쌉싸래함과 달콤함 너머에 있는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는 과정에 대하여
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어떻게든 하면 될 거라고, 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학업이든 일이든 어쨌든 대체로 오랜 공을 들이면 내가 원하는 목표에 근접할 수 있었고, 그 크고 작은 성공의 기억이 그 믿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나는 도전을 하는 것보다 도전을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게 더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자꾸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 안 될 땐 안 되더라도 직접 부딪혀보는 게 중요했다.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타지에 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자괴감이 나를 괴롭혔고,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감의 심연에 빠지는 대신 그것을 못해낸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도 필요해졌다. 그리고 9월 6일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잔혹 동화 같은 걸까?'
에디터로서 일을 하던 시절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이는 뮤지션 핫펠트다. 나는 지금도 종종 영감으로 가득 찬 단어들이 공기를 떠돌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건 그녀가 서른이던 해였고, 지금이야 별 거 아니라 하지만 그 당시 스물아홉이던 나는 서른이 된다는 것이 별 게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나이가 대체 어떤 의미를 주는지 궁금했다. 서른이 되면 뭔가 달라지는지, 정말 안정감이 생기는지, 점점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사실이 슬프진 않은지, 그래서 그녀는 그 나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그 인터뷰에서 예은은, 자신이 어렸을 때는 정말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그렇게 가지고 있던 욕심을 내려놓으면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고 했다. 그게 슬플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꼭 그 지점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30대가 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이 분명해지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좁아져 좀 더 편해진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은 오히려 다가올 30대를 기대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대화를 한 지가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이 대화는 잊을 만하면 다시금 튀어나와 머릿속을 헤집었다. 새로운 것이 하고 싶을 때, 하지만 그것이 마음 같이 흘러가지 않을 때, 크고 작은 좌절을 겪을 때, 어쩔 수 없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그리고 어떤 감정을 용서해야 할 때.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는 일과 사회, 인간관계 그 모든 것에 질려 다시는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외국 생활이 지치는 순간도 물론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을 할 생각만 하면 숨이 턱 막혀서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적대감은 희미해졌고, (어쩔 수 없이)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던 성취감이 그리워졌다. 방황하던 자아도 하나 둘, 다시 정립되기 시작했다. 7개월 간의 공백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으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게 의미를 갖는 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여태 몰랐거나 외면했던 나의 모습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나는 내가 아직 공부를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해볼까? 생각이 들었고, 원하는 대학원을 가기 위해 필요한 시험인 GMAT의 800쪽짜리 기본 문제집을 다 풀어낸 한 달 동안 '앞으로 공부를 2년이나 더 하는 게 과연 나랑 맞는 일일까' 의심하게 됐다. 그게 그만큼 노력을 할 가치가 있는 일인가 근본적인 회의감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하고 쪼는 것 역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것조차 직접 해보고 깨달아야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아니야, 안 될 것 같아'라고 지레 겁먹거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건 어쩐지 억울하고, 좀 무식한 방법이긴 해도 직접 해봤더니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야 속이 시원하다. 물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슬픈 건 부정할 수 없다. 하나둘씩 가능성을 지워가는 일이니까. 나에게는 여전히 '알고 보니 그건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렵고, 매번 그에 따른 실망감을 마주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다.
결국 이렇게 돌아 돌아 제자리에 설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종종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인생의 쓴맛도, 그만큼의 단맛도 모두 누려보고 나서야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결국 이건 스스로에게 숨 쉴 구멍을 약간은 만들어주고 싶은 애틋한 발악이 담긴 글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성과는 없을지라도(그리고 그게 나를 괴롭히더라도), 이렇게 해보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보고 나서야 비로소 인생과 화해할 수 있었다고.