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어머니를 하나 되게 해 준 판도라, 너란 팔찌! 이 요물 :)
아기를 낳는 산고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진부하지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였고요, 둘째로는 특별히 이런 고통을 견디며 나를 낳으신 친정어머니와 사랑하는 신랑을 낳아주신 시어머니를 생각만 해도 애틋해지는 마음입니다.
지난 어버이날의 일화입니다. 뉴질랜드에는 어버이날 대신 Mother's Day와 Father's Day가 따로 있습니다. 지난 어버이날은 뉴질랜드의 Mother's Day와 날짜가 비슷했던지라, 쇼핑몰 어디에 가도 "For your mum"이란 멘트와 함께 엄마를 위한 선물이 즐비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고소영 팔찌로 유명세를 탔던 팔찌와 귀걸이 목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브랜드 판도라(Pandora) 앞을 우연히 지나며 우리 엄마도 하나 사드릴까.. 하는 마음이 들어 살짝 들어가 보았지요. 뉴질랜드의 엄마들이라면 열에 아홉 가지고 계신다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국민 팔찌이지만, 한국의 친정엄마는 판도라가 그저 열어서는 안 되는 상자인 줄로만 알고 계셨을 겁니다.
엄마에게 판도라 팔찌를 선물하고 싶다고 점원에게 말하니 ‘엄마 팔목 둘레 아니?’ 하고 되묻는데 머쓱해졌습니다. 내가 엄마 팔목을 잡아본 마지막이 언제일까... 교환 카드를 써줄 테니 일단 제일 흔한 사이즈를 사라는 점원의 꼬드김에 ‘우리 엄마는 해외에 계셔서 교환하러 못 와...’라는 말을 세상 서글픈 표정으로 남겨주고 카탈로그를 하나 받아서 가게를 나왔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과 식사 후 티타임에 이 에피소드를 나누며 함께 다짐했습니다. ‘엄마가 뉴질랜드에 엘림이 낳고 산후조리하러 와주시면 그때 늦은 어버이날 선물로 사드리자!’ 딸들 중 제일 멀리 산다는 이유로 늘 살갑게 친정엄마를 보살 펴 드리지 못하는 못난 딸인 저는, 여느 때의 기념일 (명절이나 생신, 어버이날 등 찾아가 보지 못하는 특별한 날)처럼 이번 어버이날에도 몸에 좋다는 뉴질랜드산 꿀과 건강식품만을 사서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이번엔 한마디 덧붙이긴 했어요. ‘엄마 뉴질랜드 오기만 하셔!!! 그때 엄마 어버이날 선물로 근사한 팔찌 사드릴게!!!! 알겠지, 엄마?’
엘림이를 낳고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저녁식사 후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와 티타임을 가지며 지난번 챙겨 왔던 판도라 카탈로그를 펼쳐놓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 지난번 어버이날 내가 선물 못 드린 거 여기 오심 챙겨드린다고 했지? 이게 내가 봐 둔 선물인데 한번 보세요. 아기를 낳고 보니 엄마한테 더더더 고마워져서... 뭐라도 꼭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두 팔을 휘저으시며 제 선물을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됐다, 액세서리 안 한다, 살림할 때 걸리적거린다, 없어도 잘 살 수 있다, 꿀과 건강식품 받지 않았냐 별별 이유가 다 나왔고 급기야 "해줄 거면 돈 모아서 나중에 차라리 금을 해줘라"라는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제가 아니죠. 한 고집하는 제가 '어머 이건 사야 해' 정신으로 제 판도라 팔찌를 가져와 엄마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잘하는 기술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엄마, 이건 우리 신랑이 깜짝 선물해주겠다고 민트 사탕 통 안에 넣어놓고 '나 민트 하나만 줄래?' 하면서 귀엽게 이벤트 하며 준 참(Charm, 팔찌 줄에 끼우는 구슬 같은 것으로 본인이 원하는 걸 골라 끼우면 자신만의 팔찌가 완성됨. 판도라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참들이 있음.) 이야. 이건 내 생일에 도련님이 선물한 상품권으로 산 참이고, 이건 내가 카페 첫 월급 받은 날 기념으로 산 십자가 참이고, 이 줄과 이 참 하나는 내 친구 은표가 결혼선물로 사준 거야. (... 중략...) 엄마, 이 팔찌는 단순한 팔찌가 아니야. 추억을 쌓는 팔찌가 된다고요. 금붙이보다 훨씬 의미가 있다고!"
다단계 판매사원도 울고 갈 현란한 말솜씨에 엄마도 급기야 수긍하셨고, 이때다 싶어 저는 카탈로그를 들이밀며 팔찌의 줄과 참을 하나하나 함께 골라드렸습니다. "엄마 먼저 팔찌 줄을 고르자- 이거 어때? 이건?" 하며 막무가내식으로 보여드리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이쁘네~~” 하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거봐 엄마, 그 먼 옛날 옛적 선사시대부터 장신구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두 번째로 참을 골랐습니다. 엄마는 좋아하는 금이 조금 들어간(ㅋㅋㅋ), 하트 디자인이 예쁘게 패턴화 된 참을 첫 번째로 고르셨습니다.
“엄마, 다음 참은 내가 고를게! 내가 아기 엘림이를 낳고서 수술실을 나오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나면서 세상 모든 엄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 특히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엄마랑 동욱씨 낳으시고 정성으로 키워주신 어머님께 너무너무 감사해서 참 많이 울었어. 엘림이 태어난 기념으로 손서방이랑 나랑 두 어머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볼 때마다 엘림이 떠올리실 수 있는 어떤 거라도 하나씩 사드려야겠다 생각했어. 두 번째 참은 엘림이를 기념하는 알파벳 ‘E’ 모양으로 해드릴게요!”
엄마의 판도라 줄과 참 두 개를 함께 고른 후, 산후조리 관계로 바깥출입이 불가능한 저 대신 남편에게 구매를 부탁했습니다. 한참 말없이 판도라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던 남편은 Blue “Baby Boy” Teddy라고 이름 붙은 곰돌이 모양 참을 보며 이거도 의미 있는데.. 하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Surprise Baby(아이의 성별을 일부러 알지 않고 출생 시 알게 되는 것)가 로망이었던 엘림이 아빠 덕에 뱃속에 있는 내내 비밀에 부쳐졌던 엘림이의 성별. 엘림이 아빠는 예전부터 첫 아이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했었는데, 임신 후 제 증상 (비슷한 시기에 아들을 임신한 임산부가 주변에 여럿이었는데 저랑 증상이 너무 달랐답니다)을 살피던 남편은 아무래도 엘림이가 딸 같다며 열 달을 갑자기 딸바보가 되어서 (ㅋㅋㅋㅋ) 급기야는 Youtube나 facebook에서 딸들 영상을 보며 좋아서 다리를 동동 구르곤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수술실에서 엘림이가 태어나고 “It’s a baby BOY!”라 외치며 엉엉엉 꺼이꺼이 울었다는 것은 안 비밀이고요. :)
아마도 Baby boy라는 말이 본인에게 너무나 특별한 단어이기 때문에 저 참을 저리 뚫어져라 보나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며칠 후, 신랑이 엄마와 함께 집 근처 Botany 에 있는 슈퍼마켓에 장 보러 갔습니다. 장보는 줄로만 알고 계셨던 엄마를 모시고 스을쩍 판도라로 들어간 우리 신랑. 엄마가 고르신 팔찌 줄과 참 하나, 제가 고른 엘림이의 ‘E’, 그리고 본인이 눈여겨보던 Baby boy 참까지 사서 친정엄마께 선물해드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의 팔목이 화사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 팔찌를 보고 칭찬해드리니 해사한 미소를 띠셨습니다. 그때 우리 남편이 제 손에도 선물을 하나 건네줬습니다. 토끼눈이 되어 선물을 열어보니 그 안에 들어있는 ‘E’와 ‘Baby boy’ 참 두 개...!
“엘림이 낳느라고 고생이 많았어. 자기도 이거 보면서 항상 엘림이 기억해. 자기도 위대한 엄마야 이제.” 남편의 진심 어린 격려와 사랑 덕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28시간의 진통 동안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내 곁에 있어준 사람.. 제왕절개 응급 수술 마취제로 인해 바들바들 떨며 대기하는 내 옆에서 마음 아파하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보며 ‘잘했어, 잘했어. 고생 많았어. 이제 우리 엘림이 만나는 거야.’ 내 어깨를 도닥이던 사람... 우리는 엘림이 덕에 엄마와 아빠가 되었습니다. 둘이었을 땐 미처 몰랐던 가족애가 생겼고, 부부애는 말할 것도 없이 깊어졌습니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이제 결코 끊을 수 없는 엘림이라는 단단한 끈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보냅니다. 선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마지막으로 시어머님께도 엘림이의 ‘E’와 ‘Baby boy’ 참을 선물해 드렸습니다. 회사에서 깜짝 선물을 받으시고 참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엘림이를 낳고 보니 두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고,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어서 뭐라도 엘림이를 기억하실 수 있게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님도 친정엄마와 마찬가지로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됐다, 괜찮다. 사양하는 것 역시 모든 엄마의 공통점인 듯합니다. 어머님께도 남편을 통해 마찬가지로 판도라 참을 선물해드렸습니다.
세명의 위대한 어머니가 어제 한자리에 모여서 엘림이 참을 모아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의 팔에서 엘림이의 상징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먼저 출산을 경험한 친언니 이지는 아기를 낳은 직후에 형부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님 모시고 가서 옷 한 벌 좋은 거 해 드려. 아기 낳아보니 고생해서 오빠를 낳아주신 어머님께 정말 정말 감사해." 엘림이를 낳기 전에는 그게 어떤 마음인지 머리로는 이해했을지 몰라도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었는데, 엘림이를 낳고 보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됩니다. 출산을 통해 친정엄마만큼이나 시어머님과 마음으로 가까워짐을 경험했습니다.
미국의 한 크리스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썼다는 시를 함께 나누며 이번 포스트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녀의 시가 제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습니다.
- 나의 첫 번째 어머니와 나의 두 번째 어머니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2018년 7월 12일, 엘림이 태어난 지 17일째 되던 날의 기록.
우리들의 어머님
나의 어머님 시어머님
사람들은 당신을 시어머니로 부르라고 하지만
나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르리이다
나의 사람인 남편의 생명의 시작을 가능케 한 당신
당신은 그이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가르치신 어머니
당신은 그이에게 친절과 정직을 처음으로 가르치신 어머니
그이가 피곤하여 잠들었을 때 그이는 당신의 팔 안에서 안식을 청했으며
그이가 넘어졌을 때 그이가 당신의 손 안에서 다시 일어나 걸을 수가 있었고
당신은 그이가 자랄 수 있도록 언제나 그이 곁에 머물러 계셨으며
당신은 그이가 위를 쳐다보고 살 수 있도록 무릎을 꿇으셨나니
그이가 내 사랑하는 남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신 당신의 사랑에
나는 누구보다도 빚진 자이노니
이제 나는 그이와 함께 당신을 영원히 이렇게 부르리이다
우리들의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