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오는 일이다.

by 봄의파랑

어학원은 여러모로 참 재미있는 곳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어학원은 Cours de Civilisation Francais de la Sorbonne(CCFS)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의 부설 어학원이다. 나는 Cours Intensif를 듣는 중이고, ‘intensif’라는 단어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주당 수업시간이 25시간으로 가장 빡센 반이다. 매일 하루 다섯 시간씩 수업을 듣고 있으며 아침 9시 반부터 10시 반까지는 Phonétique 수업을, 10시 반부터 12시 반까지는 문법 수업을 듣는다. 그 후 점심시간이 1시간 주어지고, 오후 1시 반부터 2시간 동안 듣기 및 읽기, 문학, 역사 등 전반적인 주제에 대한 수업을 듣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정말 말 그대로 쉴 틈 없이 수업이 몰아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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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흥미롭게 듣고 있는 건 음성학, Phonétique 수업이다. 사실 이 수업을 듣고 싶어서 CCFS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소르본 어학원의 상징 같은 수업이다. 프랑스어 문장을 더 자연스럽게 읽기 위한 테크닉을 배운다고 보면 되는데 선생님의 프랑스어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고 소리도 아름다워서 프랑스어를 좋아했던 이유를 새삼스럽게 상기시킬 정도다. 이 수업을 들으면 우리가 익히 아는 문장도 음성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상당히 다르게 읽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띄어쓰기를 기준으로 언어를 읽게 되지만, 음성학을 배워보면 그 단위가 다른 방식으로 쪼개진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문장 구조가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덩어리들로 바뀌는데, 이대로 읽으면 소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래서 이 수업을 들으면 ‘이래서 우리 귀에 프랑스어 문장이 잘 안 들어왔구나’ 싶다. 처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발음 흐름이 아니라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반복해 읽다 보면 상당히 발음이 자연스러워진다. 이렇게 음성학 수업은 30-40분은 강의실에서 일반적인 수업의 형태로 진행되고, 나머지 20-30분은 Laboratoire로 가서 녹음 기계를 통해 선생님이 읽어주는 문장을 반복해 읽는 식으로 진행된다. 기계를 통해 연습을 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개별적으로 학생들의 발음을 봐준다.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발음에 익숙하게 만드는 그 과정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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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4시간은 우리 반의 담당 선생님과 함께다. 전반적인 프랑스어를 배우는 시간으로 듣기, 문법, 독해, 쓰기 등 모든 영역을 총망라할 뿐 아니라 역사, 문학, 지리 등 상식적인 부분까지도 가르쳐 준다. 예전에 블로그나 유학원 사이트 같은 데서 봤을 때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고 수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학생들도 열심히 참여할뿐더러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자주 물어보고 말하도록 시킨다. 그리고 쓰기 과제를 내면 선생님이 한번 고쳐주고 그걸 보고 학생들이 수정해서 한 번 더 내야 하는데, 그렇게 반복적으로 봐주는 것도 꽤 정성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B2라는 레벨은 나한테는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수업을 들어와 보니 다른 학생들의 수준도 꽤 높아서 초반에 여러모로 걱정이 많았지만 수업 방식이나 내용이 맘에 들어서 반을 바꾸고 싶진 않았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나에게 수업이 어떠냐고 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반을 바꾸고 싶진 않은지 등등을 물어봤는데 약간 어렵긴 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 반에 있고 싶다 얘기했더니 이 수업에 오는 게 두렵진 않냐고 묻는 거다. 그래서 아니, 행복하다고 하니까 그럼 됐다고 하면서 웃으면서 대화를 끝냈는데 그게 너무 다정했다. 선생님이 수업이나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커서 믿고 따라가게 된다. 하나하나 신경 써주려는 게 느껴진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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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은 총 15명 정도의 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고, 나머지는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영국인 등 국적이 다양한 편인데 아마도 약간 높은 레벨이고 수업이 빡세다 보니 아시아 학생들이 많은 게 아닌가 싶다.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보면 유럽권을 포함해 서양 학생들도 꽤 많던데 우리 반에는 그렇게 많진 않다. 다양한 문화권의 학생들이 있다 보니까 확실히 생각의 폭이나 다름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깊어지는 것 같아서 그것 또한 재미있다. 다들 굉장히 열정적이고, 잘한다. 그리고 진짜 영미권 학생들이 발음하는 프랑스어, 중국인이 발음하는 프랑스어, 일본인이 발음하는 프랑스어 등등 다 다른 게 너무 웃기고 신기하다. 나이대나 직업도 다양해서 참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때는 없을뿐더러 인생에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웃기게도.

이곳에 있으면서 언어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까지도 배워나가고 있다. 여태 나를 이루고 있던 바운더리가 외부 자극으로 인해 하나하나 무너지며 나의 세계 역시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음에 직접 부딪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물론, 매일매일 피곤하고 힘들긴 하지만 확실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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