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끝나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슬펐던가

4개월 간 매일 같이 날 설레게 했던 수업이 끝났다.

by 봄의파랑

소르본 어학원에서의 학기가 끝났다.

다음 주에 이틀 연속 진행되는 기말고사가 끝나면 이제 더 이상 버스를 타고 몽파르나스 역에 내릴 일도 없을 것이고, 아침 햇살을 맞으며 신나는 노래에 발걸음을 맞춰 학원으로 향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아침까지도 이렇게 순식간에 마지막이 와 버렸다는 사실이, 수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전 날 마담은 마지막 시간에 다 같이 나눠 먹을 간식을 가져와서 같이 이야기를 하고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갖자고 하면서 '약간의 눈물과 함께'라는 말을 웃으며 덧붙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설마 눈물까지 날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정말로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세상에.

나는 원래도 잔정이 많아 헤어짐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은 내가 일주일에 5일, 하루에 5시간씩 시간을 보내면서 낯선 곳에서 첫 정을 줬던 친구들이라 그런지 헤어짐을 앞두고 막막한 감정이 들었다. 그나마 마음 둘 수 있었던 공간이 있어서 외로운 유학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데 당장 내일부터 학원을 가지 않는다고 하니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이다. 그리고 늘 높은 텐션으로 우리에게 다정히 프랑스어를 가르쳐 주었던 선생님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마담은 종종 나와 학생들을 'Ma petite' 같은 애정 어린 수식어를 붙여 불러주곤 했는데, 그렇게 보살핌 받는 느낌이 얼마나 나를 안정시켰는지 모른다. 사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쓸까 하다가 혼자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싶어서 말았는데, 다행히 한 친구가 마담에게 전달할 롤링페이퍼 종이를 가져와서 나도 같이 마음을 표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막연하게 외국 애들은 뭔가 정이 없을 거라는 편견 같은 게 있었는데, 꽃도 준비하고 다 같이 쓸 카드도 준비해온 친구가 있는 걸 보고 살짝 놀랐고,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싶었다. 암튼 같이 준비한 다과와 함께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 학기를 보낸 소감을 이야기하는데 평소 나랑 공통분모가 많다고 느꼈던 대만인 언니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는 것이다. 처음에 왔을 때 프랑스어로 말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힘들었는데 이곳에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다들 너무 좋은 사람들이어서 외롭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감성적인 면이나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게 비슷하다고 느꼈던 언니가 우니까 나도 덩달아 감정이 올라와서 눈물이 났다. 나는 나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프랑스어도 잘하고 다 완벽히 적응하고 사는 것 같아 보였는데, 역시나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다들 외로움을 품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겠지. 서로의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더 와 닿았고 온 마음을 다해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맨 처음에 마담이 우리 모두 다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프랑스어는 절대 쉬운 언어가 아닌데 이것을 배운다고 결정한 자체가 용기라고 얘기해줄 때부터 살짝 울컥했다. 그리고 너무 귀엽게도, 같은 수업을 듣지만 나와 전혀 다른 레벨의 불어 수준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 출신 남자애가 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시험 때문에 마지막 시간에 오지 못했지만 마담에게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표하면서 울었다고 했다. 이번에 소르본 석사 과정에 합격했을 만큼 불어를 워낙 잘해서 뭔가 다가가기 어려웠고(소르본 합격생과 같은 수업을 4개월 동안이나 들었다니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자랑스러웠다), 늘 어딘가 시크해 보이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마저도 눈물을 보였다니, 정말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해가 지기 직전의 순간은 내가 하루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간!

부끄러운 얘기지만 처음에 프랑스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떠한 대책도 세워놓지 않았다. 그리고 딱 1년 간의 유학생활만 생각했을 뿐, 누군가 '그다음엔 어쩌려고?' 라고 물어봤다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 못했을 거다. 프랑스어는 나에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었고, 프랑스어를 잘해서 어디다 써먹어야겠다는 생각보다도 프랑스어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잘하고 싶다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았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가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고, 별 거 없다고 느꼈던 인생에 새로운 설렘과 기대를 선사해주었다. 그러니 아마도 소르본 어학원에서 배운 건 프랑스어 자체보다도 다시금 내 인생을 사랑하고, 장기적으로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또 다른 희망을 품는 법이 아니었을까? 훌쩍 성장해 버린 언어 실력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그만큼의 자유가 생긴 것도 같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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