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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Ssam Jan 20. 2023

암은 서로 이야기하기 무서운 주제

암의 과정을 정서적으로 버텨나가기

중년 여성인 A는 이제껏 열심히 살아왔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직장에 취직해서 퇴직을 할 때까지 쉰 적도 없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결혼을 하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일을 병행하고 흠잡을 데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난 이후에도 대학 교수를 하는 딸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손주들을 키워주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 자녀들이 잘 살고 있고 손주들이 커가는 걸 보면 마음이 위안이 된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아직 초기라고 하고 하지만 추가적인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걱정부터 된다. 내가 없으면 손주들은 누가 키우지? 딸이 가뜩이나 대학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는데 나 때문에 지장이 있으면 어쩌지? 그러고 보니 이제껏 나 혼자서 힘든 시절을 헤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고 일에 지장을 주느니 일단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가족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어느 병원에서 어떻게 검사를 받고 치료를 정해야 하는지 막막하다. 손주들을 돌보면서도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는 일이 많아졌다.



암은 당연히 공포를 수반합니다. 그렇다 보니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순간 얼어붙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머리 안이 먹먹해집니다. 그렇게 암은 우리 정신도 입도 막아버립니다. 암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자신 앞에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고,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로 인해 상대방이 걱정하고 부담스러워할 것 같습니다.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괜히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의 구설수에 오르면서 동정만 살 것 같아 싫어집니다.  그렇게 암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입을 닫아버리고 싶습니다. 


과거에는 더 암을 숨겼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의료진과 가족이 암 환자에게 암을 숨긴 부분입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과거에 암 검사를 하고 암이 진단될 때 암 환자는 그 과정이나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료진도 환자와 검사나 진단, 치료계획에 대해 환자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가족과 상의했습니다. 환자는 나이가 많아서 그런 과정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암에 대해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우울해서 삶의 의지가 떨어진다고 염려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의사가 암 환자에게 직접 암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중에 가족이 찾아와서 어떻게 환자에게 암을 바로 이야기할 수 있냐고 화를 내며 항의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렇게 과거에는 암에 걸렸음에도 내가 암인지도 모르고 힘든 치료를 받고 임종까지 이르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간혹 환자 본인이 암인 것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하는 가족이 여전히 있죠. 환자도 환자 가족도 암은 그만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두려운 대상입니다.


암 진단 고지에 대해서 실제 2001년 발표된 국내 연구에 따르면 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85.4%가 암 진단을 의사에게 직접 듣기를 원했지만, 암 환자 가족의 경우에는 52.1%만 환자가 직접 의사에게 암 진단을 이야기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만큼 암 진단의 고지에서 당시에는 환자가 느끼는 것과 가족이 느끼는 점이 큰 차이가 있었던 셈입니다. 아무래도 암 환자는 나이가 많은 노인 분들이 많고 자녀들 입장에서 부모님이 암이라는 걸 알았을 때 오히려 의지가 꺾이고 불필요한 염려를 많이 하면서 힘들어할까 봐 숨기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막상 환자 본인은 그렇지 않은 거죠. 오히려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암이 걸렸고 자녀가 이를 나에게 숨겼을 때 내가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본다면 어떤 방식이 바람직할지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의료 선진국을 비롯해서 암 진단 고지에 대한 권고 지침이 나오면서 암 진단을 환자에게 숨기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만큼 암에 대해 환자 자신이 알고 진단과정과 이후 치료과정에 대해 스스로 의사와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물론 암을 알리는 과정은 지지적인 환경에서 시간을 가지고 객관적인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전달하고 이후의 치료과정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도 같이 소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 과정을 SPIKE 프로토콜로 이야기합니다. S(setting)는 편안하고 존중받는 환경을 만들고, P(perception)은 암 환자의 인지능력 및 정서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파악해서, I(invitation)은 환자가 어느 정도 수준의 정보를 원하고 감당할 수 있는 지를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K(knowledge)는 구체적인 암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며, E(empathy)는 그 암의 과정에서 적절한 판단과 수용을 할 수 있도록 정서적 지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과정은 다만 사회문화적인 특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각 나라의 고유한 상황을 반영해서 권고 지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죠.


암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든 상황은 가족의 입장에서 암 환자에게 숨기는 것도 있지만 앞선 사연처럼 암 환자의 입장에서 가족에게 숨기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암 상황에 대해 스스로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가족에게 알려 가까운 사람들까지 염려하거나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어쩌면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암이 부담스럽고 바라보고 싶지 않은 것은 가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 수 있죠. 트라우마에서 발생하는 우리 감정의 반응에는 그 상황을 거부하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막상 이 시기 겉으로는 '내가 다 잘 알아서 할 수 있어'라는 포장을 하고 있을지 모르나 속 마음은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라는 회피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치료를 통해 회복가능한 암이라 하더라도 암은 암입니다. 암 자체가 주는 말도 못 할 정도의 불안도 있고, 어디서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할지 정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일정 기간 동안 불편한 치료를 감수해야 하고, 이후에는 이전보다 더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도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자신을 위해서나 주변 가족을 위해서도 무모한 짓입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은 다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암 상황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의 힘은 다 함께 모아서 대처해야 합니다.


암 환자의 부모님에게 암을 알라지 않을 때의 상황처럼 지금 사연의 상황에서도 결국 내 마음의 정답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를 떠올려 보는 겁니다. 내가 아닌 나의 사랑하는 딸이 암처럼 아주 힘든 위기의 순간에 내가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이 있음에도 내가 걱정하고 힘들어질까 봐 그걸 숨기고 혼자 끙끙 앓고만 있는다면 나는 그 딸에게 뭐라고 이야기해 줄까요? 나는 내 삶이 피해받기 싫으니 너 혼자서 감당하라고 할 가족은 없습니다. 가족은 위기의 순간에 더 힘을 합쳐 이겨내는 법이니까요.


물론 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암 당사자의 상황에서는 내가 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고 스스로도 당장은 뭐가 필요한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가까운 가족 입장에서도 암을 섣부르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 말문이 막힐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SPIKE 프로토콜 같은 소통방법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막상 가족 내에서 사용하기는 딱딱하고 어색합니다.


이런 경우 소통을 한꺼번에 다 해결하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소통은 과정이고 이어지는 게 중요합니다. 막막할 때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담백하게 이야기하고 나도 당황스럽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는 함께 옆에 있어주고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구체적인 도움을 서로 찾으면서 맞춰가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함께이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모든 과정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가며 맞춰 나가는 거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꼭 암 경험자 가족관계 안에서가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의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랍니다.





전인희. "암 진단 고지에 대한 암 환자의 인식." 국내석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대학원, 2011. 서울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ff02bb1cba4b408cffe0bdc3ef48d419&outLink=K

김영민. "암진단 고지에 대한 암환자와 의료인의 선호."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8. 서울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70c5c06dd07cce17ffe0bdc3ef48d419&outLink=N

우치토미 요스케. 나쁜 소식 어떻게 전할까 암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https://ncc.re.kr/prBoardView1.ncc?nwsId=552

아버지 암 진단은 비밀로 해주세요?

https://blog.naver.com/doctorkidney/22260080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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