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 달 동안 휴가를 간다고?

8월이 되면, 파리의 거리에는 정적이 흐른다.

by 봄의파랑

프랑스 사람들에게 여름은 바캉스의 계절이다. 일반적으로 7월이나 8월 중 한 달을 택해 4주 간의 휴가를 갖는다. 심지어는 이들을 부르는 특별한 명칭도 있다. 보통 7월에 떠나는 사람들은 juilletistes, 8월에 떠나는 사람들은 aoûtiens라고 한다. 그리고 7월의 마지막 주와 8월의 첫 주는 바캉스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들로 고속도로가 북적이는데, 이 현상을 chassé-croisé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여름을 지내다 보니 프랑스 사람들에게 바캉스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7월이 지나니 파리가 텅 비어버린 게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학원이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을 타곤 했는데, 8월부터는 트램이나 지하철이 한산했고 같은 역에서 내리는 사람도 현저히 줄었다. 매일 지하철역에서 무료로 배포하던 신문도 발행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도 이 시기가 되면 가게 문을 닫고 3-4주 간의 휴가를 가진다. 그래서 괜한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미리 바캉스 기간을 찾아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여름에 관광객이 많으니까 한 철 장사를 노리고 영업을 할 만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이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휴가다. 내가 자주 가는 학원 근처의 빵집도 8월 내내 문을 닫았고, 다른 상점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정해놓은 기간에 가게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다. 그 영향으로 도시가 전체적으로 숨 막히게 고요하고 잠잠해진다. 어떤 동네를 지나가는데 그 길을 따라 문을 연 상점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7월에 관광객이 썰물처럼 파리에 유입된다면, 8월에는 파리지엔을 포함한 모두가 밀물처럼 도시를 빠져나간다. 도시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의 일상은 별 탈 없이 계속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하염없이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최근 파리를 대표하는 신문 <Les Parisiens>에서는 8월에 파리에 남아서 좋은 이유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모두가 바캉스를 떠나는 8월에는 비행기 표나 호텔이 다 비싸기 때문에 다른 달에 떠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고, 파리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삶의 리듬을 늦출 수 있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유명한 레스토랑에 줄을 서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언급됐다. 한 학생은 처음으로 8월에 파리에 남게 됐는데, 도시가 이렇게 텅 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마치 자신이 영화 속 무대 장치 안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렇게 모두가 한 달씩 쉬면 대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자리를 일주일만 비워도 온갖 사람들에게 연락이 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는 건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한국의 직장 생활을 떠올려봤을 때, 한 달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상상이 안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선생님한테 대체 어떻게 모두가 동시에 휴가를 갈 수 있는지 물어봤다. (사실 교대를 하려나 추측했다) 돌아오는 답은 정말 간단했다. 선생님은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한 달 동안 회사가 쉬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냥 회사가 한 달 동안 문을 닫는 거라고. 다만, 이때 휴가를 떠나는 게 비싸기 때문에 요즘에는 7, 8월을 피해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게 지금까지도 꽤나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막상 여름을 지내고 보니 그렇게 한 달씩 휴가를 떠나는 게 이미 너무 당연하게 자리 잡은 문화가 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또한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매년 돌아오는 바캉스를 위해 돈을 모으고 그 생각으로 일 년을 버텨낸다. 언젠간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 또 한없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텐데, 또 그 인식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일일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열한 달을 열심히 살고 한 달을 여유롭게 쉬어가는 삶의 리듬이 참 부럽다.


어느덧 8월의 끝자락이다. 어학원에 가려고 지하철을 타는데 지하철 역 앞에 무료 신문을 배포하는 직원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더 이상 이 글을 미룰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학기는 시작될 테고, 직장인들은 다시 일터로 복귀할 것이다. 그리고 도시는 다시 바빠질 것이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 C’est la rentrée!

이전 17화가끔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