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라는 자각이 나를 덮쳐오는 순간
프랑스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마침내 이곳의 일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환상이 있었다. 프랑스어를 적당히 할 수 있고 상당히 뻔뻔했던 나에게 프랑스 사회는 한 번도 모질지 않았으니까. 프랑스에 동경이 있었다는 것도 굳이 감추진 않겠다. 5년째 살면서 사회의 명과 암 모두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아쉬운 점을 어느 정도 덮어준다고 느낄 만큼 이곳에서의 삶이 좋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 애정만이 이곳에서의 삶을 이어나갈 동기가 되어주었다. 나름 견고했던 환상에 균열이 깨지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였다.
작년 하반기, 프랑스의 유명한 란제리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토록 궁금했던 프랑스에 본사를 둔 회사에서 드디어 내가 원했던 PR 포지션으로 일을 하게 됐다는 사실이 희망을 갖게 했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업무는 기대만큼 흥미로웠고 적응이 어렵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에디터로 일하면서 이미 홍보팀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도 했고, 해왔던 일의 정확히 반대 방향에서 흘러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직업 자체나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에디터로서 제품을 셀렉하고, 협찬을 받는 일을 했다면 지금은 협찬 요청을 처리하고 제품을 보내는 일을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드디어 이 나라에서 내게 맞는 궤도에 탑승하게 됐다는 것에 만족할 즈음, 나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자각이 나를 서서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회사에는 프랑스인이 전부였다. 나와 다른 팀의 중국인 인턴 하나, 우리 둘만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뭐?라고 생각했다. 사람 사귀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편이고 프랑스어도 불편함이 없었으니까 나는 괜찮을 거라고, 남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오만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일 함께 구내식당에서 팀원들과 점심을 먹는 일이 슬슬 버거워지기 했을 때부터.
구내식당에서 팀원들과 다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은 일종의 루틴이었고 우리 팀도 인턴, 정직원 구분 없이 6-7명 정도가 함께 밥을 먹었다. 초반에는 괜찮았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학교는 어디 다니는지, 어쩌다 프랑스에 오게 되었는지, 주말엔 뭘 하는지, 앞으로 커리어 계획은 뭔지, 어디 지방 출신인지, 파리 생활은 어떤지 등등. 하지만 이게 매일매일이 되니 점점 상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없어졌고 그렇게 다양한 애들과 이야기를 했음에도 별로 공통점이 없다는 사실도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적 맥락이 다른 외국인으로서 공감도 어렵고 말을 얹기도 힘든 얘기들이 자주 테이블에 올랐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시절의 급식, 각자의 대입 시험 에피소드, 그날 나온 점심 메뉴의 재료와 관련한 추억 얘기가 나올 때는 맥락 파악도 안 되고 모르는 단어도 많아 이해가 어려웠다. 스스로가 점점 육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외딴섬처럼 느껴졌다.
같은 타이밍에 웃지 못하고, 대충 눈치로 때워야 하는 상황들은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마도 영영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니까 세월이 지나면, 프랑스 사회에 점점 적응하면, 자연스레 이 사회에 속하게 될 거라는 나의 기대는 틀린 것이다. 오히려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나는 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물론 한국에도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서도 그저 이 팀 친구들이 나와는 결이 안 맞았던 것뿐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 모든 게 국적의 문제, 문화 차이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점심시간이 아련해졌다. 팍팍한 직장생활에 잠시나마 단비 같았던 그 시간들은 이곳에선 오히려 고역이 됐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자아는 점점 생기를 잃었고 평생 뻔뻔하게 굴 줄 알았던 나도 쉽게 주눅이 들고 작아졌다. 매일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게 스트레스였고 어쩌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마음이 놓였다. 직장생활의 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인생에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타인과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내 에너지의 원천이었다는 것, 그렇지 못한 환경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영원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이라고 믿었던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슬픔이 몰려드는 동시에 한편으로 홀가분하다. 적당한 때가 되면 돌아갈 것이다. 도전은 눈부셨고, 할 만큼 해 봤던 인생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어딘가에 속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써야 하는 삶은 피곤하고 사람을 지치게 하니까. 이제야 이해한다, 왜 사람들이 오랜 해외 생활을 뒤로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지. 그것은 패배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