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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Sep 12. 2023

사랑이 왜 안 될까

해외에 사는 30대 싱글 여성의 방황

'사랑이 잘 안 돼’라는 유행가 가사와 같은 생각을 꽤 오래 했다. 사랑이 정말 너무 안 됐으므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짧은 데이트 몇 번 후에 끝나버리는 관계만 계속 이어졌다. 혹자는 몇 번 보지도 않고 너무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제법 빠르게 이 사람과 이성적으로 발전이 가능할지를 판단하는 타입이기도 하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굳이 노력을 할 정도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기도 했다. 어중이떠중이 누군가를 만나서 만나야 하는 것보다 혼자로서의 삶이 더 좋고 편하니까.


굳이 연애를 해야 할까? 혼자서 잘 먹고 잘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잘만 살았으니까. 내가 싱글임을 자각할 새도 없이 일을 열심히 했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만났으며 그도 아니라면 항상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일상은 바쁘게 돌아갔고 연애라는 새로운 변수를 들이기에 월간지 기자로서의 삶은 이미 다양한 변수로 가득했다. 새로운 만남이 계속 생겼고 오히려 이런저런 관계에 치여 지칠 때도 많았다. 여자들의 우정은 내 인생의 중심 축이었고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친구들은 나에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었다. 함께 한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므로 바깥에서 아무리 상처를 받고 돌아와도 내 바운더리 안의 친구들만 있으면 위로가 됐다. 그렇게 가족, 오래된 친구, 바쁜 일과, 인생에 대한 크고 작은 고민만으로 인생이 충분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지금,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했고 치열했던 해외 생활도 서서히 안정을 찾아갈 때가 되어서야 혼자 늙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혼자 해외생활을 하는 것의 좋은 점은 언제든지 내키면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 프랑스에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 초반과 다르게 지금은 한국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이 정리되면 떠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그렇지만 그건 타지에서 정 붙이고 안정적으로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함께 인생을 보낼 파트너가 있다는 건 파리에 정착할 만한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특히 프랑스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이곳에서의 삶의 질이 훨씬 좋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곳에 남는 게 맞지만 가끔은 합리적이기만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 높은 삶의 만족도를 포기하더라도 가족, 친구들 곁에 있고 싶은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 마음 붙일 수 있는 이유를 찾고 싶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파티 문화가 발달했고 친구의 친구를 사귀는 게 흔한 문화에 있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늘 호기심이 가득하다 보니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문화를 알아가는 게 흥미로웠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낯선 언어를 마음껏 써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웠고 그러다 보니 언어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그렇다, 쉽게 말하면 나는 ENFP의 성향을 가졌다. 그러면 설명이 될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타입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런 일회성의 만남이 피곤하고 귀찮아졌다. 물리적인 체력도 나의 열정을 받쳐주기엔 역부족이라 파티에서도 새벽 한두 시가 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어 졌으니까. 게다가 이제 프랑스에서 사회생활도 하다 보니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프랑스어로 나불대는 것의 피로도가 훨씬 커졌다. 그래서 이제 나의 우주가 한 사람으로 좁혀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언제나 존재하고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끼면서도 단지 혼자라는 사실에서 오는 삶에 대한 공허함과 허무가 있다는 사실이 때로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인생에서 원하는 걸 모두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서도 딱 이 정도의 외로움을 채우는 게 마지막 남은 숙제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기쁨, 슬픔, 파도처럼 밀러드는 어떤 감정이라도 기꺼이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사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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