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불청객마냥 찾아 온 그리움

생각지도 못했던, 향수병

by Leena

해외를 여행하다 보면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어 설레던 감정이 한순간에 마음 저 아래로 가라앉고,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구나, 느닷없이 지루해지는 그런 순간. 아, 내가 왜 여기까지 오려고 아득바득 거렸을까. 떠나온 내 나라가, 내 동네가, 내 집이, 엄마 음식이 그리워지는 순간.


살자, 봄소풍 나온 것처럼.
언제나, 여행하듯이.


삶의 방향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몇 가지 경험들이 있습니다. 이십 대 초반 지역 방송국의 여행프로 작가로 몇 년을 일하며 내로라하는 여행지들을 참 많이도 찾아다녔었습니다. 봄기운이 시작될 즈음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틔우는 매화로부터 시작해 산수유,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을 지나 한겨울 동백꽃까지 부지런히 꽃따라 촬영 다녔고, 마블링 휘황찬란한 한우에서 시작해 푸른 바닷속 참전복을 거쳐 지리산 야생초 꿀까지 산해진미 찾아 먹방 하며 다녔습니다. 아, 거기 경치 끝내주지- 하는 곳들은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촬영 다녔었지요.


또래 이십 대들이 막막한 취업 걱정으로 하루하루 전투하듯 온 힘을 다해 공부하고 스펙을 쌓고 자격증 시험에 열을 올리던 때에 일을 핑계 삼아 나는 참 속 편히도 여행하며 살았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밤샘하며 구성안과 원고를 써대야 했지만 돌아보니 저만한 직업이 또 있을까, 싶어 집니다. 철따라 가고 싶은 여행지를 택해서 눈요깃거리들을 소개하고 절경을 촬영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돈도 벌고.

대부분의 십 대들처럼 저 역시 태어나 19년을 내내 공부와 씨름하며 대학만 바라보고 내달렸습니다. 길어야 2주였던 여름이며 겨울방학은 그마저도 보충수업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으므로 어디로든 여행 간 기억은 정말이지 손에 꼽힙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의 안쓰러운(?) 성장배경 덕에 여행프로 작가로 일하는 처음 몇 년은 방문하는 촬영지마다 전부 처음 가는 곳들이었습니다. 세상에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나. 대체 세상에는 좋은 곳들이 뭐 이리 많나. 이 좋은 것들 다 보고 죽으려면 대체 나는 얼마나 더 부지런히 여행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참, 사는 게 뭐라고.

그동안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 한번 눈에 담을 틈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애꿎은 봄노래만 스트리밍하고 있었는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닷물의 영롱한 색을 눈에 담아볼 생각도 못했는지, 단풍 곱게 물든 선선한 가을길 한번 걸어보지도 못했는지, 설산(雪山)의 장엄함을 구경조차 못하고 살았는지. 대체 사는 게 뭐라고.


여행하듯이 살 순 없을까.

어떤 안정적인 것들과 편안함을 포기하고라도 대신 이 세상 잠깐 나들이 온 여행자처럼 매 순간을 즐기며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언젠가 느닷없이 삶이 끝난다면 내가 미처 보지도 즐기지도 못한 것들이 떠올라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허망하게. 그래 떠나자, 어디로든.


그리하여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어느 것 하나 알 길이 없는 막연한 곳으로 떠나왔습니다. 지구의 정반대 편, 스물다섯 해를 자라온 내 나라와는 계절마저 정 반대인 곳으로. 이 곳에서 나는 나의 세상이 얼마나 작았는지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눈길 닿는 모든 풍경이 새로웠고 낯설었습니다. 이곳의 풍경에, 사람에, 언어에 익숙해지는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내가 알던 계절에, 내가 보았던 풍경은 이곳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봄이 오면 피어나던 손톱 같은 매화꽃 대신 이곳의 나무에는 주먹만 한 꽃들이 피었습니다. 겨울이 되어도 나는 더 이상 쏟아지는 눈을 볼 수 없었습니다. 불쑥불쑥 이상한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타국의 풍경 속에서 가끔 알 수 없는 서운함에 눈물을 방울방울 차올랐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고 함께 자란 이들에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정서적인 교감이란 게 있습니다. 같은 계절이 찾아오면 같은 풍경을 기대한다는 것, 가령 겨울이 오면 푸르던 잔디는 색을 바라고, 무성한 잎을 자랑하던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는 사실을 당연시 여기는 그런 마음. 나는 이 곳의 낯선 이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정서적인 교감이 없었고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괜스레 서글퍼졌습니다. 이곳의 잔디는 한겨울에도 새파랬고 나무엔 한 겨울에도 잎이 무성했습니다. 누구도 나의 계절을, 그 풍경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울적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데. 이 곳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리움이 불청객마냥 찾아왔습니다.


향수병이었습니다. 내가 향수병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될 줄이야.


향수병

명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을 병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비슷한 말] 망향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 같은 건, 그 옛날 중국에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독립운동가 선생님들이나 혹은 윤동주 시인 같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갈 고향을 불시에 잃은 실향민이나 무슨 이유로 고향을 빼앗긴 이들에게서야 비로소 생겨나는 비통함이 담긴 감정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100% 나의 의지로, 내 발로 고이고이 떠나온 내 고향이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의 병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한 영화를 만났습니다. '룸(Room)'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인데, 대략의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램프 하나, 세면대 하나, 침대 하나… 작은 방에 갇힌 24살 엄마와 5살 아들.
7년 전, 한 남자에게 납치돼 작은 방에 갇히게 된 열일곱 살 소녀 ‘조이'는 세상과 단절된 채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중, 아들 ‘잭’을 낳고 엄마가 된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던 엄마와 아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잭은 다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된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방 밖으로 나가 보지 못한 잭을 더 이상 좁은 방안에 가둬 둘 수 없다고 생각한 조이는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한다. 그들은 극적인 탈출을 하게 되고 세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충격적인 과거 때문에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힌다. 그 과정을 거치며 성숙되어지는 '조이'와 '잭'의 성장기 같은 영화이다.


감옥 같은 작은 방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방에서 자란 다섯 살 '잭'은 그 방 바깥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극적으로 그 방을 탈출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잭'은 그 방을 그리워합니다. 끔찍한 나날을 보낸 공간이었지만, 오롯이 두 사람이서 서로를 의지하며 견뎠던 특별한 공간이었기에 탈출 후 심리적으로 여러 어려움을 겪은 '잭'과 '조이'에게 그 공간은 그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어린 '잭'은 영화 말미에 엄마 '조이'에게 다시 그 방에 가보자고 부탁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그 작은 방을 다시 찾아가게 되고, 방의 구석구석을 다시 돌아보는 '잭'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Bye Chair, Bye Table, Bye Basin, Bye Mirror, Bye Wardrobe"


다섯 살 '잭'은 자신의 평생을 보내왔던 작은 공간에 있던 모든 물체에 작별 인사를 건냈습니다. 안녕 의자, 안녕 책상, 안녕 세면대, 안녕 거울, 안녕 옷장. 자신이 그리워했던 모든 것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잭’을 보며 마음속에 작은 일렁임이 생겼습니다. 작별인사라니... 작별인사였구나.


작별인사나 하고 떠나올걸. 당연히 내 나라 한국에 다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렇다 할 인사는커녕 마음의 준비조차 못하고 떠나왔던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거라고는 짐짓 예상도 못했습니다. 이 마음 절절한 향수병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작별인사를 연습해봅니다.

안녕, 나의 도시. 안녕, 나의 동네. 안녕, 나의 작은 방.

안녕, 나의 학교. 안녕, 나의 친구들. 안녕, 나의 스물다섯 해 추억들.





-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봅니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