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최선의 삶>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174)
‘최선’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이렇게 정의한다.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책을 읽은 것은 이미 몇 달 전이다. 두껍지 않은 책이었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라 기분 좋게 집어 들었지만 책을 읽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 호흡에 읽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고 무거운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최선의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았지만 충격이 제법 컸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나는 어떤 최선을 다 했던가. 그 최선이 꼭 긍정적인 의도를 지니고 시작되지도 않고 그 과정 역시 아름답지 않을 수 있으며 결과의 모양새도 장담할 수 없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의 최선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계속 되뇌어본다.
발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리도록 발돋움을 하는 것도 최선의 모습이다. 저 높은 곳에 닿으려고 팔을 휘휘 저어도, 목에 핏대가 서고 눈알과 이마까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힘을 주어 당겨도 닿지 않는 곳이 있다. 그것에 닿기 위해 몸부림을 쳐보는 것 역시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몸에 물방울이 하나 남지 않을 만큼 눈물을 쥐어 짜내고 주먹 쥔 손으로 무언가를 힘껏 내리치다 빗맞아 손목이 시큰거려 웅크리고 앉아 아픈 손을 주무르며 악 다문 잇새로 욕을 내뱉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울분에 찬 고함을 지르는 것도 살기 위해서, 살고자 하는데 살아나갈 방법을 몰라 온 정성과 힘을 다하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하등 쓸모없는 잉여인간처럼 느껴져 목울대가 꽉 눌려 아플 때까지 눈물을 참으며 소리 없이 울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자신을 학대해도 도무지 일어설 방법을 찾지 못해 나 자신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에 골몰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쉽게 부를 수 있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것은 나의 몸부림이었다. 처절한 몸부림. 살고 싶다는, 살게 해 달라는. 그것이 나의 최후의 그리고 최선의 발악이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새끼손가락만 한 빙어를 뜰채로 잡아 올려도 그렇게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지 않던가.
나는 이제 어쩌면, 다른 방식의 최선의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