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그대는 내가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설명한들 이해할 수 있을까

by Leena

상실감.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아마도 예닐곱 무렵 즈음- 엄마는 거실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할 만큼 커다란 어항에 작은 열대어를 종류별로 참 많이도 키우셨습니다. 알록달록 그 빛깔이 어찌나 예쁜지 어항 앞에 코를 바짝 대고 시간 날 때마다 구경했던 기억이 납니다.


파란 어항 불빛 아래서 형광 빛을 내며 유유히 헤엄치던 작은 열대어들…….

어느 날엔가는 밖에서 놀다 들어와 여느 때처럼 어항 앞으로 향했는데 어항 안에 플라스틱으로 된 바구니 같은 작은 어항이 또 들어있었습니다. 그 안에 갇혀있는 몇 마리 열대어들.


'저건 부화통이라는 건데, 열대어가 좀 있음 예쁜 새끼를 낳을 거야'


우와, 엄마! 그러고 보니 열대어 배가 불룩하네...! 저렇게 작은 열대어가 더 작은 새끼를 낳는다고...?

내일 아침이면 아기 열대어를 볼 수 있겠구나, 두근두근 기대하며 잠들었던 새벽.

잠결에 몇 번이나 파란 어항 불빛 곁을 맴돌았던 기억.


다음날 아침엔 눈 뜨는 둥 마는 둥 어항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부화통먼저 확인했습니다.

어라? 새끼 열대어가.... 없다? 엄마 열대어와 새끼 열대어를 분리하는 작은 막이 무슨 실수에 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 열대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치어를 잡아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날의 그 마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첫 번째 상실감.


........ 마음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린 오늘의 상실감.

마음속에 차곡차곡 담아놨던 이야기들이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스르륵 새어나가 버린 느낌입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아픈 진실을 고스란히 체험한 기분. 치열하게 반성하고 많이 외로워하고 많이 마음 쓰고 나면 나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돼 있겠지요.


누구든 자신에 관해 얘기해선 안 됩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우린 더욱 가난하고 외로워지니까요.
속마음을 서로에게 얘기함으로써 타인과 가까워지리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침묵 속의 공감만이 인간을 가깝게 할 뿐입니다.

-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中 에서








2011년 1월 11일에 쓰인 위의 일기를 5년이 지난 오늘 우연히 읽었습니다.

벌써 한참 전의 일이라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정확히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당시에 나는 마음을 나누는 일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줘, 나를 이해해줘"라는 말이 폭력적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스쳤습니다. 어떤 지난한 순간들을 지나 지금 당신의 모습으로 서 있는지 나는 알 턱이 없었고, 몇 마디 대화 안에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당신에게 모두 설명해 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타인에게서 건네 들은 '아픔'이라는 것들이 하찮고 우습게 여겨지는 어떤 날이 있었고, 온몸으로 뚫고 나온 지난 시간들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입을 다물기 일쑤였습니다. 온 힘을 다해 설명한들 당신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내가 아닙니다.



가수 이소라를 좋아합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마음 안에 깊은 울림이 생깁니다. 군더더기 없고 간결한 그녀의 가사들. 노래를 듣다 보면 그녀가 지나온 어떤 시간들이 궁금해집니다. 마음이 힘들었던 어느 날, 파도가 일렁이던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녀의 노래를 몇 시간이고 들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WxGCDBRNY


'바람이 분다'

내게는 소중해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 바람이 분다 중


그녀의 가사 중 한 구절이 바로 이글의 제목입니다.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왔다고 한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는 그 말. 그대는 내가 아니며 나와 같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쓸쓸했지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당신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 했던 마음들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우린 더욱 가난하고 외로워집니다. 내 머리 위로도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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