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프랑스의 경영학교 학생들은 흔히 동거를 한다

<논스톱>,<프렌즈> 같은 프랑스의 대학 생활

by 봄의파랑

*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내가 다니는 경영 학교 기준(파리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진 중소 도시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프랑스의 흔한 대학 생활로 일반화시킬 수 없음을 미리 얘기해둔다. 일반적인 것인지 나도 궁금하다.


90년대 생이라면 한 번쯤은 논스톱 시리즈 같은 대학생활을 꿈꿔봤을 것이다. 하숙집에 친구들 여럿이 모여 살며 우정도 쌓고 때로는 사랑도 하는 그런 낭만적인 대학생활. 그리고 그것이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데까지는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 한편에 치워뒀던 작은 로망이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예상치 못하게 현실 세계로 들어왔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colocation(꼴로까시옹, 줄여서 꼴로)'이라는 개념이 꽤나 흔하다.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일반적으로 각자가 쓰는 방이 있고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적게는 두 명에서 많게는 여덟 명까지 꼴로를 하는 것을 봤다. 물론 월세는 사람 수로 나눠서 함께 낸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꼴로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경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파리는 월세가 꽤 비싸다. 2019년 피가로지의 보도에 따르면, 30m2 기준 파리의 평균 월세는 1079유로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평균을 내서 그 정도지, 조금 살만한 동네를 찾다 보면 1300유로나 1400유로를 넘는 경우도 다반사다. 부동산 어플 등을 통해 집을 보다 보면 말도 안 되게 작은 스튜디오에 월세만 더럽게 높은 경우가 많아서(이럴 경우 집의 컨디션도 별로다) 조금 나은 컨디션의 집을 찾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실 2개를 포함해 방이 3개인 아파트를 찾아보면 거실을 포함해 누릴 수 있는 크기도 커지고 월세를 n 등분한다고 가정하면 가격도 훨씬 저렴해지는 것이다. 매물 자체도 스튜디오보다는 방 3개 이상부터가 훨씬 많아 자연히 선택지도 올라간다. 현재 파리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 친구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매니저 또한 돈을 벌지만 아직도 꼴로를 하고 있다고 얘기하며 그 편이 돈을 모으기에도 훨씬 좋을뿐더러 자신의 방에 조용히 있을 수도 있으면서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요하면 거실에 나와 누군가와 얘기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얘기했다.


여기서 사회적 측면에서의 꼴로의 장점도 엿볼 수 있다.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거실이 있다는 것. 각자 방에서는 충분히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때는 거실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이런 때에는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기가 쉬운데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어쨌든 그 외로움이 약간은 덜어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늘 혼자 사는 것을 더 선호했던 사람인데, 요즘에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인간은 역시 사회적인 동물인가 싶기도 하다. 또 꼴로의 경우에는 상대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어 더 편하다. 예를 들면, 애인이나 가족처럼 애정이 있으니까 잔소리도 더 하게 되고 한편으론 쉽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는 관계보다는 뭔가 서로에게 관심 없고 쿨하게 지낼 수 있는 사이일 때(좀 더 산뜻한 관계일 때) 잘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다. 물론 같이 살게 되면 맞춰가야할 부분이 많고 가끔은 불가피한 갈등도 생길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한 인간에게 필요한 사회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꼴로도 해본 놈이 더 잘할 거고, 그렇게 남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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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교 친구들은 대체로 캠퍼스가 있는 세르지에서 꼴로를 하거나 아니면 파리에서 통학을 한다. 세르지에서 꼴로를 하는 친구 중에서는 물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도 있지만 파리에 본가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파리에서 통학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여기서 꼴로를 할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면 대부분은 프랑스에서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특히 봉쇄령이 반복됐던 작년에는 학교가 문을 닫으며 본가로 돌아갔던 친구들도 부모님과 너무 오래 붙어있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올해 1월 학교가 개강하자마자 세르지로 돌아왔다. 세르지에서 꼴로를 하는 경우 조금 특별한 점은 파리처럼 아파트에 사는 경우도 있지만, 교외인 만큼 주택에서 꼴로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4명이서 1층이 부엌과 거실, 2층이 4개의 방으로 된 집에 산다. 그리고 1층에는 날씨가 좋아지면 더 멋진 작은 정원도 있다.


여기서 꼴로의 재미있는 점이 또 하나 있다. 꼴로가 네트워킹의 축 중 하나라는 것.나한테는 올해 초 Imagination Week에서 만난 꺄미라는 친구가 있다. 까미가 하루는 자기 집으로 초대하며 자기가 나와 같은 동아리 친구인 조에와도 친하다면서 우리 셋이 함께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때 조에랑 나도 서로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여서 처음으로 셋이 둘러앉아 꺄미가 준비해준 키쉬를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꺄미의 룸메인 쟌느가 방에서 온라인 수업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고 그때 처음으로 쟌느와도 인사를 나눴다. 꺄미와 조에, 쟌느는 작년에 수업에서 만나 친해졌다고 했고 그날 점심 이후에는 꺄미가 쇼핑을 가거나 할 때 나를 같이 불러서 그 친구들의 서클에 나도 자연스럽게 끼게 됐다. 그 후에는 쟌느의 친구인 윌리엄이 집에 놀러 와 아는 사이가 됐고, 얼마 전에는 조에, 쟌느, 꺄미, 윌리엄, 그리고 쟌느와 꺄미의 새 룸메인 발렁틴까지 모여 프랑스 전통 음식인 '하끌렛' 파티를 하고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꼴로를 하는 무리 중에 한 명이랑만 친해져도 그 룸메, 룸메의 친구까지도 아는 사이가 돼버리고 손쉽게 친목의 반경이 넓어진다. 워낙 프랑스 애들은 같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처음 만난 사이라도 친근하게 말을 걸어준다. 특히 경영학교 특성상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처음 만나도 어색하거나 뻘줌한 상황이 잘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면 공간이 넓은 만큼 많은 사람이 초대를 받고(가끔은 동아리+꼴로 조합이 되기도 한다) 금세 거기 있는 사람들과 '아는 사이'가 될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간극은 내가 이곳에 살면서 답을 찾고 싶은 주제 중 하나다. 누구보다 혼자 살고 싶어할 것 같지만 남들과 사는 걸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래서 친구들에게 높이 평가 받는 꼴로 문화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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