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이방인 3년 차의 삶이니까 (찡긋)
프랑스에서 보낸 첫 해에는 꽤 많이 울었다. 울음은 어떤 슬픔이나 아픔의 표현 방식이 아니었다. 그때는 오히려 어떤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감정이 일렁이다 눈물을 쏟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뛰러 나갔다가 마주한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는, 지독하게 감상적인 이유로 눈물이 줄줄 났다. 그러면 눈물이 나는 대로 흘려보내며 계속 뛰었다. 그렇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이유로('나 왜 이래?') 한바탕 울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혼자 끄적였던 노트를 다시 보면 온갖 감정으로 어지러이 범벅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매번 파리를 가도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사적인 기록이라 매우 부끄럽지만 그때의 감정은 그대로 소중하니까, 몇 개만 가져와본다.
세상이 미웠던 때가 있다. 나는 이렇게나 진심인데, 그걸 몰라주는 것 같고 뭐, 그랬다. 그러다 결국엔 내가 사랑하던 도시로 도망을 쳤고 그 후, 이곳에서 종종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삶이 가치 있는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비로소, 삶을 조금씩 다시 사랑해가고 있다. 190928
날 울게 하는 핑크빛 노을. 190919
들이쉬는 숨에 냉기가 가득할 때, 찬바람에 코 끝이 시릴 때, 나는 막 프랑스에 도착했던 그때 그 겨울을 떠올리고 이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생각하다가도 훗날 이 시간들이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울지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190909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빛, 선선한 바람. 우리가 가을에 누리는 모든 것은 우리를 기쁘게 하기 충분한데도 그 아름다움은 종종 우리를 울게 하기도 해. 아프고 외로운 날이 나를 스쳐간다. 190902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찬란한 슬픔을 좋아해. 일렁이는 마음을 슬픔으로 정의하기엔 그 슬픔이 너무 반짝여서, 그 슬픔과 찬란함의 간극이 일상에 숨을 불어넣어줘. 내가 이 순간 느끼고 있는 모든 감정에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 190830
나에게 첫 해, 2019년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자면 꽤 중요하게 기억될 삶의 전환점이다. 처음 왔을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장기로 프랑스에 있을 생각이 없었고 그저 미래의 불확실성에 나 자신을 던져본 후, 그 결정이 날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보자는 마음이 다였다. 물론 프랑스에서의 삶이 잘 맞으면 계속 살 생각도 있었지만 1년 잘 쉬었다 생각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까 만약 한국으로 돌아가서 새 삶을 시작했다면, 2019년은 뭔가 인생을 불연속적으로 끊어가는 하나의 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기 남아서 석사를 시작함으로써 인생 제2막,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과정 중 하나가 되었지만. 그랬기에 이 시기를 돌이켜 보면 유난히 애틋한 마음이 든다. 특히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의 그 너덜너덜해졌던 지친 마음을 이 도시에 살면서 하나하나 잘 꿰매어갔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싶던 삶을 잘 붙들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파리는 무언가를 자꾸 꿈꾸게 했고, 그 꿈을 위해 살고 싶어 지게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와야 했던 이유가 충분했다.
그땐 이방인으로 살 수 있어서, 지긋지긋하던 모든 관계로부터 탈출해 자유를 얻어서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독립을 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외로움과 불안함, 서글픔 등에 매몰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사소한 스트레스들이 꼭 한 번씩 그렇게 울음의 형태로 터져버린 게 아니었을까 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에 앉아 가족들한테 보낼 편지를 쓰다가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는 그 눈물이 편지지에 떨어져 잉크가 번질 정도였다. 그때에도 딱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힘들다기엔 넘치게 행복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눈물을 다 털어내고 나면 그만큼 마음이 치유가 됐다. 세상이 날 배신한 것 같다는 기분은 날 꽤 오래 힘들게 했는데 파리에 머물면서 서서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내가 늘 좋아했던 세상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아니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곳에 서 있다.
요즘엔 눈물이 없다. 유일하게 울 때는 책을 읽을 때나 영화를 볼 때 아무도 안 울 것 같은 장면에서 혼자 엉엉 울 때뿐이다. 나는 이제 현재에 살고 있고, 울기에는 삶이 너무 바쁘다.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에 하루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발점에 선 나는 배울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많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많은 것들이 안정됐다. 이방인으로서의 신분도, 의료 보험도.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주택보조금도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최근에는 구직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괜찮다. 한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해내는 날 좀 더 믿어보기로 한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뤽상부르 공원에 갔었다. 처음 다니던 어학원이 그 근처여서 한동안 매일 점심을 먹었던 곳이고, 대학원 지맷 시험을 준비할 때는 그 근처에 있던 공립 도서관을 다녔기 때문에 겨울에서 봄을 거쳐, 여름과 가을을 지나올 때까지 오며 가며 자주 들렀던 곳이다.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며 그 공원을 맴맴 도는데 유난히 처음 이곳에 왔던 시기가 많이 생각이 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할까 고민 중이라고 처음 얘기했던 곳도 바로 이 공원 벤치였는데 어느새 그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된 내가 마음에 든다. 이제야 진짜 새로운 페이지를 넘긴 것 같아서.
이방인들은 누구나 낯선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 공기를 간직하고 산다. 그리고 도착하던 날의 그 계절이 돌아오면 자연히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절대 그립지 않으면서도 약간은 그리운 처음의 순간. 오늘로 나는 프랑스에서 세 번째 1월 28일을 맞았고 이제 막 이방인 3년 차의 삶이 시작되려는 참이다.
PS. 첫 번째 사진은 자주 나를 울렸던 순간, 두 번째 사진은 며칠 전 눈이 펑펑 내리던 우리 마을을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