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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Jul 14. 2022

쫄지 마세요

친애하는2030에게

유난히 기억력이 좋아 쓸데없는 것까지 시시콜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의 삼십 대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통째로 사라진 거예요.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요즘 불쑥 삼십  어느  저녁 5시쯤이 기억났어요. 무엇을 어찌할  몰라 울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7 딸아이가 있었고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가려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막막했던 그날 저는 마른오징어만큼이나 쫄고 쫄았습니다. 그때의 저를 위로하며  글을 씁니다.




며칠 전 짧은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행은 7명이었는데 한 사람이 제 눈에 자꾸 들어왔어요. 그녀는 말이 없었습니다. 차 안에서도 희미한 미소 외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마치 없는 사람처럼 조용했어요. 그런데 식사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 뒷정리를 할 때는 언제나 그녀가 맡아서 하고 있었어요. 밥을 먹다가도 어떤 반찬이 부족하면 조용히 반찬을 채워놓고 물이 없으면 물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저는 불편했어요. 하지만 이제 2회 차 참석자가 단체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었고 서로 이해되는 부분이 있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밤중에 달구경을 핑계 삼아 그녀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저는 들어주기만 했어요.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그녀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저는 답했습니다. 그저, 쫄지 말자고.


저는 쫄보였어요.

 제가 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백가지가 넘지만 몇 가지만 얘기하자면 아버지 없이 자란 환경, 내세울 수 없는 학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모, 작은 키, 지방 출신, 힘도 없고, 겁은 많은, 친구는 많지 않은 그런 '어린 여성'이었습니다. 세상은 하이에나가 득실대더라고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큰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결혼을? 멀쩡한 집안에?"


큰어머니와 관계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없이 자란 제가 '멀쩡한 집안' 사람과 결혼한다는 게 너무 뜻밖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로 큰어머니를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에게 반감과 의심이 깊어졌습니다. 그 날이후 저는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 사회에서는 형벌이었어요. 매사 눈치가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스스로 쫄보가 되자마자 세상은 제게 혹독하게 막 대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는데 자그마치 이십 년이 걸렸습니다. 누군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 한마디의 파괴력은 끔찍했었습니다.


세상은 주눅 들어 있는 사람을 동물적으로 알아봅니다. 혹시 쫄아있다면, 어깨부터 쫙 펴세요. 긴 숨 한 번 쉬고, 적어도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쫄 필요는 없어요. 알고 보면 대단히 '대단한'사람도 별로 없어요.


쫄지 말고 우아하게!

그대들을 응원합니다.



      

세실자영업자


      예술을 사랑하는 영어 선생입니다. 존 버거를 존경하며 그의 삶의 태도를 본받으려 합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기르면서 제 영혼마저 해방된 운이 좋은 엄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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