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가까이 두고 싶은 경험: 아이노 & 알바 알토

#국립현대미술관 #필름앤비디오 #건축 #가구

by 솔파랑


tempImageDCm5rz.heic MMCA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 알토 (2020)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는데 그 중 알토에 관한 영화도 있어서 다녀왔다. 영화를 본 뒤, 알토를 좋아하는 박희찬 건축가와 이현주 학예연구사의 강연도 듣고 질의응답도 할 수 있어서 전보다 깊이 알토를 이해했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참기가 더 힘들다. 그래서 오랜만에 브런치 글을 쓴다.


파이미오 의자를 만든 사람

알토는 핀란드 출신의 건축가지만 나는 건축보다 가구를 통해서 알토를 알았다. 아래 유려한 곡선을 갖춘 의자가 내게 알토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 가구이다. 이 가구의 이름은 파이미오 의자. 알토가 파이미오 요양원을 설계할 때 함께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 알토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이 때의 경험을 살려 요양원과 가구를 디자인했다. 알토는 누워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몸을 눕힌 상황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여 건축과 가구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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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파이미오 요양원 스케치 (우) 파이미오 의자


파이미오 의자는 요양원 테라스에 쓰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느긋하게 햇살을 받으며 치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안한 곡선과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알토가 작업하던 1920-30년 대에는 강철튜브가 유행했지만 알토는 금속 소재가 환자들에게 차갑고 딱딱한 느껴질 것을 우려하여 나무를 활용해서 디자인했다.


알토의 아버지는 핀란드에서 측량사로 일했다고 한다. 알토 역시 주변의 환경과 지리를 관찰하는 시간이 풍부했다. 핀란드의 자연을 탐구하면서 알토는 자신의 디자인 언어를 쌓아갔고 특히 핀란드에서 많이 자생하는 자작나무를 자주 사용했다. 파이미오 의자 역시 자작나무로 만들어져 부드럽고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한 테라스에서 눈을 감고 파이미오 의자에 기댄 채, 팔걸이의 곡면을 감각하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한결 기분이 편해진다.


tempImageo0zDI3.heic 파이미오 요양원의 테라스 모습


아이노 알토(Aino Aalto)

tempImagej5DrHT.heic 아이노 알토의 모습


지금까지 말한 알토는 알바 알토(Alvar Aalto)다. 그에게는 아이노 알토(Aino Aalto)라는 동료이자 아내가 곁에 있었다. 아이노 알토는 오늘날까지도 알토의 가구와 조명, 패브릭을 생산하는 핀란드 가구 회사 ARTEK의 공동 창립자이자 ARTEK이 미국에도 진출할 수 있도록 회사를 운영하고 총괄 디렉터로서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tempImagec2yMEU.heic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Tea Trolley


아이노 알토는 알바 알토와 디자인적인 영감을 주고 받으며 회사를 이끌어간 디자이너다. 알바에 비해 아이노는 상대적을 간결하고 차분한 디자인 언어를 구사했다. 영국 차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한 Tea Trolley 도 그렇다. 티 테이블이나 가벼운 수납, 소파 사이드 테이블로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열린 기능을 갖고 있는데 구성요소는 매우 간결하다. 사용자가 필요한 공간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쓸 수 있으면서도 어디든 어울리는 디자인이라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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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조명 AMA 500 (우)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조명 Golden Bell


위 조명은 아이노와 알바가 디자인한 조명이다. 두 조명 공통적으로 아래쪽에 길쭉한 타원형의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시기 상으로는 아이노 조명이 먼저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공통점을 보일만큼 아이노와 알바가 조형적인 영감도 활발히 주고 받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tempImageKeG5gT.heic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아이들 가구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아이노는 아이들을 위한 가구 작업도 많이 남겼다. 아이들의 체형과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고려하여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가구를 디자인했다. 안전을 위해 곡선으로 처리되어있고 무언가를 흘리더라도 청소하기 쉽게 표면을 마감했다.


tempImagejz2FKS.heic 아이노 알토의 스케치


인간이 가까이 두고 싶은 경험

왜 알토(아이노와 알바 모두 일컫는다)의 건축과 가구는 100여 년동안 사랑받고 있을까? 알토의 건축에는 난간이나 손잡이가 다 살아있다. 지금은 난간이나 손잡이가 없어야 사진이 잘나오고 조형미가 좋다고 생각해서 많이 없애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쓰기 편하려면 사용성이 좋은 난간과 손잡이가 있는 편이 좋다. 매끈하게 질감을 획일화하고 구성 요소를 생략한 디자인보다 조금은 손이 가더라도 온기가 있는 디자인이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원하는 경험에 충실한 디자인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살아남는 게 아닐까? 알토의 가구만 접해봤지만 언젠가 핀란드에 가서 알토의 건축물도 경험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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