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아 내리라
그 몇 해 동안, 나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붉게 익은 딸기를 행여 물러질까 구름 같은 손으로 따 올리던 농사꾼을 만났고,
망망한 바다에서 물을 끌어다 눈꽃 같은 소금을 만들어내던 그을은 얼굴을 만났고,
일평생 흙을 만지던 손으로 이제 막 연필을 잡고 글이란 걸 배운다는 팔순의 노인을 만났고,
문풍지 사이에 예쁘게 물든 은행잎 단풍잎을 정갈하게 끼워두던 여인을 만났고,
푸르고 단단한 실과實果가 좋아 몇만 평의 땅에 매화를 피워낸 장인을 만났고,
얼마 전 인공지능 컴퓨터와 바둑을 둬 화제가 된 바둑기사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리고 당신을 만났습니다.
일평생 글을 써온 노년의 작가.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 바다로 돌아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서 글을 쓰겠다던 당신을, 나는 그 바다에서 만났습니다. 나는 실은 당신이 조금 무서웠습니다. 지역 방송국의 작가라는 직함으로 나를 당신에게 나를 소개해야 했던 그 순간, '작가'라는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어야 했습니다. 이제 막 성인의 얼굴을 하고서 인생 앞에 설익어 있었던 나는 그날 삶의 모든 순간을 글 앞에서 살아온 당신을 보며 '작가'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을 비로소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몇 해 전 고향으로 돌아와 남쪽 바다가 내어다 보이는 이곳에 집을 짓고 '해산토굴(海山土窟)'이라 이름 지었다, 전해주었습니다. 검붉은 벽돌과 나무로 지어진 당신의 집이 그 순간만큼은 깊은 굴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깊은 굴속에서 침전하듯 앉은 당신이 글자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글로, 한 권의 책으로 해산해내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올랐습니다. 해산토굴이 내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집 앞 바닷가를 걸었습니다.
이제 막 새겨 넣은 글자들이 시리게 번뜩이는 몇 개의 문학 비석 사이사이를 지나며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굽어진 활등 같은 저 바다를 보고 있으면 꼭 나폴리의 바다 같아서 나는 이 바다를 꼬마 나폴리라 부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나는 나폴리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나는 나폴리 바다가 어느 나라 어디 즈음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꼭 이렇게 생겼을 것만 같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언젠가 꼭 그 바다에 가봐야지. 나폴리의 바다에서 꼭 이 남쪽 바다를, 그리고 당신을 떠올려야지, 생각했습니다.
유난히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던 그 여름날, 그 바다에서 마주한 당신의 눈빛이 깊고도 날카로워서 나는 괜히 혼나고 있는 어린애 마냥 부끄러웠습니다. 마음 안이 꼬마 나폴리 바다처럼 일렁거렸습니다. 허투루 살지 말자.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자. 힘을 다해 살자. 그 날, 그 바다에서 나는 결심했습니다. 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아내리라, 온 힘을 다해.
이듬해 나는, 스물다섯 해 나를 길러준 땅을 떠나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왔습니다.
당신의 바다와 닮아있는 또 다른 바다가 있는 곳입니다.
나는 아직도 나폴리 바다를 꿈꿉니다. 그 바다에 닿을 그 날까지 나는 허투루 살지 않을 겁니다.
스물 하나, 어린 나이에 호기롭게 다니던 대학을 관두고 작가가 되리라 작정했습니다.
스물둘, 엄마의 끈질긴 만류에 못 이겨 학교는 계속 다녀야 했지만, 나는 기어코 작가가 되었습니다. 한 지역 방송국에 방송작가로 입사하여 여러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됐습니다.
스물셋, 그리고 스물넷, 방송국이라는 특수한 배경에서 경험하는 견고한 수직 사회가 낯설어 내가 꼭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내야 하는 일과 방송 후 그 모든 수고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타고 흔적도 없이 단 한순간에 사라져가는 허무함을 견디며 물방울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를 떠올렸습니다. 그곳에서 나를 버텨내게 한 힘은 방송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물셋의 방송작가가 아닌 그저 학생이었다면 만나볼 기회가 없었던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방송작가로서 3년을 보냈습니다.
2007년 꽃 피던 이맘때, 스물두 살의 나는 어쩌면 남은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리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서 겁도 없이 당차게 당돌하게 "대학을 관두게 된다 해도 내가 하고픈 일을 해야겠어" 했더랬다. 나는 아직 어리니까. 젊으니까.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다이어리 한 구석에 꾹꾹 눌러쓴 나와의 약속.... 중간에 아무리 힘이 들지라도, 일이 너무나 고달파진대도 딱 3년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만약 내게 이 일에 대한 재능이 있다면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라면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지 않겠어? 그리고 만약, 내가 이 일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가서 멈춰도 늦지 않으니까. 5년, 10년이라는 시간은 내 청춘 아까워 무슨 일이든 절대 그만둘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지만 3년이란 시간은 아니다 싶을 때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짧다면 짧은 시간이니까. 그때 다시 뭐든 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3년이 흘렀다. 그간의 3년은 혼란스러웠지만 즐거웠다. 참으로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몰랐던 것을 참 많이 알았고, 못 보던 것들을 참 많이 접했고, 못 했던 것들을 다 해볼 수 있었다.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노력한 만큼 인정받았다. 2010년 3월의 나는 다시 또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3년의 힘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고,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그때보다 30배는 더 힘들어진 느낌이다. 이미 정답이 나와있는 문제 이건만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나는 아직 어리니까. 젊으니까.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3년이 흐른 뒤 후회하지 않으려면...
2010년 3월 20일의 일기
스물다섯, 나는 그제껏 나를 길러줬던 한국땅을 떠나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으로 왔습니다. 한승원 작가를 만나 함께 거닐었던 남쪽 바다의 풍경을 닮은 곳입니다. 나는 지금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습니다.
- 잊히지 않는 기억들을 차곡차곡 모아봅니다.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