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 없는 어느 평범한 오후.
늘 오가던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바람은 차고 햇볕은 따뜻해,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지 마냥 걷고 싶은데. 하필이면 듣고 있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숨이 턱 막히던 순간.
어떤 음악은
잊고 있던 기억속의 어떤 감정을 불시에 끄집어내는 힘을 가진 듯합니다.
잠시 잠깐이지만 눈앞이 깜깜해지고, 무릎이 푹 꺾이고.
마치 지금 그때 그 순간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반응합니다.
스웨덴 세탁소라는 인디그룹의 '조금만 더'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가만가만 읊조리는 목소리가 예뻐서 별생각 없이 듣다가 마음을 데었습니다.
내 모든 온기로 그대를 꼭 안아 줄텐데
스무 살.
어쭙잖고 어설펐던 첫 연애를 마치고서, 친구들 앞에서 눈물 콧물 짜내며 다시는 사랑 안 하겠다 선포를 했어요. 눈물로 외친 치기 어린 선포가 무색하리만큼 다음 사랑은 빨리도 찾아왔고 친구였던 그가 연인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요. 만물이 소생하던 스물한 살 봄에 예쁘게도 시작된 내 인생의 두 번째 연애였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수많은 풍경들이 시간의 틈 사이로 전부 사라져 버렸건만, 어쩜 이 한 장면만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지. 아마도 그와 함께했던 두 번째 봄이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그는 시립 미술관 근처에 살았어요. 십오 분에서 이십 분. 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깨끗하게 잘 지어진 그 미술관까지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었는데 시민들을 위해지어놓았다던 그 미술관에서 예의상 받는 입장료는 어찌나 쌌던지 500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쏟아지는 봄볕을 맞으며 도란도란 걷다가 함께 이런저런 그림을 보고 그런저런 장난을 치며 당신과 같이 웃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버스를 탔다면 한 정거장 정도였을 거리를 우리는 또 함께 걸었지요.
봄볕은 따뜻한데다 눈길 닿는 곳마다 피어난 꽃은 또 어찌나 예쁜지 살아있다는 사실이 눈물날 만큼 행복했습니다.
내가 이 순간에 하필이면 이 곳에서 당신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꼭 거짓말인 것만 같았습니다.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있는 힘껏 두 팔을 벌려서 온 힘을 다해 꼬옥 당신을 안았습니다.이 순간에 내 곁에 있어주는 당신이 고마워서.
다가올 모든 순간에 그대가 있길 바래요
시간은 참 잘도 가네요.. 매 순간 함께일 것 같았던 당신과 나는 참 쉽게도 이별했습니다.
나와 참 닮았었던 당신은 이별하는 순간에도 나와 꼭 같았어요. 세상에 더는 없는 사람인 것처럼, 함께했던 시간들이 한나절 꿈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에게서 철저하게 타인이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당신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잊힌대도 온 힘을 다해 당신을 끌어안았던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에서 영영 반짝일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