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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Feb 14. 2022

“저는 INFP입니다.”




바야흐로 MBTI의 시대다. 네 가지의 혈액형으로 서로를 구분 짓고 분류하던 사람들은 무려 열여섯 개의 카테고리가 생겨난 것을 반가워했다. 네 가지의  혈액형들 사이의 교집합들은 상당히 컸고 그 안에서 무수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어느 영역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어 자신과 타인에 대한 정의를 깔끔하게 내릴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은 열여섯 개로 분류한 테스트를 해보며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는 지표로 사용했고, 그 범위는 순식간에 확대되어 다양한 카테고리들을 재생산했다. 


예를 들면,  <INFP라면 읽어야 하는 책>,  <MBTI별 운동할 때 특징>,  <ESFP의 학교생활 유형>, <ENFP에게 ‘꾸준히’ 힘든 이유> 등등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다.  대략 20여 년 전 혈액형으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이 한창일 때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나쁜 남자의 대명사이며 AB형은 바보 아니면 천재 그리고 O형은 가장 활달하고 성격이 좋은 혈액형, 이렇게 대표적인 이미지로 규정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MBTI는 그 설명 하나하나가 구체적이고 자세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련의 과학자들이 MBTI 테스트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해도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기꺼이 이 테스트에 응하고 이 데이터들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오프라인의 만남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나의 이십 대를 보냈다. 그 당시에 온라인에서 만남을 가지고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음을 시인한다. 돈으로 만든 도토리를 열심히 사용하던 시절에도 낯선 사람의 관심이 반갑고 우쭐한적도 있었지만 그 인연들은 온라인에서 생겨나고 사라질뿐이었다. 내 신변에 위협을 가하지 않을 안전한 사람임을 알 수 없고 직접 만나서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굳건히 믿었던 시절이다. 백 퍼센트 온전하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범위는 무한했다. 그리고 도래한 팬데믹의 시기에 우리는 향후 몇 년 뒤에나 만날 것으로 기대했던 메타버스 속으로 한 순간에 이동했다. 사실 메타버스는 이미 우리 곁에 존재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게 되는 것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오랜 시간 만나가며 천천히 알아가는 게 가능했던 시대와 다르게 비대면으로 만나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진 MZ세대들에게 온라인을 통해  휴대폰과 컴퓨터의 화면 너머로 존재하는 사람을 ‘현실의 시간’을 들여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에서의 수줍음이 많고 자신이 없는 본캐는 온라인 세계에서 당당하고 재치 있는 부캐가 되어 누빈다. 그런 범람의 공간에서 상대방이 나와 잘 맞는 사람인지를 알아가는 것,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이해받으며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MBTI가 아닐까.


나의 여동생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MBTI 테스트를 해보며 자식이지만 나와 다른 인간임을 실감한다고 했다. 나는 바뀌지 않는 남편의 행동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런 기질의 사람이라는 것을 MBTI의 결과를 보고 깨닫고 탄식했다. 그 오랜 시간동안 나는 나의 남편을 나의 입맛대로 이해하고 있었던거다. 같은 MBTI라고 해도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 자라난 환경, 성별, 사회적인 지위와 역할에 따라 우리는 또 무수히 다른 존재들로써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든 맹신을 하는 것은 바르지 않겠으나 아마 한동안 우리들은 MBTI를 묻고 궁금해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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