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짝이는 순간 속의 당신
여름밤의 하늘은 순간순간마다 항시 새롭게 느껴졌다.
- 이동하, 장난감 도시
한겨울의 도시에서 그 여름밤을 떠올려봅니다.
비가 아주 많이 쏟아지던 날이었고,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 공원은 모처럼 한적했어요. 나는 당신에게 선물 받은 라디오를 빗소리보다 조금 더 크게 켜두고 오래오래 들었습니다. DJ의 별 시덥잖은 얘기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간간히 빗소리가 커질 때면 그마저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지요. 상관없었어요. 내 옆에는 당신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온종일 후덥지근한 열기를 견디며 쌓였던 짜증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앉아 당신과 함께 DJ가 두세명 바뀔 때까지 오래오래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몇 마디 대화도 나눴었는데 그게 무엇에 관한 것들이었는지는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당신이 그즈음하고 있었던 공부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투정과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어떤 소소한 것들이었겠지요.
나는 당신이 나를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가 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두어 달 전쯤 라디오를 사두었다는 얘기에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휴대전화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듣고 싶은 라디오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던, 더 이상 누구도 라디오를 사지 않았던 때에 일부러 시간을 들여 예쁜 라디오를 찾으려 애썼던 당신의 시간까지 선물 받은 기분이었거든요. 나는 정말이지 당신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 라디오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당신과 빠르게 가까워졌던 것처럼 우리는 빠르게 멀어졌습니다.
나는 실은 그 헤어짐이 너무 애틋해 당신을 놓지 않으려 두 손에 꼭꼭 쥐었어요. 꽉 쥔 주먹 속 모래알처럼 당신은 내가 애를 쓸수록 더 허무하게 멀어져갔지만요. 짧고, 강렬했던 그 여름.
이제는 당신도, 그때의 우리도 부던히 노력해야 떠오를 만큼 희미한데 빗속에서 함께 라디오를 듣던 순간만큼은 선명하게 마음속에서 반짝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그렇게 오랫동안 빗속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 일이 살아가는 동안에 또 있을까, 싶어요. 당신과 함께 반짝이던 그 순간을 나는 영영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순간순간을 살아갑니다.
지워지지 않는 그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내 반짝이는 순간 속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