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소용돌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오락가락하는 파리 날씨에 맞춰 나의 기분도 상승과 하강 곡선을 반복하고 있다. 날이 좋을 때 메모장에 끄적였던 문장들은 대체로 삶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날이 흐리고 비가 온 지 약 일주일 째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끝 모를 우울감과 불안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지금은 약간 축축한 상태.
글을 올리지 않는 동안, 나의 일상생활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일단, 첫 번째 중간시험(여기서는 la controle continu라 부르는 것으로 한 학기, 네 달 동안 총 네 번의 중간시험을 본다. 학기 말에 보는 Final은 또 따로 있다.)을 맞이해 그에 맞춰 공부를 하느라 바빴고, 시험이 끝난 후부터는 때를 맞춰 방문한 동생과 파리를 여행하다 보니 어느새 3월이 되었고, 지금은 일주일 간의 봄방학을 누리고 있다. 매일매일이 봄 날씨 같던 어느 날에는 어학원에 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 메모를 끄적였다. <사람 사는 게 어디나 비슷하다지만, 아침에 눈을 떠 약간의 설렘을 마주할 때마다 파리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삶이 작은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그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상에 치여 무심코 살다가도 낭만적인 도시의 풍경이 문득 한 번씩 눈에 들어오면 도무지 파리라는 도시에 무심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에서의 삶을 꿈꾸고, 이곳에서의 인생을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록한 걸까? 파리는 온몸의 감각 세포를 일깨우고, 이곳의 낭만성은 끊임없이 사랑에 빠진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기원이지 않나. 나 역시도 아직까지 가끔은 내가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 믿기기 않고,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동생이 놀러 오고 나서 유학 온 후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마레지구나 몽마르트르, 에펠탑을 비롯한 파리의 곳곳을 함께 탐방하거나 센 강변에서 파리의 야경을 감상할 때면 또다시 불가항력에 가까운 황홀경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종종 가라앉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상의 무게에 휘청이고 말 때다. 근 몇 년간 월급을 받으며 일정한 수입을 올리다가 돈이 들어오기는커녕 그저 줄줄 새고 있는 걸 보자니 괜히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 물론 알고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역시 머리로 아는 거랑 눈으로 보는 건 천지차이다. 특히 월세, 생활비 등이 빠져나가야 할 때가 되면 내가 선택한 길이 과연 맞는 것인가, 안정적으로 해오던 일을 그만두고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공부를 택하다니 너무 무모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마주하고 만다. 오늘은 그동안 집이 생긴 후로 사야만 했던 청소기, 이불, 식료품, 가재도구 등을 구매한 카드값이 빠져나갔고 상상치도 못했던 액수 때문에 아주 치명적인 한 방을 맞아버리고 말았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어차피 써도 다시 벌면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별 양심의 가책 없이 팍팍 썼지만 이제 벌지도 못하면서 아직 그 때의 소비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니. 그리고 또 한 달이 좀 넘게 지났다고 샴푸, 린스, 휴지, 치약, 수분크림 등등의 소모품을 사야 할 때가 되니까 괜히 더 울적해지는 것이다. 사실 가족들이랑 집에서 살 때는 그냥 늘 당연히 집에 있었던 것들이니까 별 생각이 없었다면 이젠 완전히 독립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금 늦게 독립한 나 빼고 불가피하게 자취를 해야 했던 주변인들 모두 이렇게 매 순간 일상생활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다들 참 대단한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프랑스어 공부만큼이나 힘든 인생 수업을 듣고 있다. 평소에도 내가 꽤 단단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긴 했지만, 내가 깨고 나와야 하는 세상 밖은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거친 곳이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치열하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