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은 공원에 간다.
집 앞 1분 거리에 ‘Parc Georges-Brassens(조흐쥬 브하썽 공원)’라고 불리는 꽤 큰 규모의 공원이 하나 있다. 일요일 오후,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 처음으로 러닝을 하기 위해 공원을 찾았다. 파리의 2월 날씨는 꽤나 봄 같아서 오후에는 쨍쨍한 햇살과 함께 기온이 15도까지 올라간다. 오후 한 시가 좀 안된 시각에 공원에 들어가니 역시나 봄의 이른 도착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오래된 책들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소설이나 인문 과학 도서는 물론이고 옛날 잡지부터 사진집, 포스터, 엽서 등 빈티지한 소품들로 가득해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이상하게 그 풍경은 볼 때마다 파리에 애착이 생기게 한다. 그밖에 나처럼 러닝을 하는 사람들, 잔디에 누워서 책을 읽는 사람들, 가족이나 친구와 피크닉을 나온 사람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과 그것을 지켜보며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부모들, 심지어 말을 타는 어린아이들까지 정말 그냥 동네의 공원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다양한 풍경이 펼쳐졌다. 공원 한가운데는 호수가 하나 있고, 그 옆에는 30분마다 종이 울리는 예쁜 시계탑이 있다. 그리고 그 호수를 둘러싸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란, 마치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게다가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대부분 아파트)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파란 하늘이 마치 무한히 펼쳐질 것처럼 느껴진다.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처럼 우리가 알고 있지만 쉽게 느끼지 못한 것들이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는 유난스럽게 다가와 오감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감정이야말로 지금 내가 누리는 최고의 행운일 것이다.
파리지엔에게 공원이란 일상 그 이상의 의미다. 공원은 철저히 개인적인 공간인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역할도 한다. 특히나 이렇게 봄볕을 맘껏 누릴 수 있는 날엔 마치 모두가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띠기라도 한 듯 공원으로 모인다. 산책로를 달리면서 운동을 하거나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숙제를 하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며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각자가 철저히 각자의 시간을 누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적 상호 작용이 활발히 일어나기도 한다. 놀이터에 모인 어린아이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그 부모들은 아이들을 지켜보며 대화를 나눈다거나 학생들이 함께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광장처럼 사람을 모으는 공원의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주말에 본 동네 공원의 풍경처럼 내가 다니고 있는 어학원 근처에 위치한 'Jardin du Luxembourg(뤽상부르 공원)'도 평일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들 샌드위치나 샐러드 등의 점심 식사를 들고 나와 볕을 받으며 식사를 한다. 공원에는 벤치를 비롯한 움직일 수 있는 철제 의자가 놓여있고, 수많은 의자들은 이내 제 주인을 찾아간다. 근처 고등학교의 학생들 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엄마와 아기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아직도 꽤 인상적이다. 점심을 사 먹을만한 빵집들이 근처에 많은데, 날씨가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매장에서 먹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도 파리지엔의 공원 사랑을 증명한다. 학기가 시작했던 2월 초만 해도 가게 안이 사람들로 붐볐는데 지금은 전부 다 테이크 아웃을 하는 바람에 가게 안이 텅 비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오늘따라 사람이 없네-라고만 생각했는데 공원을 가보고 나서야 알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공원으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아무튼 나도 요즘 점심시간에 밖에 나와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비타민 D를 충전하고 있다.
이 글 역시 어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만 품에 안은 채로 나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쓰고 있다. 해가 질 무렵이라 날은 다소 쌀쌀하지만 또 낮과는 사뭇 다른, 은은한 빛이 감돌아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도 적어 더 정적이면서도 평화롭다. 확실히 어지럽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가만히 공원에 앉아 있는 것보다 좋은 해결책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잠시의 평화가 나를 서서히 덮어오며 일상의 안정감을 주는 이 순간을 사랑할 수밖에. 아무튼, 글을 마무리하고 나면 저녁노을을 보러 센 강까지 러닝을 하려고 한다. 나름대로 알차고 분주한 삶이 잔잔히 굴러가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