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속설이 있습니다. 암경험자 사이에서는 의외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해인데, 바로 포도당이 암에 나쁘다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흰 쌀이나 흰 밀가루처럼 탄수화물이 소화되면 바로 단당류가 되고 이런 단당류 포도당이 암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암이 더 잘 자란다는 거죠. 설탕도 포도당이기 때문에 암에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서는 여러 영양소가 풍부한 현미나 통밀이 좋기는 하고 설탕보다는 좀 더 분해가 어려운 올리고당류가 좋다고는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건강에 대한 부분이지 암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암 경험자들 사이에서는 부드러운 빵을 먹거나 흰쌀밥을 먹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자책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어차피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다양한 영양소를 분해해서 포도당으로 바꾼 후 우리 몸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합니다. 특히 우리의 뇌는 단당류인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죠. 그런 점에서 포도당은 우리 몸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인 셈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은 항상 일정한 포도당을 혈중에 유지하려는 생리적 항상성이 있죠. 통상적인 수준의 음식이라면 섭취 후 단당류로 분해되더라도 인슐린 등의 동화작용으로 에너지를 몸에 저장하고, 혈중에 포도당이 부족하면 저장된 에너지원을 이화작용으로 사용해 일정한 혈중 포도당 농도를 유지합니다. 즉 우리 몸이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포도당이 필수적인 셈입니다. 그런데 왜 포도당이 암을 자라나게 하는 안 좋은 에너지원이라 오해가 생겼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PET-CT라는 검사가 이런 오해를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PET-CT는 소위 몸 안에 숨어있는 암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최신 영상검사입니다. PET-CT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암 검사에서 사용하는 PET-CT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붙인 포도당을 몸 안에 주입하고 이 포도당이 어디에 많이 모여있는지를 CT 영상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검사입니다. 통상 암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활발한 에너지 소모하면서 세포가 분열하면서 커지기 때문에 이런 검사를 할 때 다른 정상조직보다 방사성 동위원소가 붙은 포도당을 많이 끌어 모으게 되고 이게 영상에서 나타나는 거죠. 암 조직에서의 활성화된 대사상태를 이용한 검사인데, 암이 포도당을 많이 가져가니 포도당이 암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마치 포도당이 암 조직을 자라나게 만드는 나쁜 영양소라는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암 조직을 잘 찾아내기 위해 개발된 PET-CT의 원리가 이런 오해를 만들어 낸 셈입니다. 그렇다고 PET-CT에서 활성화되어 나타난 부위가 다 암인 것도 아닙니다. 포도당을 많이 사용하는 조직은 다 활성화되어 나타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뇌처럼 포도당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조직은 PET-CT에서 밝게 나타나고, 우리 몸에서 감염 등으로 염증반응이 일어나 포도당이 많이 필요한 조직 역시도 밝게 나타납니다. 가끔 암 수술 직후에 아직 수술 부위가 충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상적으로 염증반응이 나타나면서 PET-CT에서 마치 암이 남아 있는 것처럼 나타날 수 있는데 이건 암이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염증 반응에 반응을 한 것입니다.
암 조직이 포도당을 사용해서 생존하는 건 맞지만, 암 조직만 포도당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 안의 모든 조직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합니다. 다만 암 조직은 다른 조직보다 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포도당을 더 쓰는 것뿐이지요. 즉 포도당이 문제가 아니고 암 조직이 많은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게 문제인 셈입니다. 암을 키우지 않기 위해 몸 안의 포도당을 줄인다는 건 우리 몸 전체의 에너지원을 줄이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건강에는 오히려 더 좋지 않습니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죠.
따지고 보면 암에 있어서 포도당은 잘못이 없는데 괜히 우리가 포도당이 원인인 것처럼 오해를 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암 경험자에게 흰쌀밥이나 흰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과자, 설탕이 많이 들어간 간식 등이 상관없이 다 괜찮으냐 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딱히 이런 음식 자체가 암에 나쁜 것은 않지만 이런 음식을 우리 몸에서 필요한 수준보다 많이 섭취하는 게 문제가 됩니다. 동일한 양의 쌀밥을 먹었을 때, 분해와 흡수가 어려운 잡곡이나 현미밥에 비해 단당류로 분해가 쉬운 흰쌀밥은 그만큼 더 많은 포도당으로 흡수되고 에너지 열량도 높습니다. 포도당단당류로 분해되기 쉬운 음식은 그만큼 한꺼번에 많은 양을 섭취했을 때 우릴 몸 안에서 포도당을 일시적으로 급격히 올리는 상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남는 에너지원으로 인해 우리 몸의 체중이 늘어나면서 비만해지고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대사성 질환이 생길 수 있다면 당연히 암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즉 흰쌀밥이나 흰 빵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이러한 음식을 자주 많이 먹게 될 때 동반되는 영양과잉이 암에 나쁜 거죠. 그러니 적정량의 흰쌀밥, 흰 빵을 다른 균형잡힌 음식과 같이 먹는다면 문제될 건 없습니다.
암에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식이습관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건강한 식생활이 암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내기 대에도 도움이 됩니다. 칼로리가 상대적으로 적으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가진 잡곡이나 현미, 통밀을 먹고, 고기, 생선, 야채, 과일 등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규칙적인 시간에 먹으며 과식하지 않는 거죠. 그렇다고 때로 흰쌀밥이나 부드러운 빵을 먹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수술이나 항암화학요법 등 힘든 암 치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체력을 잘 유지하는 것이 치료를 견뎌내는 데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잘 먹기 위한 식생활도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까끌하고 넘기기 힘든 음식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먹어 필요한 영양소를 채울 수 있는 먹기 쉬운 음식이 더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