 요인을 꼽기가 어렵죠.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많은 종류의 발암 요인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요인이 지금의 내 암을 발생시켰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돌연변이 세포는 생기기 마련이고 확률적인 우연을 통해 면역세포를 피하고 증식한 상황입니다. 그 과정에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걸 꼭 환경적으로 단정 짓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지나간 상황에 대해 원망을 해 봐야 바뀌는 건 없고 스스로 괴로울 뿐입니다. 오히려 이제부터의 삶이 중요하겠죠.


암이 생긴 이후 보다 더 건강한 삶을 통해 암을 잘 치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은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삶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건강관리의 범주 내에서의 노력이어야 합니다. 우선은 일상생활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입니다. 일정하게 먹고 몸을 움직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역할을 해 나가는 겁니다. 무리하는 것을 피하고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고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죠. 도심에서의 환경이 아무래도 스트레스 상황이나 환경오염의 영향을 더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오랜 기간 일구고 적응한 환경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환경을 극단적으로 바꾼다고 해서 발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간 먹었던 음식이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식품 안전이나 유해물질 통제에 대한 관리가 잘 되는 나라에 속합니다.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에서는 우리가 먹는 농축산물 및 식품에 대해 HACCP 인증을 통해 관리하고 있죠. 이런 관리는 수입식품에도 적용됩니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경우라면 유기농 식품을 먹고 화학제품이 사용되지 않은 식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렇다고 많은 경우 사용하고 있는 식자재나 식기가 암을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킨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암 경험자 진료를 보다 보면 어쩌다 하루 배달음식을 먹었다고, 라면을 먹었다고, 피자를 먹고 콜라를 마셨다고, 고깃집에서 숯불갈비를 먹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자주 경우가 있습니다. 먹을 때도 마음이 무겁고 먹고 나서는 몸에 나쁜 짓을 한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듭니다. 때론 일이 바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으로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이 역시 현실이지만 자신의 암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이런 어쩔 수 없는 식사에 대해 핀잔을 주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이럴 때 저는 진료실에서 그분들께 그냥 그 순간 맛있게 드시라고 이야기합니다. 라면, 피자, 숯불갈비 저도 좋아합니다. 바쁠 때는 삼각김밥도 먹고 즉석밥도 전자레인지에 그냥 돌려 먹습니다. 물론 아주 건강한 식사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이 음식이 내 몸에서 암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음식을 먹으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내 건강에는 더 나쁠 수 있습니다. 대신 저라면 다른 날에는 조금은 더 야채나 과일을 챙겨 먹고 운동을 더 하겠습니다. (혹, 누군가가 이런 저에게 '너는 암 환자가 아니잖아'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노파심에 이야기하자면 암은 이제 누구는 걸리고 누구는 걸리지 않는 상황이 아닙니다. 앞서서도 이야기했든 저 역시 기대수명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암에 걸릴 확률이 50% 정도가 될 테니까요.)


특히 암 치료를 앞두고 있거나 암 치료 중일 때 기본적인 식사를 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때는 '건강한 식사'가 아니라 '잘 먹을 수 있는 식사'입니다. 암 치료 시기에는 특히나 체력 관리가 중요합니다. 수술이든 항암 화학요법이든 암 치료는 우리 몸에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힘든 치료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2022년 삼성서울병원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수술 전 체중이 높을수록 암 생존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죠. 치료 전에는 체력을 만들어 두어야 하고 치료 중에는 체중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굳이 나쁜 음식을 찾아서 먹을 필요는 없지만 이 시기에는 내가 평소 좋아하고 잘 먹는 음식을 골고루 챙겨 먹어야 합니다. 몸에 좋다는 이유로 입에도 맞지 않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건 암을 치료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니 건강한 음식은 치료가 끝난 후 내 몸이 좀 회복된 이후에 열심히 챙기려 해도 늦지 않습니다. 


사실 몸을 신경 쓰고 관리하려고 하는 건 바람직하죠. 특히 암을 진단받고 난 후 암을 잘 치료받고 재발을 예방하면서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을 더 관리하는 건 필요한 일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이 부정적으로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를 살아갈 날들을 위해서는 이제라도 외양간을 고쳐야지요. 다만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외양간이 부서졌다면 적어도 태풍은 지나간 다음에 외양간을 고쳐야 할 겁니다. 태풍 중에 오히려 외양간을 고치려 했다가는 스스로가 더 손해를 입을 테니까요. 불필요한 불안 우리를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행동으로 이끌고 갑니다. 불안은 쓸데없는 생각을 만들어 내고 균형을 잃고 과잉대응을 하게 만듭니다. 사소한데 스트레스를 받고, 불필요한 절제를 하고, 필요 이상의 비용을 쓰고, 과하게 자신과 타인을 제단 합니다. 암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과함은 모자람만 못합니다.




https://monographs.iarc.who.int/list-of-classifications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27046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220662?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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