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칠일, 그것이 알고 싶다
아가 엘림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21일째가 되는, 삼칠일이었습니다.
출산 전, 삼칠일은 그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와 산모를 위해 외부 손님의 출입을 금하는 날짜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며 찾아보니 삼칠일에 담긴 옛 어른들의 지혜가 적잖이 놀랍습니다.
먼저 사전적인 의미의 삼칠일은 3x7= 21일입니다. 세이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레란 일곱 날을 의미 합니다. 옛 선조들은 7이라는 숫자를 길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7일을 기준하는 날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첫 주는 초이레, 둘째 주는 두이레, 셋째 주는 세이레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첫 주, 초이레에는 새 옷과 새 포대기로 갈아주고 아이와 시아버지가 첫 대면을 했으며 새벽에 삼신에게 흰쌀밥과 미역국을 올렸다고 합니다. 엘림이 출산 후의 경험입니다. 뉴질랜드 산후병동에서는 엄마 뱃속에서 나왔을 때 그 상태 그대로, 특히 태지가 신생아의 면역에 도움이 된다며 입원한 4일간 아이를 씻기지 않았습니다. 막 태어났을 때 아이를 닦아줬을 뿐이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가능하면 당분간은 이틀 간격으로 물로만 씻기는 게 좋다고 권유해줬었고요. 어쩌면 옛 어른들께서 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 후 초이레에 새 옷과 새 포대기를 갈아줬었던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아기의 면역에 훨씬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슬쩍해봅니다.
둘째 주, 두이레에도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아기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해 주며 새벽에 삼신에게 흰쌀밥과 미역국을 올렸다고 합니다. 신생아가 모로 반사 즉, 자궁 안에서 꼭 웅크리고 있어 꽁꽁 묶여(?) 있던 팔과 다리가 자궁 밖에서 자유를 찾아 허우적대는 것에 깜짝 놀라 잠을 깨거나 자지러지게 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요즈음에는 스와들 (윗 사진에 사과 모양)로 아이를 싸매 주는데 아마 옛 어른들도 그리 하셨나 봅니다. 그 옛날에는 2주 만에 아이의 두 손을 자유롭게 해 줬었다니... 아직도 스와들 없으면 화들짝 깨는 손엘림이는 반성합시다. (ㅋㅋ)
셋째 주, 세이레에는 새벽에 삼신에게 흰쌀밥과 미역국을 올리고 대문에 걸어두었던 금줄을 내리며 수수로 경단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삼칠일 동안 대문에 걸어두었다던 금줄. 금줄에 대해 알아봐야겠습니다.
금줄은 금할 금 (禁)의 뜻을 가진 짚단으로 만든 새끼줄입니다.
아이를 낳았을 때 집 대문에 금줄을 쳐 매달아 놓았는데 아이가 태어났으니 발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금줄은 왼쪽으로 꼰 새끼줄에 숯, 솔가지, 고추 등을 첨가하여 만들었습니다. 보통의 생활용품은 오른쪽으로 새끼를 꼬는데 반해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은 왼쪽으로 새끼를 꼬았다고 합니다. 오른쪽으로 꼰 새끼는 일상적인 것들, 인간세상에 속한 것들을 뜻하고 왼쪽으로 꼰 새끼는 성스러운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기를 특별하게 생각했던 선조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이가 아들이면 고추를, 딸이면 솔가지를 달아 아이의 탄생과 함께 성별까지 이웃에 알리는 역할을 바로 이 금줄이 했다고 합니다.
금줄을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엘림이에게도 삼칠일이 찾아왔습니다. 벌써 엘림이가 세상에서 3주를 보냈다니. 초보 엄마는 3주 동안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변하는 엘림이의 얼굴에 하루하루 새롭습니다.
“엄마 오늘 엘림이 삼칠일이야”라는 저의 말에 친정엄마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아기 태어나고 일주일이면 잘 버텼다고 떡 만들어서 동네에 돌리고, 이주일이 되면 또 그간 잘 컸다고 떡 만들어서 동네에 돌리고, 삼주일이 되면 또 잘 컸다고 떡 만들어서 또 돌리고 그랬단다”.
엘림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사실 부끄럽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기들 본아트 촬영에, 50일 기념촬영에, 100일 기념촬영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를 데리고 너무 요란한 것은 아닌가. 이렇게 유난스럽게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젊은 요즘 세대 엄마들만의 유별난 행동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친정 엄마 말씀을 듣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프랑스의 철학자 레지 드브레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79p.]
제3세계에서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이 비위생적인 환경과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다가 목숨을 잃어 갑니다. 높은 유아 사망률과 영양실조가 그 원인이고요. 저희 친정엄마는 1958년생이십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난 후, 고작 8년 있다가 태어나신 것이니 당시에 한국도 개발 도상국, 즉 제3세계나 다름없었겠죠. 그런 상황이었다면.. 아기가 태어나 자란 일주일도 기념하고, 이주일도 기념하고, 삼주일도 기념했을 그 부모의 마음이 저 또한 십분 이해가 됩니다. 그저 살아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엄마, 우리도 삼칠일 기념하자! 엘림이를 3주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다~~”
마침 오늘은 어머님께서 엘림이를 보기 위해 퇴근하신 후 잠깐 들리기로 하신 날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해외에 계신지라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일단은 남편과 어머님께 미리 연락을 드려 사정을 설명한 뒤, 함께 저녁식사를 나누고 간단하게 집에서 기념 촬영을 하자 제안했습니다.
삼칠일 기념 식사를 위해 사랑하는 남편이 솜씨를 좀 발휘했습니다. 이름하야 ‘아보카도 페스토 아몬드 파스타 (Avocado pesto almond pasta).
정말로 솔직하게, 그 어떤 식당에서 사 먹는 그 어떤 파스타보다 맛있습니다. 홈메이드 키위에이드까지 곁들이니 그 어느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엘림이 삼칠일 기념촬영에 들어갔습니다.
엘림이가 배고픈 상태라서 찡찡 울기 시작했는데 마침 안 우는 타이밍에 두장의 단체 사진을 건졌습니다. 두장의 사진 속 엘림이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찍은 사진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두 할머니와 찍은 사진 속 엘림이 좀 보셔요 여러분~~~ 메롱하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귀여운 녀석.
하나님, 우리 엘림이 3주 동안 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보니 3.7kg이 되었어요! 2.765kg 작은 아기로 태어나 마음이 참 아팠었는데 3.7kg이라니요! 고작 1kg이지만 엄마에겐 더없이 귀중한 1kg입니다. 이 아이 평생 동안 지금처럼 지키시고 키우시고 보살펴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좋으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그동안 엘림이는 잘 먹고, 잘 싸고 , 잘 자면서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는데요, 아가 엘림이가 크는 것조차 아까운 저는 날마다 “엘림아, 조금 천천히 자라도 돼. 엄마는 엘림이가 쑥쑥 자라는 게 왜 이렇게 벌써부터 아깝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엘림이의 외할머니이자 저의 친정 엄마께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아이가 자라서 눈 마주치며 너를 쳐다보고 방긋방긋 웃으면 또 더 예쁘고, 말하기 시작하면 또 얼마나 더 예쁜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암요, 그럼요. 날마다 이 아이를 향한 사랑이 더욱 커지는 것을 느끼는데, 좀 더 크면 엘림이를 향한 제 사랑 또한 더 커져서 더 예뻐하고 있겠지요.
엘림이가 태어나기 전, 뱃속에 아가 엘림이를 품고서 Nature Baby라는 아기용품 집에 가서 바디 수트(배내옷)와 보넷 모자, 손싸개와 양말을 각각 두 개씩 샀습니다. 오래 기다렸던 아이인지라 많은 분들께 축하와 함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엘림이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옷장이 꽉 찰 만큼 옷이 많았는데요, 더 이상 아기 엘림이를 위해 옷을 살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엘림이의 첫아기 옷을 엄마인 제가 정말 한벌도 준비하지 않으면, 나중에 뭔가 후회할 것만 같아 엘림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두벌을 급히 준비했습니다. 제가 꿈꾸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건 바로 아가 엘림이가 입었던 첫 바디수트와 보넷 모자, 손싸개와 양말을 버리지 않고 계속 깨끗하게 잘 간직했다가, 엘림이가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그러니까 내 손주에게 그 옷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 먼 훗날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몇십 년 전부터 할머니가 미래에 태어날 자기를 생각하며 본인의 첫 옷을 사고, 빨고, 간직해 왔다는 사실을 미래의 내 손주가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을 느낄까요? 아마 시공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기분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과거에도 나를 예비하시고 사랑하시고, 현재에도 나와 함께하시면서 나를 사랑하시고, 미래에도 나와 함께하시며 사랑해주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졌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변함없으신 주님의 사랑♥️ 할렐루야.
우리 엘림이, 기도해주시고 사랑해주신 덕분에 잘 크고 있습니다. 엘림이도 예수님처럼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복음 2:52.
- 2018년 7월 16일, 엘림이의 삼칠일에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