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다 가던 길을 멈추고 차라리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솔직해지자.
이 블로그에는 잘 된 스토리만 쓰고 싶었다.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잘 헤쳐나가 이런 걸 이루었다는 이야기. 실패의 기록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실패가 가져다준 성공의 기록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숱한 실패가 쌓여가는 동안, 이곳에 글을 남기지 않거나 글을 남겨야 하겠다면 차라리 다른 이야기를 쓰길 택했다. 이유는 내 글을 볼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다른 무수한 익명의 존재들한테 웬만하면 희망찬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게 가장 컸다. 겪어보면 알 수 없는 일에 지레 겁주고 싶지 않기도 했고 왠지 모르게 '나 같은 사람도 했는데 여러분도 다 할 수 있어요' 따위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고 싶은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던 것 같다. 그렇게 뜻하는 대로 희망적인 메시지를 남길 수 없다는 이유로 입을 다무는 동안 나는 점점 너덜너덜해져 갔고 또 한 번 거절의 메시지를 듣고 난 오늘 오후에는 무언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이대로 터져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인턴을 구하기 위해 숱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커리어 코칭을 받고 면접 연습을 하고 또 실전 면접을 몇 번 볼 기회를 얻었다. (다 붙어놓고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 그냥 까놓고 말하면 꺄르띠에에서도, 샤넬에서도, 에스티로더에서도 봤다. 굵직한 곳에서 연락이 오면 마치 그곳에 진짜 들어간 것 마냥 흥분했다. 하지만 진입장벽은 높았고 나는 늘 면접을 앞두고 설레었다가 면접을 본 후 좌절했다가, 결과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했다. 프랑스어와 영어가 머릿속에서 뒤섞여 이 언어 저 언어를 넘나들기를 반복했고 이쪽도 저쪽도 성에 차지 않아 스스로를 혐오했다. 기회를 마주할수록 갈증은 심해졌고 될 듯 말듯한 상태가 날 미치게 만들었다. 요즘 다들 일자리 구하기 어렵대 같은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고 나는 늘 '그래도 되는 사람도 있잖아'하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리고 오늘은 꽤 기대했던 곳에서 '당신의 경력과 배경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딱 맞는 자리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고 위태위태하게 버텨오던 모래성이 갑자기 우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꽤 오래 거창한 일을 하길 꿈꿨다.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에도 인턴 면접을 봤다. 미래의 커리어 계획을 묻는 질문에 답을 하다가 마지막에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사실 이 브런치를 쓰는 이유도 8할은 거기에 있다. 이것은 내 개인의 이야기지만 미미하게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를, 그래서 뭔가 언젠가는 사회를 조금씩 바꿀 수 있기를. 늘 그런 이유로 열심히 산다. 내 일이 잘 풀려서 좋은 선례가 되면 좋잖아, 다른 사람에게 용기가 된다면 좋잖아. (정작 나는 위태위태하면서 잘도!) 잡지에 글을 쓸 때도, 프랑스에서 석사를 해보자고 결정했을 때에도, 한 켠에 이 마음을 늘 품고 살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없던 용기도 생기고 그건 꽤 오랫동안 좋은 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건,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외로울지에 대한 문제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삼켜야 하는 말이 쌓였고 프랑스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각오했던 것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냥, 그냥 아무나. 별 볼 일 없어도 좋으니까 그냥 별 볼 일 없게 살고 싶다는 생각. 딱히 큰 꿈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 잘 보내는 게 전부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치열하게 도전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 지금처럼 혼자 이 모든 상처를 무작정 냅다 들이받아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최소한의 쿠션도 없이 무자비하게 날아와 꽂히는 이 모든 화살을 견디는 게 정말 지긋지긋해. 왜 나는 나한테 관대한 게 이렇게 어려울까? 내가 원망해야할 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거의 나 자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