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 -3-

기억의 조각 모음 2편

by 봄의파랑

#2 린온미와 더힐

부제: 우리는 영원하지 않을테지만


워너원은 11명이고, 다른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 멤버수가 적지 않은 편이다. 무대 동선은 복잡하고, 파트는 쪼개진다.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멤버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이해는 하지만 무대에 갈증이 있는 건, 무대를 하는 멤버들이나 보는 팬들 모두에게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멤버들의 매력을 자세히 볼 수 있을 유닛 무대의 존재가 반가울 수밖에. 넬, 지코, 헤이즈와 다이나믹듀오로 이어지는 훌륭한 프로듀서 덕분인지 멤버들 각자가 추구하던 스타일로, 듣기 좋은 노래가 나온 것 같아서 팬의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니까 1차적으로는 멤버들이 하고 싶은 걸 맘껏해서(이 이유로 뭘해도 좋아해줬을테지만), 거기다가 네 곡 모두 노래까지 잘 뽑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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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콘서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린온미의 ‘영원+1’이었다. 아무 정보도 없던 첫 콘서트부터 가사가 너무 선명하게 귀에 들어와서 무대에 확 몰입이 됐다. 오죽하면 이 노래를 처음 듣는데도 눈물이 났다. 워너원의 한정된 시간에는 이미 충분히 면역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한번 터진 눈물은 참 무심하게도 흘러내렸다. 넬 특유의 담백한 가사와 세 보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먹먹함을 더했다. 노래를 관통하고 있는 ‘영원보다 하루만 더’라는 가사는 ‘영원이라는 시간보다 하루 더’라고 읽히기도 하고, 선호의 의미로 ‘영원을 바라는 것보다(영원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냥 하루만 더’라고 읽히기도 하는데 그 간극에서 노래가 더욱 애틋하게 들렸다. 그게 어떤 것이든 그걸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런 것 같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멀어져 버리지 않게 (도망쳐버리지 않게) 내가 꼭 붙잡고 있을게 (이렇게) 놓지 않을게
- '영원+1' 중에서


언젠가 대낮에 버스에서도 이 가사를 들으며 울컥한 적이 있다. 콘서트장에서는 그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눈물이 흐른 건 줄 알았는데 일상 속에서도 툭하고 건드리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이 올라오는 걸 보면 애써 덤덤한 척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들의 시간이 가는 걸 매우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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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에서 더힐의 모래시계도 마음을 툭툭 건드려왔다. ‘모래시계’라는 키워드에서도 짐작가듯이 모래가 다 흐르면 끝나는 한정된 시간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슬픔을 각오하고 있긴 했지만, 대휘와 성우 파트 도입부에 둘의 프로듀스 101 시절부터 에너제틱 무대, 음악방송 1위 등등 워너원으로 활동하는 영상이 전광판에 뜨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거 완전 반칙 아니야? 너무 슬프잖아. 길어야 1년 정도 밖에 안된 일인데,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도 참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흘러버린 시간도, 흐르게 될 시간도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다. 무심하게 흐르는 이 시간을 더욱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특히 이 노래에는 팬들이 헤이즈의 파트를 떼창하는 미션 아닌 미션(?) 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감정이 더 고조됐던 것 같다. 첫날에는 헤이즈가 무대 위에 오르기도 했고 팬들도 아직 어리버리하는 모양새였는데 막콘으로 갈수록 떼창이 커졌고, 그 노랫소리는 꽤나 감동적이었다. 멤버들이 그 파트에 조용히 인이어를 빼고 팬들의 목소리를 듣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마지막에는 성우와 대휘의 멘트가 전광판에 뜨면서 무대가 끝났다. 성우의 글씨로는,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하지 말아요. 시간이 흘러도 우린 함께일 거에요" 라고, 대휘의 글씨로는 "멈춰버린 모래시계처럼 우리 순간도 영원하길" 이라고 쓰여 있었다. 워너원 내에서도 감수성이 풍부한 편인 두 멤버가 만나 하나의 곡을 만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노래를 잘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보컬 합도 최고여서 노래를 끌어가는 4분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린온미의 가사가 담백하고 진솔한 편이어서 확 와닿는 편이었다면, 더힐의 가사는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좀 더 드라마틱했다. 특히, 성우가 처음 치고 나오는 파트의 가사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서사가 있어서 좋았다. 이 부분을 부르는 성우의 애절한 연기가 더해져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내가 먼저 너의 손잡아놓고 가야 한다 말하면 넌 도대체 어떤 맘일까 다시 올 거란 말 내가 너였다 해도 믿기지 않을 것 같은데
- '모래시계' 중에서


워너원과 팬들한테 ‘시간’ 이라는 키워드는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서로의 약점이자 언급을 피하는 금기같은 존재인데 이 두 유닛 무대를 통해서 그 시간을 대하는 멤버들의 진심을 보게 됐고 정말 이제야 약간 끝을 실감하게 됐다. 원래 아이돌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희박한 가능성에라도 기대고 싶은 게 팬들의 마음일텐데 우리는 너무 가혹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애초에 그 가능성조차 뺏겨버렸다는 게 서운하고 섭섭하다. 머리로는 영원하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고 위로하려고 하지만, 점점 하나의 그룹이 되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 멤버들을 보면 마음으로는 ‘영원보다 하루만 더’에 미련을 버리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까지 좋아할 계획은 아니었는데, 그게 맘처럼 되나. 후에 크게 상처받지 않을 정도만 좋아한다는 게.


성우가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 이별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난 아무래도 한참을 징하게 원망하고 아파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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