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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Aug 23. 2019

웃음으로 눈물 눌러 덮으면서

20190806. 어린이집 퇴소기


  아이는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어린이집을 가야 하느냐 묻고, 울었다. 당장 오늘부터 안 보내고 싶었지만 물어볼 것도 들을 것도 있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지온이가 나쁜 기억으로 그만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줄도 모르고 어제 사둔 간식들 챙기고 지온이한테 어린이집에서 점심 먹는 게 힘들고 싫으냐니 그렇다길래  그럼 오늘 점심 엄마랑 먹자, 친구들하고 나눠먹을 간식을 준비했으니 가서 간식 먹으며 놀고 있으면 엄마가 두 시간 후에 데리러 가마 했더니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섰다.

  
  밤 9시에 키즈노트 올려두고 전화도, 내 댓글에 대한 대댓글도 없더니 아침에 현관 앞에서 담임이 기다리고 있었다. (투 담임인데, 키즈노트를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쓰고, 어제는 담임이 아닌 투 담임선생님이 사진 업로드했더랬다.) 정작 어제 아이가 그렇게 울 때도 담임은 또 업무로 바빠 자리에 없었으니. 내가 아이를 안고 울었던 것을 뒤늦게 전해 들었을 것이다.


......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담임이 여러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무엇하나 내 답답함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이번 주가 감사라서 아이를 신경 쓰지 못했다는 말은 지난주부터 들었다. 어제는 하원을 1시간 당기자더니 오늘은 15분 더 당기자 한다. 그저 지온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갈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지온이가 먼저 가는 친구들을 볼 일이 없게 하자는 것인데.
  

  그에 앞서 아이가 특히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그것에 대해 담임이 얼마나 인지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떤 대안을 생각해 보았었는지, 그리고 가정에서는 어떤지 물어야 했다. 하원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지온이를 앞으로 어떻게 더 케어해주실 것인지 그와 동시에 내가 집에서 어떻게 서포트를 해주면 더 좋을 것인지를 의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원 시간을 당기는 건 지온이가 엄마를 일찍 만나게 해 주겠다는 나름의 해결책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가뜩이나 낮잠을 안 자고 버티다 2시가 되어서야 1-20분 겨우 조는 아이를 하원 준비시키겠다고 20분 만에 깨워서 머리 묶고 가방 메고 현관에 앉혀 놓겠다는 이야기다.

 
  원생이 무려 75명이나 되고 민간 어린이집이라 기존에 다니던 19명 정원의 구립 어린이집과 비교를 그만두려고 무던히도 애썼더랬다. 내가 너무 눈이 높아져서, 점차 더 넓은 사회로 나가야 하는 아이를 너무 끌어안고 보호하려는 거 같아 자꾸 여기저기 묻고 참고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구립이고 민간이 고의 차이가 아니라 선생님의 차이이고 원의 분위기라는 게 있다는 것을. 적어도 이 곳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주어진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내야 하는 직장인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더불어 모든 민간 어린이집이 이렇지 않다는 것을.


결론은 이렇다.

-11일의 출석일수를 채운 뒤 그만두어야겠다. 아침에 손잡고 가서 인사하고 출석부에 사인만 하고 오더라도 11일은 채워야지, 내 주머니 헐어 돈을 낼 수는 없다. 
-지온이가 최대한 즐거운 기억만 남기고 그만둘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게 트라우마로 남으면 안된다.
-구직활동은 잠정 중단이다. 큰 짐 지운 신랑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다. 하지만 나도 7개월로 끝날지 3년이 될지 모르는 독박 육아 예약에 상당히 걱정스럽다.

  지온이는 오늘 무척 행복했다. 엄마랑 놀고 싶다고 낮잠을 자지 않겠다 해서 그러자 하고 군말 없이 일어나 앉아 놀았다. 남아있는 모든 체력을 다 쓰고 기절하듯 1분 만에 잠들었다. 곤히 잠든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린다. 오늘은 나도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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