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파리의 묘지를 거닐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

by 봄의파랑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 _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파리 시내에는 <알쓸신잡>에 나온 페르 라셰즈 묘지(Cimitière du Père Lachaise)를 비롯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묘지가 몇 군데 있다. 20구에 위치해 있는 페르 라셰즈 묘지는 파리에서 가장 큰 묘지로 44헥타르에 달하는 크기에 6만9천여개의 묘가 자리하고 있으며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쇼팽, 마르셀 프루스트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역사에 한 발자취를 남긴 유명인들이 묻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는 이 방송을 꽤나 인상적으로 봤는지 나의 파리행이 결정된 이후, 이곳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꽤 자주했다. 이름조차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 파리에 있는 무슨 묘지'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가 CCFS를 다녔던 지난 학기에 그 근처에 위치한 몽파르나스 묘지(Cimitière du Montparnasse)를 가보게 된다. 점심시간에 친구와 샌드위치 먹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그저 큰 공원인 줄만 알고 들어간 곳이 그곳이었다는 순전히 우연의 결과였다. 푸릇푸릇한 나무들 덕분인지 묘지라는 단어가 주는 서늘함과는 거리가 멀게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그 후, 별 일 없던 평범한 오후에 혼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묘지가 크고 무덤은 많기 때문에 관광객들을 위해 보통 묘지 입구에 그곳에 잠든 유명인들의 목록과 그 무덤의 위치를 안내해준다. 그 지도를 대충 훑어보고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 꼭 보고 싶은 몇 개의 무덤만 찍어두고 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기분 좋은 바람이 곁을 지나갔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그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를 채웠다. 그 리듬에 맞춰 걷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하고 치열한 도시에서의 삶에서 한발짝 떨어져 내면의 평화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고 나니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이의 죽음이 무섭고 피해야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중 일부로 느껴졌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라는 명제 앞에서 삶의 허무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보듬어줄 용기가 피어나는 것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인 만큼 더욱더 나 자신을 아끼고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애틋한 다짐과 함께. 그곳의 고요함이 가져다 준 온전한 평화 덕분에 어지러운 마음 속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언제든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기꺼이 이곳을 다시 찾아 사람이 드물게 오가는 어느 구석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시간을 흘려 보내고 싶다.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어느 오후.

그 후 몇 달이 지나 엄마아빠와 함께 페르 라셰즈 묘지를 방문했다. 몽파르나스 묘지보다 2배가 큰 만큼 관광객이 많았다. 하나 인상적인 것은 서양인 관광객에 비해 동양인 관광객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우리가 머문 몇 시간 동안 단 한명의 동양인도 보지 못했을 정도다. 반면, 서양인들은 아이와 청소년부터 청년층, 중장년층, 노년층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묘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길가에 주저 앉아 스케치를 한다거나 좋아하는 인물의 무덤 위에 꽃을 놓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프린트한 지도를 들고 다니며 보고 싶은 무덤을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이는 관광객도 많았다.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도 편안해보이는 모습이 꽤나 신선했다. 상대적으로 동양 문화권에서는 죽음을 부정적이고 피하고 싶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조차도 이곳에 와보기 전까진 굳이 묘지에 가볼 이유가 있나 싶었던 게 사실이니까. 하긴 묘지를 혐오 시설로 분류해 삶의 공간과 분리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생각해보면 파리에서는 이렇게 일상의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묘지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긴 하다.

하지만, 묘지를 두번이나 가본 나의 감상은 죽음을 곁에 두고 종종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일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평소에 '죽고 싶다'라는 말을 별 생각 없이 입버릇처럼 내뱉게 되면서 그 말에 담긴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지만, 사실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건함을 선사한다. 그러니, 때로는 삶의 치열함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 경건함의 무게에 스스로를 맡겨보는 것도 좋다. 당신의 시끄러운 마음도 잠시간 가라앉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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