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행복을 찾고, 영원히 행복을 찾아갈

그게 나니까.

by 봄의파랑

소르본 어학원의 한 학기 과정에는 학생 개개인의 Exposé(발표)가 필수로 들어있다. 이 사실을 수업 첫날 알게 된 후 알게 모르게 엄청난 부담을 느껴왔다. 발표 자체도 부담인데, 프랑스어로 10분 정도를 반 친구들 앞에서 혼자 떠들어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겁이 났다. 그래서 학기가 시작할 당시 약 두 달 정도 후인 4월 12일에 발표를 하겠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디데이가 빨리 찾아았다. 사실 한 달 전부터 PPT를 만들고 스크립트를 달달 외워서 발표해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연하게도) 시간은 무심하게도 흘러 발표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 되었다. 발표 직전 일요일에 하루 종일 PPT 자료를 만들었고, 그즈음에는 한국에서 번역 일이 들어와서 그것까지 해내느라 매일매일 약간 몸이 축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지치고 힘들었다. 아무튼 그래서 생각한 것만큼은 스크립트를 달달 외우진 못했어도 진행 플로우를 대충 외웠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면서, 심지어는 파리를 걸어 다니면서 내내 중얼중얼 연습을 한 끝에 드디어, 금요일 오후 수업에 발표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쨍쨍한 해가 내리쬐던 어느 오후.

나의 발표 주제는 소확행이었다. 소확행의 개념, 예시, 단어의 기원, 미디어나 소비 패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을 다룬 후 한국인들이 소확행을 추구하게 된 원인을 짚었고, 마지막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게 얼마나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 주제를 고르게 된 건 이에 대해 할 말이 많아서기도 하고, 작년에 일을 그만둔 이후로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데 소확행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퇴사하기 몇 달 전에 일하던 잡지에서 소확행에 대한 에세이(링크 참고)를 싣기도 했었는데,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얼마나 고민하고 방황했는지가 느껴져서 오히려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인생의 방향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담(우리 반 담당 선생님. 마담이라고 부르는 게 익숙해서 그대로 씀.)이나 다른 문화권의 학생들이 관심을 가져줬다. 대만에서도 소확행이 유행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대만인 언니가 가장 이해도가 높았던 것 같고, 중국인이나 일본인 친구들도 대략 개념을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직 주류의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일단 단어 자체가 한자어이기 때문에 뜻을 이해하기는 수월해보였다. 그리고 마담은 계속 너무너무 흥미롭다고 하면서 내가 준비해 간 소확행의 예시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이렇게 질문이 많을 줄 몰랐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주제를 잘 잡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아무튼 소확행의 원인 중 하나로 주 52시간 근무제의 실행을 들면서 법정 최대 근로 시간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스페인 문화권의 남자애가 기겁하면서 자기는 저렇게 일하라고 했으면 절대 못했을 거라고 그러는 거다. 52시간 근무 정착조차 쉽지 않은 분위기인 걸 알면 기절하겠지. 아무튼, 발표 마지막에 질문을 받았는데 한 중국인 친구가 파리에 온 이후로는 삶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냐고 물어보길래 <그 전에는 일이 너무 많고 지쳐서 이게 삶인가?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했는데 지금은, 물론 여기서도 힘들고 화나는 일이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답해주었고, 그 이후에 이 질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행복해졌나?

장을 보고 오는 길에 하늘이 너무 예쁘길래 끊임없이 셔터를 눌러댔던 어느 저녁.

사실 이 발표가 나에게 너무나 의미가 깊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발표가 끝나고 마담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앞에 가서 앉았는데 마담이 옆에서 나갈 준비를 하던 다른 한국인 친구들한테 너네도 비슷하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사실 이게 모두에게 같은 건 아닐 테니까 나중에 마담에게 '내가 행복에 집착하는 편이라고' 쑥쓰럽게 덧붙였다. 그 말에 마담이 해준 대답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발표를 보고 너에게 개인적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면서 너의 (행복을 좇으려는) 성향이 평소에도 티가 난다고, 네가 늘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임해주는 그 열정과 에너지가 너무 좋다며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수업에 있어서 감사하다는(당시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놀라고 감동적이라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중국인 친구랑 영화를 보러 갔는데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내 말에 '정말? 네가 원하면 금방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널 좋아할걸. 마담도 아까 말한 것처럼 너 엄청 사랑스럽고, 그리고 잘 웃잖아!'라고 얘기해줬고, 그 아이에게 들을 법한 말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깜짝 놀랐다. 사실 나는 그냥 내가 늘 반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이 수업을 듣고 있는 지금이 진짜 말 그대로 행복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고 거리낌 없이 말도 하고(이건 사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에 기반하는 것 같긴 하지만), 잘 웃어버린 것이었는데 누군가 이런 모습을 좋게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니까 내가 순수히 나의 행복을 위해 한 일이 누군가에게도 좋은 영향을 줬다는 게 예상치도 못하게 나에게 용기를 주었달까? 20분 남짓 이어진 발표에 10분 정도 질답 및 코멘트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은데, 그 30분의 시간이 앞으로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 친구들과 피크닉을 떠났던 어느 주말.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인 친구가 물은 것처럼,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면,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그 행복의 크기는 전혀 소소하지 않다. 이렇게 예쁜 도시를 걷는 매 순간순간이 벅차다. 예를 들면, 어떤 날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내려야 하는 버스 정류장 훨씬 전에 내려서 목적지까지 30분가량 걷기도 했는데 진짜 스치는 바람에도 미친 듯이 심장이 뛰는 것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숨쉬는 그런 느낌? 아직까지 해가 지는 센 강이나 어두운 밤 반짝거리는 에펠탑을 볼 때마다 설렌다면 아마도 이 감정이 영원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답 없는 낭만주의자에게 낭만이 살아 숨 쉬는 이 도시가 얼마나 큰 의미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근데, 파리 지하철 더럽지 않아? 파리 행정 처리 골 때리지 않아? 길거리에 노숙자 많지 않아? 그리고 그게 딱히 부정할 수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그 모든 것보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덮을 수도 있을 만큼, 그냥 이 도시에 살아 있는 지금이 좋다. 난 여전히 낭만에 살고, 아마 영원히 나를 위한 행복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을 좇는 사람만이 결국에는 그 행복을 얻어내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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