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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의파랑 Jan 31. 2019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는 도시

28/JAN/2019-30/JAN/2019

2019년 1월 28일, 오후 2시.

편도로 끊은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다. 12시간의 비행이 이제 만만치가 않다. 예전만큼 잠도 잘 못 자고.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와서 임시로 잡아놓은 숙소에 짐을 내려두고 샴푸, 바디워시, 칫솔&치약 등 미처 챙기지 못한 생필품을 사러 바깥으로 나왔다. 몇 발자국 채 떼지도 않았는데 설레서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의 은은한 빛과 핑크 구름, 그리고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도시. 아, 내가 사랑하는 파리다!

살 걸 다 사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나니 여독이 몰려와서 금방이라도 쓰러져 잠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7시 20분쯤 임시숙소 룸메이트와 곱창국수를 먹으러 중국 식당에 갔다. 밥을 먹으러 나오니까 또 배가 고프기 시작해서 피곤을 이기고 저녁을 먹으러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떤 비주얼이며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갔는데 향신료 향이 훅 끼치는 매콤하고 뜨끈한 국물에 곱창이 올려진 국수였다. 내가 딱 좋아하는 매콤한 맛일 뿐더러 하루종일 느글느글한 기내식 밖에 먹은 게 없었으므로 어느 때보다 맛있게 먹었다. 몸이 스르르 녹아버리는 기분! 먹고 집에 와서 정말 1시간 이내로 기절해서 잤다. 눈이 마구 감겨서 사실 잠든 기억이 없..zZ


2019년 1월 29일.

시차 적응에 실패한 나머지 오전 여섯시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굴었다. 오늘은 주 프랑스 한국 대사관에 서류 공증을 신청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다. 날이 매우 흐렸다. 대사관에서 얼레벌레 바보짓을 좀 하고(...) 무사히 Acte de Naissance 서류의 번역과 공증을 마치고 나왔다.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면 끝! 대사관이 7구에 위치해 있길래 재작년에 파리에 왔을 때 가봤던 Cafe Costume에 가서 부족했던 카페인을 충전하고 간단한 식사를 했다. 주문 미스로 내 팬케이크가 너무 늦게 나와서 서비스로 커피 리필을 받았다. 예전에 왔을 땐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었는데, 그게 훨씬 나았던 것 같아. 팬케이크 너무 달아.

집에 오는 길에는 추위에 취약한(^^) 아이폰 밧데리가 방전돼서 폰이 꺼졌다. 집 근처 지하철 역까진 무사히 도착했는데 출구로 나와서는 도무지 우리 집이 어딘지를 못 찾겠는 거다. 구글 지도 봐도 어려운데, 그마저도 없으니 진짜 답이 없었다. 미리 봐둔대로 움직여 보려고 했으나 그게 될리가 있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집이 위치하고 있는 골목이 도저히 안 나와서 이내 포기하고 주변 호텔로 들어가 로비에 길을 물어봤다.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구글 지도를 뒤져서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준 직원분 덕분에 겨우겨우 집에 도착. 아찔했다. 춥고 지쳐서 집에 쓰러져 있다가 핸드폰 유심칩을 사러 다시 외출. 이 때부터 슬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 축축해진 파리는 어쩐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연상시켜. 우산이 없어 내리는 비를 다 맞아도 그냥 파리라서 좋았다. 빗길을 헤치고 'Free Mobile' 매장에 도착해 무인기계에서 유심칩을 구매했다. 다른 통신사보다 여기가 가성비가 좋다고 봐서 굳이굳이 이곳까지 찾아갔다. 여기서 나의 멍청비용이 발생했는데, 뭣도 모르면서 용감하게 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일반 유심을 구매해버린 거다. 하지만 나의 아이폰 7을 포함해 (비교적) 최신 기종인 폰은 나노 유심을 구매해야 한다. 그래서 29.99유로를 허공에 날렸지 뭐. 모르면 용감하지라도 말지. 앞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일이 신중하게 확인하고 행동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29.99유로 짜리 교훈! 그 와중에 대체 뭐가 잘못된지 모르겠어서 한참 줄서서 직원분한테 물어봤는데, 나한테 이거 말고 나노 칩을 구매해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그분의 눈에서 왠지 모를 짠함을 읽었다. 기분 탓인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처럼 기분도 쳐지는 밤이었다. 눈이 온다고 하더니, 밤바람이 차길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서 밤새 눈을 기대했는데 결국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눈이 되지 못한 비만 내리고 끝났다.


2019년 1월 30일.

오늘도 역시 시차적응에 실패해 또다시 오전 여섯시부터 일어났다.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떼우다가 이러면 뭐하나 싶어서 일찍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파리나 구경하자! 는 마음으로. 오늘은 어제 신청했던 공증을 받으러 오전 열한시 이후에 대사관에 가야했고 그 후 오후 두시에는 나의 첫 어학원, CCFS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대사관 근처 갈만한 7구의 카페를 검색하다가 'Cafe Marlon'이라는 곳이 눈에 띄길래 일을 처리하기에 앞서 먼저 커피와 간단한 브런치를 먹으러 그곳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Opera 역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하늘이 파래서 기분이 좋았다. 파리 도착하고 처음 보는 파란 하늘!  

8호선을 타고 'La Tour Maubourg'라는 역에 내렸는데 눈 앞에 펼쳐진 파리의 겨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아마도 이전에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것 같았다. 정말 눈이 시리도록 탁 트인 광경이었다. 파리에서 1년 살면 시력 좋아져서 갈 것 같아.  

캘리포니안 레스토랑이라고 쓰여있던 카페 'Marlon'에서는 Fried Eggs & Bacon이라는 메뉴와 더블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역시 커피를 먹어줘야 하루가 시작되는 나란 인간, 커피 한모금을 마시니까 뇌에 엔돌핀이 쫙 도는 기분이 들었다. 완벽한 아침이었다. 내가 시켰던 메뉴는 더할 나위 없는 브런치로, 달걀의 담백함과 베이컨의 짭쪼름함, 그리고 빵의 쫄깃함이 더해져 식감이든 맛이든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별 네 개 정도는 줘도 될 듯하다. (구 피처에디터의 직업적 본능이라고 치자.) 원래는 사실 어딜가도 무난한 아보카도 토스트를 시키려다가 옆 테이블에서 저걸 시킨 걸 보고 괜스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시켰던 건데 결과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밥을 먹고 프랑스 대사관을 가야 하는데 급할 것도 없고, 또 날은 너무나 좋아서 주위를 뱅뱅 맴돌며 산책을 했다. 파란 하늘에 햇살이 촤르륵 부서지는 풍경을 사랑하지 않을 자 누구. 나름 파리는 자주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각도에서 에펠탑은 처음봐서 신기했다. 그리고 도착한지 3일만에 처음으로 본 에펠탑이기도 하고. 사실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예상치 못하게 에펠탑이 눈에 확 들어와서 기분이 좋았다. 혹자는 그냥 이름값 뿐인 철골 구조물이라고 평하지만, 나는 여전히 에펠탑을 보면 파리에 온 게 실감이 나서 설렌다.

아무튼 대사관에서 금방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받고 CCFS로 가서 근처 탐색을 좀 하다가 시간이 뜨길래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시간을 떼웠다. 어학원이 있는 동네는 고등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뭔가 어린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만석. 요즘 파리도 젊은 사람들은 와이파이가 빵빵한 스타벅스를 선호한다고 하더니 진짜 2층으로 된 내부가 가득 차서 바 테이블 한 자리에 겨우 낑겨 앉았다. 두 시가 돼서 CCFS에 도착, 5층으로 올라가 수업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뭔가 드디어 내가 공부하러 온 게 실감이 나고 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은... 아주 설렜다! 앞으로 수업도 기대가 된다. 아, 그리고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진행했던 레벨테스트 결과 전혀 생각도 못했던 B2로 레벨이 결정되었는데 대체 왜 이렇게 높게 나온거지 싶으면서 과연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일단 들어는 보고 넘 어려우면 반을 바꿔달라고 해야겠다. 근데 진짜 CCFS에서의 봄 학기가 끝나고 B2를 딸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그만큼 열심히 해봐야지! 아무튼 CCFS 건물 내부의 교실이며 휴게실이며 랩실이며 모든 시설이 다 마음에 들고(생각했던 것보다 현대적이다), 시내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엄청난 메리트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중에 꼭 찍어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휴게실에서 보는 파리 풍경. 에펠탑이 완전 한눈에 들어오는 너무나 프랑스적인 풍경이었다. 관광 엽서에 담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무튼 하루의 마무리로, 마트에서 산 샤도네이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서 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데 점점 알딸딸한 취기가 올라오는 기분이다. 그래도 이렇게 파리 생활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게 즐겁다. 꾸준히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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