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관한 별스런 기억들
내 생일이니까 오늘은 너도 행복하거라
만으로도 꽉 채운 서른이 되던 날, 그러니까 며칠 전 내 생일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A 녀석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산다는 이유로 살갑게 챙기지도 못하고 산 게 벌써 6년인데 잊지 않고 생일을 축하해 주는 마음이 고마워 괜히 뭉클했습니다. 내 생일이니까 오늘은 너도 행복하라고, 답변했습니다.
선물을 내놓아라도 아닌 행복하거라..? 뭐 성인군자라도 된 거야 뭐야.
친구의 답변에 풋- 웃음이 났습니다. 네 축하 덕분에 나는 행복해졌으니 넌 벌써 선물한 거야-라고 쓰려다가 손가락이 오그라지는 것만 같아서 참았지요. 잊지 않고 축하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생일이 뭐라고 말입니다.
SNS마다 쏟아지는 생일 알림으로 쉽게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축하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날짜 감각 제로인 나는 지나칠 뻔했던 여러 지인의 생일을 축하해 줄 수 있었고, 해마다 생일이면 여러 지인으로부터 더 많은 생일 축하도 받게 되었습니다.
A와 처음 친구가 되었던 고등학생 무렵에는 생일이면 그저 신이 났던 것 같습니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가 종례시간 인사였을 만큼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친해질 대로 친해진 우리들은 누구 하나 생일이구나 하는 날에는 학교 안 매점에 가서 과자를 사 오고 초콜릿 파이로 케이크를 만들고 구구절절 손편지를 써서 선물을 나눴습니다. 좋아했던 아이에게 생일을 빌미로 선물과 함께 은근한 고백이 오가기도 했었고.
혈기 왕성했던 20대 초반엔 생일이라는 적당한 핑계를 안주삼아 술잔을 부딪치고, 어른들 마냥 세상에서 가장 고민 많은 표정으로 부어라 마셔라 해댔습니다. 쓰디쓴 술을 벌컥벌컥 삼켜대며 우리는 마치 인생의 쓴 맛을 맛본 것 마냥 행동했었지요. 어리숙하고 어설프고 아직 아이 같았던 우리.
20대 중반이 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홀로 바빴고 홀로 아팠습니다. 누군가는 취업으로 다른 누군가는 앞이 보이지 않는 공부로, 그리고 누군가는 사랑으로. 뻔질나게 모여대며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대던 우리는 그 시간들이 무색하리만큼 서로의 생일을 잊어갔습니다. 어쩌다 불현듯 누군가의 생일이란 게 떠오르기라도 하면 지금 그의 곁에 있을 스터디 동료, 직장 선후배, 혹은 새로운 연인이 건넬 축하를 떠올려보다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엔 어쩐지 겸연쩍었습니다. 보통의 날에 보통의 인사를 먼저 건네 봤으면 좋았을걸, 하는 후회가 마음속에 일렁였습니다.
20대 후반이 된 나는, 생일날마다 케이크 위에 꽂힌 한 개 늘어난 촛불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넘겨버린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크리스마스 케이크...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더라. 24(일)에 가장 잘 팔리고, 25(일)엔 팔릴 만큼 팔리다가, 26(일)이 되면 누구도 필요하지 않지.
27(일)부턴 불 보듯 뻔하지 않니?"
스물다섯 생일에, 이제는 누구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가 내게 건넨 저급한 축하 멘트였습니다. 에라이! 하며 웃어넘겼지만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지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니. 이딴 멘트를 듣지 않았다면 조금 달랐을까? 백 퍼센트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쩐지 나는 생일이라고 해서 전처럼 들뜨지도 설레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던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성. 장.
이렇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이 다가올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p.210
가만히 생각해보니 삶의 전환점이 된 시기들마다 아무 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말이 되나. 지나고 나서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런 순간순간이 쌓이고 쌓여 경험이 되고 삶의 연륜이 되어 어떤 일을 바라볼 때에 어느 순간엔가는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더 한일도 있으니까.' 하고 좀 더 느긋하게 혹은 여유롭게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기고 스물둘, 스물셋..... 한해 한해 지나갈 무렵에 나는 얼른 서른 살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당시 내가 경험하는 사소하고 작은 사건들이 내 삶을 온통 뒤흔들어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 하는 표정으로 무척 담담하게 이런 사건들을 처리해 나가는 삼십 대들이 굉장히 쿨해보이고 부러웠다고나 할까요.
경험. 하나씩 순간순간을 직접 몸으로 통과해나가며 다치고, 상처 입고, 또 성장했을 그들. 나는 내가 좀 더 빨리 성숙한 인간이 되길 바랬습니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요... 나는 이제 만으로도 꽉 채운 서른이 되었고, 그렇게나 바라던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다가 요 며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고백한 황현산 선생의 트윗처럼 삼십 대가 된 나 역시도 도무지 내가 어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 힘이 들었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여러 방향에서, 여러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어른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민망스럽고 어색했습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던 때를 다시 떠올려봅니다. 편안하게 잘 맞는 운동화 대신 또각거리는 하이힐을 신으면 내가 상상해왔던 진짜 어른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생각나는 그 촌스러운 핑크색 구두. 어른을 만들어주기는커녕 뒤꿈치에 물집만 가득 만들어줬던. 몇 시간 만에 걷기도 힘들어져 눈물 차오르게 만들던, 내 첫 하이힐. 어른이 되는 건 쉽지 않구나 나는 언제쯤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어른이 될까 싶었습니다.
12cm 하이힐을 신고 달리기에 등산 신공까지 펼칠 수 있게 된 이십 대 중반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5cm 이상 되는 하이힐은 더 이상 신지도 사지도 않는 요즈음도 삼십 대의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수미쌍관의 법칙.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내 생일이니까 오늘은 너도 행복하라'고 A에게 보낸 내 답변은 그래, 조금 어른스러웠다 말할 수 있을까요. A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